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금요일 오전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저녁 때 무덤에 묻히셨소. 최소한의 장례절차도 밟지 못했소. 왜냐하면 금요일 저녁부터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일단 안식일이 시작되면 시체를 움직이는 일은 금지되오. 그 안식일에 예수님의 시체도 무덤에 갇혀 계신 거요. 죽음의 세계요. 가사(假死)가 아니라 실질적인 죽음이오. 메시아가 우리와 똑같은 죽음에 떨어졌소.
죽음을 보통 영원한 안식이라고 말을 하오. 부분적으로 옳기도 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이오. 모든 책임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점에서는 안식이라 할 수 있지만 모든 기쁨과 행복으로부터 단절된다는 점에서는 저주라 할 수 있소. 고통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살고 싶다는 게 인간의 본심이오. 죽음을 참된 안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즐거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의 것들은 결국 우리를 안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옳은 말이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슬픔도 함께 겪소. 자식을 얻어서 즐겁기만 한 게 아니라 어려움도 있소. 이 세상의 일은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하오.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부활 사이의 상태가 어떤 것이겠소? 시체가 썩어가고 있는 거요? 몸은 비록 썩어갔지만 영혼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요? 그것은 아무도 모르오. 몸과 영혼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죽은 뒤에 몸과 영혼이 각각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어찌 알 수 있단 말이오. 예수님이 무덤 속에 계신 사건에 대한 간접적인 해명을 베드로전서 3:19절에서 찾을 수 있소.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벧전 4:6 참조) 초기 그리스도교 문서가 형성되던 시기에 뿌리를 둔 사도신경에도 무덤에 묻히신 주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대목이 나오오. 우리말 사도신경에는 물론 빠졌소. 이런 단서들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인류 전체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요.
예수님의 죽음과 매장은 인간의 절망이 무엇인지를 말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극복을 가리키오. 우리는 모두 숨을 멈추게 되는 날 매장될 거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미 그 길을 가셨소. 그로 인해서 우리는 무덤 속과 같은 실존을 살면서도 참된 생명을 희망할 수 잇게 되었소. 기쁜 부활절을 맞으시오.
신마적님.
아래 내용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한국 최초의 찬송가집에는 사도신경에 ‘음부 강하’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초대 한국교회에 사도신경을 소개한 것은 당연히 초기 선교사들이다. 초기 선교사들이 소개한 사도신경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처럼 내지에 실려 있었다. 사도신경이 실려 있는 찬송가의 처음 간행물은 1894년 언더우드의 “찬양가”이다. 이 “찬양가”는 원래 장로교, 감리교 양 선교부에서 합동 찬송가를 편찬하기로 합의하고 감리교의 존스와 장로교의 언더우드가 편찬위원으로 위촉되었던 것인데 존스 목사가 일 년 남짓 미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지연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긴 언더우드가 단독으로 출판하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음부강하 내용이 그대로 번역되어(지옥에 내리사) 실렸다. 그러나 언더우드가 용어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하나님’이라는 이름과, ‘신’이라는 용어를 모두 빼버리고 양 교단의 합의도 없이 ‘아버지’, ‘여호와’같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어 언더우드의 “찬양가”는 전 교파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남쪽 장로교만 주로 사용하였다.
2. 감리교 찬송가집에는 사도신경에 ‘음부 강하’ 내용을 번역하지 않고 있다.
1897년 미국 북 감리교 선교부는 선교사 존스 등이 편집 출판한 “찬미가”에 사도신경을 번역하여 싣게 되는데 여기에는 음부 강하 내용인 ‘지옥에 내리사’ 부분이 빠져 있다. 이것이 한국 교회 사도신경 번역에서 음부 강하 부분이 빠지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후 감리교는 1905년까지 3번의 번역을 하는데 그 경우에도 이 부분이 모두 빠져있다.
3. 한국 감리교 사도신경에서 ‘음부 강하’ 내용이 빠지게 된 내력
이것은 한국 땅에 온 감리교 선교사들이 가진 미국 감리교의 교리적 영향으로 보인다. 영국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의 신조 39조에서 발췌하여 25개 항의 신앙고백서를 만들었다. 그 성공회 신조 제3조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신 것같이 또한 음부에 내려 가셨다.”라는 조항이 있는데 이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 부분이 신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혼돈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여 감리교 신앙고백에서 생략하였다. 아마 한국에 파송된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이 이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또한 선교사들의 신학이 피선교지의 신학을 결정한다는 원리에서 본다면 당연히 한국의 감리교도 미국 감리교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보아야 하며 이런 맥락에서 감리교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에서 음부 강하 조항이 의도적으로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4. 초기 한국 장로교 선교사공의회 사도신경에는 ‘음부 강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 다.
한국에 들어온 네 장로교(미국 북장로교, 호주 장로교, 미국 남장로교, 캐나다 장로교)가 조직한 선교사공의회가 1905년 발간한 “찬셩시”에 실려 있는 사도신경에는 언더우드가 펴낸 “찬양가”에 실려 있는 사도신경과 같이 “음부에 내리셨더니”를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번역하여 실었다.
5. 장·감 연합공의회가 발행한 “찬숑가” 이래로 한국의 사도신경에서 ‘음부 강하’ 내용이 빠지게 된다.
한국의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 사업의 하나로 장·감 연합공의회가 1908년 발간한 “찬숑가”에 실린 사도신경에는 ‘음부 강하’ 조항이 빠지게 되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찬송가 편찬의 모든 권한을 부여 받은 통합공의회 찬송가위원회에 참여한 감리교 선교사의 강한 입김과 음부 강하 조항에 대한 장로교 선교사들의 원만한 합의를 위한 양보 또는 신학적 자신감 부족과 천주교와의 차별을 위하여 감리교의 사도신경을 반대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 이후 장로교가 별도의 찬송가를 만들 때 이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결론을 내지 않아 사도신경의 조항들은 현재의 내용대로 그대로 굳어진다. 이것이 한국 개신교의 모든 사도신경에는 ‘음부 강하’ 내용이 빠지게 된 연유이다.
위 내용은 아래 논문에서 간단하게 발췌 정리한 것임.
(사도신경의 한국교회 전래와 '음부강하'론 고찰 / 정용식 고신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교수님, 왜 그 부분이 한국어 사도신경에는 누락이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