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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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꽃다운 젊은 학생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 했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올해만 해도 4명의 카이스트 학생들이 하나님의 주신 귀중한 생명을 거부하는 사건이 연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이 자살율이 세계에서 최고 높다는 사실을 OECD 통계지표를 새삼거론 할 필요가 없겠지요.
4명 귀중한 목슴을 버리고서야 성적에 따라 학비를 차등적으로 내도록 하는 제도를 바뀌도록 한다는 학교 재선 개선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학교 총장은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정신무장을 더욱 강화 할 필요가 있다고 학생들을 설득하는 실정입니다. 심리테스트 하고 시험에 스트레스 덜어주는 프로그램들을 보강하겠다는 안들을 제안합니다.
경쟁에 따른 자살율 증가가 우리 사회에서 오래전 부터 스며들어 자살율을 부추기고 있지만, 그게 허공에 대고 외치고 일을 뿐, 일부는 제외하고 사람들은 별반 관심이 없이 살아왔지요. 자기와 지기가족이 피해가 없다면요. 경쟁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알아도 실제적인 대안들이 없으니 그냥 외면하고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는 경쟁에서 이겨내야 사회적 메카니즘에 따라가는데 정신과 혼을 집중하고 있는 형국 입니다.
좋은 성적, 일류대학, 안정적인 직장, 내 집마련, 등등 자신의 행복이나 well-being, 이나 삶의 가치에 대하여 고민은 하지만 이미 구축된 자본이나 돈이 제일이라는 구축된 사회적 틀에서 이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올리는 경쟁의 레이스에서 루스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삶 전부를 걸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서양학자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the project of self 한다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갈고 딲습니다. 목적있는 삶이나 긍정적인 삶 등의 책도 이 시대를 사는 처세술에 도움이 되는 신앙 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을 유도하는 세계적인 사회적 경제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처세술을 무장하는 만큼이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것을 변화시키위해 필요한 능동적인 시민(active ciitizenship)으로서 그런 구조를 비판할 수있는 능력과 가치관이 필요한데도 말입니다. 한국의 다수위 교육 기관과 보수 언론이나 여러 단체들(교회)은 기전 기득권체제에서 적응 능력을 키우는데 일조하는 역활을 하지요. 사회기득권을 유리하도록 법이나 제도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재벌 회장이 명백이 불법적인 폭력을 하고서도 집행유예를 받는 법이 이를 증명합니다.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법이나 제도만이나 아닙니다. 사회과학자들이 동원하는 용어로 표현하면 헤게모니를 주도하도록 돕는 것이 학교 언론 종교기관들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일조하지요. 기득권자나 정권력자들이 법과 훈련기관을 장악하기 위하여 갖은 수단을 동원합니다. 이에 맞서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수는 그냥 바라보고 있지만 기회가 되면 폭발하는 집단들로 변할 수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회는 그런 체제에 비판적인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는 기관도 과거 보다는 수가 증가 하였고 그 영향력도 점차 세를 넓히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 기관들은 막강한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세력들에게 좌파로 인식되거나 붉은 딱지로 내몰리는 문화풍토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음 무시할 수 없습니다. 냉전의 산물이자 남북 분단이 남긴 역사적 흔적이
아니간 싶습니다.
한국은 가난에서 벗나고자, 이웃 일본에서 이겨야 한다는 한이 있는 나라 아닙니까. 그저 앞만 보고 달려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에서 일등하는데 잘 살아 보고자 열망이 그 어느 나라 보다 높았습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소득 2만불이 넘어섰다고 자랑합니다. 행복이 뭔지 잘사는 것이 뭔지를 제데로 논의하고 문제를 제기 할 여유도 가르침도 저희 세대는 받지 못했습니다. 자금은 젊은 세대들은 어떨까요. 등록금이 마련하는데 바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도 한때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낸건 시절이 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돈 때문에 민주화, 인권이니 하는 주장은 젊은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주장이라고 핀잔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이는 그렇다고 할지라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그래도 남들이 부러워 하는 안정된 직장에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는 전문성을 가진 집단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4명의 학생들이 자살을 하였다면, 그들이 반성의 목소리를 내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왜내하면 신자유주의 가져다 주는 경쟁 심화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 비판해야 하고 그 제도가 가져 올 부작용도 예측하는 외침이나 나팔 수 역할을 해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KAIST 자체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언론을 통해서 아직도 들을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지성들이 현주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직의 논리에 때문인지 윗 사람들의 눈치보면서 자신보신을 챙기는 것인지. 한국에서 권력을 가진 집단, 검찰, 정당, 대학에서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을 보면 조폭 조직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이런 내용은 다비아에 간간히 언급한 내용입니다.)
