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필자는 교회력의 시작이 부활절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사순절은 바로 부활절의 씨앗이며, 부활절은 사순절의 꽃인 셈이다. 사순절을 지킨다는 것은 주님의 부활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십자가 사건에 대한 기억이며, 그것의 육화(肉化)다. 즉 사순절의 영성은 십자가 신학이다. 십자가 신학 없이 사순절 영성은 불가능하다. 사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성회 수요일에 재를 이마에 바르거나 매일 한 끼씩 금식을 한다거나 구제에 나서는 일도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 습관을 실천하기 이전에 그런 실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십자가 신학을, 즉 십자가 영성을 모른 채 그런 경건한 습관에만 치중한다면 결국 종교적 교양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에 예배와 기도는 많지만 거기에 걸맞은 삶이 따라주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근본적인 신학적 영성의 부재에 놓여 있는 게 아닐는지.
필자는 위에서 영성과 신학을 거의 동의어로 사용했다. 영성은 경건의 능력이고, 신학은 단순히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런 언어사용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영성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다. 이런 오해는 오직 교회 행사에만 매달리는 대중적인 교회는 물론이고, 소위 영성을 추구한다는 교회에서도 일어난다. 필자의 생각에 영성은 근본적으로 신학적이다. 아니 신학이 바로 영성이다. 신학자라고 한다면 영적이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영적인 사람은 신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신학자들은 이론을 세우기 전에 이미 영적인 현실을 경험한다. 그 영적인 현실에 대한 논리적 해명이 신학이다. 예를 들어, 바둑의 정석을 깊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프로 기사가 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정석이 신학이며, 프로 기사 활동이 바로 영성이다. 이런 점에서 사순절의 핵심인 고난의 영성은 바로 십자가 신학과 다를 게 없으며, 십자가 신학을 통해서 사순절 영성에 들어간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사순절은 고난주간의 확대였다는 앞의 지적을 기억하기 바란다.
안녕하세요, 목사님1
다비아 사이트는 제가 아는 권사님을 통해 소개를 받았는데 제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이곳을 들러 매일 묵상을 하고 관심있는 부분을 살펴보고 있어요.
부족한 저의 시야를 넓혀주시고 진정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을 말씀해 주시니
많이 감사하고 있어요. 올해는 목사님 말씀처럼 신학에 관계된 책을 많이 읽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지금 실천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편식은 안할게요. 목사님을 비롯해 몇몇 분의 글을 보아도 자연과학 ,인류학,
철학...등을 두루 섭렵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왜냐하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했는데도 그 하나님을 말씀드릴
려면 말을 못해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도 그렇고 제가 믿는 하나님을 전할려면 공부를 해야겠더라구요.
요즘은 열심히 읽고 있어요. 그리고 "아아! 기독교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같은 생각이 들면서 제게 기쁨이 희망이 다시 찾아 오고 있어요.이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기뻐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게 Oppression and Depression이
있는데 이로 인해 어려운 점이 많이 있거든요. 정녕코 하나님을 통해서 만이 고쳐질 수 있다고 확신은 하고 있는데 자주
흔들려요. 특히, 하나님과 의 관계와 인간과의 관계에서 많은 상철 입고 있지요. 그래서 지금 교회다니는 것을 쉬고 있어요. 당회장님으로부터 상처(?)를 입으니까 빼도 박도 못하겠더라구요. 말씀이 제대로 안들어 와서 쉬고 있지요 .
교회안에서도 진정한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사랑), 끼리끼리 어울리며 세상냄새가 많이 나지만 , 어디 가면 안 그렇겠니 하면서 열심히 다녔는데 , 사실, 전에는 당회장목사님 말씀이 참 좋았어요. 교회안의 다른 어떤 사람들이 제게 상처를 준것들은 제가 먼저 감싸안고 용서하며 들어 가겠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노력은 했어요). 어머님과 함께 다디던 교회라 옮길 수도 없고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금씩 마음에 "용서"가 들어오고 있네요.
오늘도 목사님의"사순절은 고난주간의 확대였다는 것을"기억하고 사순절 영성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할게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