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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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일본의 지진이 발생한지도 일주일이 되어 갑니다.
엄청난 사고 앞에서 뭐라고 말하기 조차 막연했습니다만 한 용감한(?) 종교인은 그 와중에도 한마디 하더군요.
무식해서 용감한 것인지? 용감해서 무식해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용감하다기 보다는 무식해 보이는 발언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고 크나큰 상실이며 그로 인한 애절함일 것입니다.
특히 본인이나 가족 또는 친지들에게는 말입니다.
발표되고 있는 사망자의 숫자는 아직 까지 만명을 넘지 않고 있습니다만 느낌으로는 십만명 정도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물론 이 엄청난 숫자에 이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죽음의 원인은 아무런 감정도 없고 은원도 없는 자연현상일 뿐입니다.
인간이 재해라 이름 붙일 뿐, 자연 스스로는 너무나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어쩌면 지구 전체에서 27만 여명이 매일 굶주림, 질병 이나 자연재해를 포함한 사고 또는 노화를 통해서 죽어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번 사고는 이러한 일상의 죽음에 조금의 숫자를 더할 뿐이라는 냉혹한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이란 당하는 당사자나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지속의 종료, 주변의 상실, 생명의 유지에 대한 위기라는 매우 주관적인 것으로 다가오기기에 이러한 냉혹한 이야기는 전혀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는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주관성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즉 그러한 죽음은 다른 이의 주관성을 뛰어넘어 너와 나의 주관적 죽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번 지진을 통하여 파괴된 원전을 통해 나오는 방사능 물질은 미래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래의 죽음에 대한 문제는 태평양을 날라가 캘리포니아에 까지 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의 주관성을 뛰어넘는 모두의 사건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큰 슬픔이라는, 나일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주관적 죽음으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지열에너지가 넘처나는 일본이 왜 원전을 건설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2차대전의 패배이후 아마도 그들은 스스로 핵무장을 원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지진으로 부터 매우 불안정한 일본의 동쪽 지역까지 원전을 무리하게 건설하고 운영한 것은 이러한 일본의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였지 않았는가 하는 혐의로 부터 그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파괴된 원전으로 인해 다가올 죽음에 대한 책임은 더욱 더 일본정부와 그러한 국가의 억압체제에 쉽게 포섭된 일본국민이 차지가 될 것입니다.
물론 매우 많은 숫자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는 한반도의 사정도 동일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민들이 역동적이고 반항적며 비정형적이라는 점에서 일본보다는 희망적입니다만 우리들 역시도 여전히 국가의 억압체제에 포섭되어 있으며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동일한 선에 놓여있다고 여겨집니다.
저 역시도 원전 덕분에 저렴한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정부의 관료들과 핵관련 전문가들의 말처럼 핵이 안전하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사실 핵 전문가들이란 어떤 면에서 원전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이기에 - 반핵의 기치아래서 그들의 자리는 없기 때문에 - 그들의 말을 신뢰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정부의 관료들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왜 그런지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반핵운동에 귀를 귀울여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의 사고로 부터 탈출하고 기술자들의 당연함으로 부터 벗아나고 정부의 핵정책으로 부터 도망치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