경쟁 틀에서 바꿀 있는 즉 함께 더불어 사는 친화적 공동체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가치관과 그 행동의 열매를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찾아 보는 것이 이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다비안을 비롯한 의식있는 사람들 모두의 과제가 아닐까요.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가야 할 날 들이 많고 세상의 소중한 경험을 더 쌓아야 젊은이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시고,
또한 우리 어른들이 잘못을 알게 해주시길 비옵니다.
죽음 질주에서 멈추주시길 간절히 기도 합니다.
보강합니다:
서남표 KAIST 대학 총장은 성적에 따라 차등적인 등록급 납입제도를 도입한 물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징벌적인 등록금 제도를 묵인한 교수들은 공개적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저는 영국 학자 Bill Jordan 쓴 노동당 정부가 도입한 "'제3의 방법' 정책 실행에 실패한 원인"(Why the third way failed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원인들은 정부와 개인간의 계약제도(contract), 유인제도(incentives), 규제의 강화(regulation) 등을 들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이유를 알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부모들이 제때 오는 부모들이 많지 았나 봅니다.
이에 유치원 원장이 늦게 나타나는 부모들에게 벌금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를 도입 했는데도 제때 나타나지 않는 부모들이 오히려 증가 했다고 합니다.
무엇 때일까요. 벌금을 무는 행동으로 그들은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결과로 해석 했습니다.
아마 대학 총장도 무식한 생각으로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패널티를 주는 차등적 등록금 제도를 도입하면
학생들이 성적을 올릴 수 있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계산한 얄팍한 계산에 근거한 이야기이지요.
학자는 이를 인간의 합리적 행동(rational action theory)에 근거한 경제적 논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경제주의 논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단순히 교환 관계로 여기고 도덕적 가치와 친밀한 인간 관계 형성의 중요한 가치를 안중에 없다는 것이죠.
4명의 귀중한 젊은 생명을 앗아가도록 몰고간 차등적인 납입 제도 도입하고 자살을 학생의 개인적인 책임(약한 정신력)으로 몰고가는 총장과 이 제도입에 방관한 교수들은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주장이 가혹합니까?
삼송님
대학이 왜 이렇게 살벌하게 되었지요.
저가 대학 다니던 시기가 70년대 인데 1학년 때 학점 날기나 학사 경고를 안 받는 것이 이상 한 풍토에서
지냈는데.
그 때는 철학 세미나도 열심히 참석하고 낭만도 있었는데 말이죠.
총장도 자신도 이 경쟁 체제에 견뎌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Kaist 가 미국의 Mit 공대를 따라가야 하고 서울대나 포항공대와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하여
그야말로 채찍을 들고 마구 두덜겨 패는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 하지 않나보죠.
사건이 발생하니 바꾼다고 난리를 부립니다.
총장 한사람의 욕심이 귀중한 생명들을 앗아 갔는데...
나라, 학교, 개인의 발전을 위한 답시고 했겠지요.
자신만이 그것들의 발전을 위하여( for development) 할 수잇다고 생각하는 독단이 만들어 결과라 봅니다.
for 와 학생들과 더불어 발전을 생각하고 제도 도입을 고려하는 with 사고가 한국 지도자들에게 왜그리 없는지.
지금과 같은 경쟁체제는 '나 홀로만' 있지 더불어 함께 사회관계적 집단을 배려 하는 가치관은 점차 사라질 위기 있는 듯합니다. 그나마 기대하는 것은 종교, 기독교의 더불어 이웃 사랑 불교의 자비에 기대해 봅니다.
삼송님 주말 저녁인데 잘보내고 있는지요.
내일은 놀토이기도 한데 방사능 봄비가 좋은 주말 분위기를 망치고 있지 않는지요.
