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우리 삶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며칠 전에 말했소. 선천적으로 장애를 당하거나 큰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사업이 망하거나 결혼에 실패할 수도 있소. 목사들의 경우에는 목회를 실패할 수도 있소. 제삼세계 어린이들 중에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많소. 그 이외에 크고 작은 고난과 시련이 우리 자신과 주변에 그치지 않소. 사람들은 대개 이런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가는 것으로 평생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해서 이런 어려움을 피해갈 수는 없소. 애를 쓴다고 해도 그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오. 물론 노력하면 환경을 조금 바꿀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되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좀 떨어질지 모르나 늘 그런 것은 아니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은 그냥 운이 좋기를 바라는 게 최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요. 북한에 태어난 아이들과 스위스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거기서 아이들의 선택이 무슨 수용이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거요.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나서 구걸을 하면 살아가는 어떤 이를 보고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누구의 죄로 저 사람이 저렇게 기구한 운명에 떨어졌냐, 하고 물었소. 예수님은 그 누구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하셨소.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은 시각장애인 걸인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오. 2천년이 지난 오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소. 무죄한 이들의 고난이라는 상황에서 누구의 탓이라는 것을 따지는 것보다는 상황을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최선이오. 물론 근본 원인을 분석해야 해결책도 나오긴 하오. 그런 시도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소. 문제는 기본적인 태도를 가리키오. 예를 들어, 오늘 북한의 고난을 바라보는 남한의 교회는 어떻소? 마치 누구의 죄냐 하고 물었던 제자들과 비슷하오. 지금 장로 대통령이 그런 태도를 자랑스러워하오. 다른 나라들은 북한에 먹을거리를 보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데 남한이 머뭇거리거나 실제로는 방해하고 있소. 내가 보기에 예수님의 고난을 비웃는 듯한 행태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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