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학적인 실존은 각각 인간의 실존처럼 우주의 현세 속에 있는 실존이다. 이 실존은 아직 종착역에 도달하지 않은 세속 시간의 한 토막 안에 있다. 이 실존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인간의 개인 역사와 사회 역사의 능동적인 주체이기도 하며 수동적인 주체이기도 하다. 이 실존은 오고 오는 수없이 많은 인류의 세대들의 연쇄 속에서 오늘을 긴장 가운데 버티면서 그것의 강도가 입증된 반지와도 같다. 아무리 하잘 것 없는 신학자라도 모든 다른 인간들 속에서 그리고 이 인간들과 더불어 그의 우주적인 상황과 우주적인 피규정성을 통하여 특별히 주어진 가능성을 지닌 피조물로서, 그의 환경이 주는 특수한 곤경을 겪는 피조물로서, 그러나 동시에 그때그때마다 특수 과제들과 희망들에 참여한 피조물로서 실존한다.(88쪽)

 

     위 바르트의 글을 번역문으로 읽어서는 확실하게 감이 오지 않소. 원문을 여기서 다시 들려주고 싶소만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오. 유감이오. 아무리 독일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모국어가 한국어라면 바르트의 글을 완전하게 번역할 수는 없소. 그 이유는 그대가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요. 언어는 고유한 뉘앙스가 있소. 토씨 하나로도 차이가 나오. 이런 뉘앙스를 살리면서 하나의 언어구조에서 다른 언어구조로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오. 지금 바르트는 신학자의 실존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소. 위 글은 첫 실존의 한 대목이오. 신학을 하는 자의 고유한 영적 실존이 세상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하오. 당연한 이야기요. 신학자(또는 신앙인)도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병들고 늙고 죽소. 철저하게 세상의 피조물로 실존하오. 그 세상과 따로 놀면서 신학을 할 수는 없소. 신앙도 그렇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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