빛을 보고 붙잡고 빛의 열매를 매는 나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서남표 총장은 카이스트 총장이 되기전부터 우리나라 많은 학교들 총장으로 거론 되었습니다. 그중엔 저희학교도 있고요. 아마도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 시절의 개혁(?) 때문인듯합니다. 대강 찾아보니 교수의 40%정도를 다시 뽑았다고 하네요.. 지금은 모두 서남표까기에 혈안이 되어있지만 2-3년전만 해도 몇몇 불순한 신문들을 빼곤 서남표 총장을 빨아대기에 여념이 없었죠.. 네이버에도 안티가 거의 없을 지경이었고요.. 징벌적 등록금에 불만을 나타내는 학생들은 게으르 넘들이 혜택만 받으려 한다는 정서가 대세였죠.. 물론 서남표 총장이 언플의 달인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내의 반발은 외부여론의 뒷받침으로 누르고 있었죠.. 우리끼린 과학기술계의 MB라고 하기도 했었지만 그건 술마실 때 안주거리 정도였지요..
서남표 총장이 물러난다해도 기득권을 가진 측 (교수, 사업주 등등)이 기득권으로 진입하려는 자들을 경쟁으로 몰아가서 쉽게 그들의 output을 이용하는 것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카이스트에서 죽은 4명의 학생들은 완전하진 않지만 학교의 정책의 변화를 끌어냈고 뉴스의 메인을 상당기간 장식하는 반면 등록금때문에 자살한 지방대학생들은 단신으로 처리되고 말지요. 이 나라는 죽어서도 평등하지 않네요..
병훈님 오랜 간만입니다. 포항에서 한번 모임을 갖고 이곳으로 왔는데 소식도 못 전해 죄송합니다.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기다라고 있습니다. 포항가면 다시 모임을 가져야 겠지요.
서 총장이 미국 MIT 대학에서 오랫동안 근무 했군요. 아마 거기서 능력을 인정 받았나보죠.
교수 40%를 갈아 채웠다면, 대단한 능력을 인정 받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인정 받았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안 통할 것 같 군요.
미국 대학에서는 4명의 자살 했다고 총장 자리를 버틸 수 있는 지 모르겠군요.
인간에 대한 애정 즉 인문학과 담을 쌓고 살았는 모양이지요.
언론 플레이도 잘하는 것 보면 미국에서 사람을 이용가치를 활용하는 방법을 많이 배우지 않았나 상상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그나마 영재라 불리우는 학생들이 자살하니 난리를 부리는데
지방대학 생들의 자살도 일어나는데도 언론은 관심이 없지요.
포항공대에서도 자살하는 비운을 포항에서 비공식적인 채널로 듣기도 했지요.
포항의 언론들은 포항제철의 자본에 영향을 받아 포항공대 좋지 않는 소식은 전달 하지 않습니다.
그저 교수들 업적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지요. 지역사회와 학생, 교수간의 잘 교류도 이루지지 않고
그야말로 노벨상을 받는데 열을 올리도록 재단에서 몰아 부치죠.
한국의 현실입니다. 불행한 사건도 1-2 주 지나면 관심에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언플에 능한 총장이라면 이것을 모를 턱이 없는 것이고... 주류 언론 논조가 서 총장을 편들고 있는 퐁토에서 라면 더욱
그럴테죠. 그래서 한국 사회 변혁의 희망을 전망하기가 힘들게 느껴지곤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서요. 어둠이 깊어도 빛은 어김 없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죽음 자체는 평등 하지만 그 과정과 죽음에 미치는 영향은 평등하지 않다는 병훈씨 맨트 공감이 갑니다.
포항에서 다사 만납시다.
건강하세요
말씀에 동의합니다. 서남표 과기대 총장을 해임해야 합니다. 똑똑한 학생들 뽑아서 잘 양육하고 인성교육하면 될것인데요
경쟁을 도입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예전에는 성적도 공개를 안하고 학사경고도 조용히 하더니 요즈음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인성을 파괴하는데요 자살이 계속 나올 것입니다. 막아야 합니다. 경쟁이 좋은점도 있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죠 몇가지 대안은 재학생이 제시했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차등등록금을 적용하되 수준을 조절 ▲재수강 학점 제한을 유지하되(B+), 재수강 개수제한 폐지 ▲엄격한 부.복수 전공 신청 및 유예기간 제공 ▲전과목 영어강의 폐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 등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영어도 좋지만 전학년 전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글로벌 인재를 기르는 것은 아닐텐데요 학생들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