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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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지인의 동생이 명성교회에서 결혼식을 한다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곳 오라고 해도 잘 안가는 제가 벌써 올해만 결혼식을 두번이나 참석하게 되었네요..
물론 축복받아야 마땅한 인생의 중요한 행사중 하나지요.... 두사람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명성교회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체험한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가끔 대형교회를 구경가봐서인지
규모에 대해서는 크게 놀랍지도 않습니다.
신광은목사의 메가처치논박이 생각납니다. 대형교회들은 그것들이 가지는 불편함이 존재하며 이것은 기독께서 반대하시는 분명한 상태입니다.
몇일전 사랑채의 아래글중 논쟁이 있었던 글을 읽었습니다. 제가 그분중 한분을 지지하는 까닭이 이 글의 일부가 될것입니다.
많은것들이 있겠지만 제가 본것만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여 보렵니다.
제가 참석한 결혼식에서 결혼후에 피로연으로 대신되는 부페를 먹게 되었습니다. 사람들도 아주 많고, 결혼식도 여러건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백명이 북쩍북쩍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다 끝내고 찍은 사진이라서 손님들이 나간후라서 사진에서는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이 식사료가 2만5천원이라고 합니다. 식권 2천원은 아마 일요일교인들이 먹는것인가 봅니다.
저는 이곳을 보면서 식사시간 내내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가지신 예수님을 생각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2천년전 성전에서 매매하는 사람들과 돈바꾸는 사람들 그곳에 상과 의자를 놓은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성전에서 장사를 하게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그들도 제사장들중 일부가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제사장들의 인척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권력층의 비호로 그곳에 있게된 사람들일까요? 당시에 성전은 로마에서도 자치권을 인정해준곳입니다. 유대인들이 사형을 집행할수는 없었지만 유일하게 사형을 집행할수 있는 죄목이 성전모독이었습니다. 로마인일찌라도 성전모독은 유대인들이 사형에 처할수 있었을 정도로 강력한곳이었지요..
매매하고 환전하는 사람들에게 이윤은 당연한것이었겠지만, 성전의 환전상들은 이윤이 거의 없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전정화는 도덕의 개념을 뛰어넘습니다. 또다른 이유들을 뛰어 넘었지요..
디아스포라들이 동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지낼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예루살렘에는 당연히 매매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겠지요.. 또 순례자들이 외지의 화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당시에는 갈릴리 소도시들도 자체적으로 동전을 발행했다) 환전이 불가피했을것입니다.
성전세를 내기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을지도 모릅니다. 성전세를 제대로 받아야만 성전도 유지되고 제사도 유지되고 하나님의 임재도 가능하게되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도 이루어지겠지요..
혹시 환전상과 매매상들이 피폐해진 예루살렘에서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사장들이나 기득권층에게 삶의 고통을 호소하여 그 자리에 앉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먹고살기 충분했더라도 또 다른 이유로 그곳에 있게되었을지도 모르지요... 더 많은것들을 상상해볼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던간에 그곳에 매매상과 환전상이 있었다는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맞게 유용했을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정화하신것입니까? 그분이 인용했던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이사야 56:7)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예레미야 7:11) " 구절의 전후사정을 살펴봐야할것입니다.
오늘날 명성교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이 이런 결혼식을 치뤄주고 받는 비용들이 상당하다는것입니다. 물론 교회입장에서는 할말이 많을것입니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고, 해외선교를 하고, 성전을 건축하는등 많은것을 주님을 위해서 할수 있지 않느냐? 고 말입니다. 믿지 않는자들이 그러한 돈을 벌어서 타종교를 위해서 쓰고, 교회를 대적하는곳에 사용할수도 있는데.. 우리가 무슨 잘못이냐고 항변할수도 있을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어차피 쓰게될 돈을 교회에서 사용하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좋을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그런데 왜 주님만 이러한 일을 반대하는 것이지요? 교회지도자들도 다 주님을 위해서 좋다고 하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다 주님을 위해서 좋다고 하는데 왜 하필 주님만 그것에 반대하느냐는 것입니다. 성전정화에 대해서 설교를 하는 목사들조차 이러한 일은 설교와는 별도로 행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성경구절과 실제상황을 연결하지 못하도록 만든것일까요?
교회가 더 커지면 아마도 마트도 만들고 말것입니다. 교회내에 홈쇼핑도 만들겠지요.. 결혼식뿐만 아니라 장례식장도 만들고 돈되는것은 다 만들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돈을 어차피 주님을 위해서 쓴다는 정당화가 자신을 충분히 보호해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한다는 그 명분은 주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것에도 사용된다는것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이는 명성교회뿐만 아니라 현대교회들의 전반적인 문제입니다.
카라마조프씨의 형제들에서도 비슷한 내용들이 나오지요? 주님은 결국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잘 해내고 있으니 필요없게 된답니다. 정말 미묘하고 복잡한 일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필요없는 그러한 교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것이요...
웃음님!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슬픈 현실이죠. 교회가 세속화 대형화 되면 이익 사업이 늘어나겠죠 교회가 아니라 회사가 되겠네요 .이윤을 추구하고 목표가 있는 회사 .........
결혼식할때에도 교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께도 무료로 개방하면 좋을텐데요 정말 교회 건물의 용도는 무료로 값 없이 사회에 오픈해야 합니다. 헌금하는 교우들이 원하는 것인데도 안되네요 정말
동아일보에 기사가 실렸는던적이 있는데 서울 방배동에" 동네작은교회"가 있더군요 이교회는 3가지가 없더군요 . 십자가,예배당,직분이 없는 교회더군요 70명이 되니까 교회를 3군데로 나누던데요. 설교를 듣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속내를 나누는 교회 ,평신도 중심의 교회더군요
건물의 크기보다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성전이 더 중요하겠죠
돈과 지위와 권력이 없어도 이 땅위에서 행복을 누릴수 있음을 보여주는 교회,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소리를 경청할수 있는교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내세우기 보다는 아는 만큼 실천하기 위해 몸을 낮추는 교회 -이런 교회가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