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聖)금요일이오. 복음서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오후 3시에 운명하셨소. 십자가 처형이라는 게 보통 끔찍한 일이 아니라오. 손바닥에 못을 치오. 거기서 피와 체액이 흘러나와 죽을 때까지 매달려 있어야 하오. 보통 건장한 남자는 일주일 정도 매달려 있고, 특별한 경우는 보름 동안 매달려 있기도 하오. 일벌백계의 뜻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걸 보게 하기 위해서 공개 처형을 하는 거요. 죽은 뒤에도 매장하지 않소. 시체를 파먹는 포식 조류들이 와서 먹지 않겠소? 예수님이 6시간 만에 운명하셨다는 것은 그럴 정도로 영육 간에 에너지가 소진되었다는 뜻인지 모르겠소.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 가족 묘지에 안장했다 하오. 요셉이 로마 당국에 힘을 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일곱 마디를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하오. 그중의 하나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외침이오. 이게 이해하기 어렵소.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인류 구원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를 경험하셨다는 게 이상하오. 내가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 운명을 실패라고 생각하셨다는 의미요. 십자가에서 그 말씀만 하신 게 아니라 다 이루었다는 말씀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의 운명을 무조건 실패라고 단정하신 것은 아닐 게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뢰가 그 바탕에 깔려 있소. 예수님이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 구석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유기’를 완전히 지울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해야하오.

     그대가 그리스도교 신앙과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이런 절규를 잊지 마시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오. 그걸 불신앙이라고 보면 안 되오. 그 이유를 여기서 더 설명해야겠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거요. 간단히 말하겠소.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과 그의 통치와 그의 구원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오. 인식의 근본적인 한계를 인정한 채 하나님께 우리의 운명을 완전히 맡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오. 그런 사태를 직면하기 싫은 사람들은 믿고 있는 자기 열망에 사로잡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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