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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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바울이 말하시는 고린도서신의 사랑이 행하기가 불가능하시다고 생각 하시는지요...
뭐 사랑이 쉽게 행동으로 옮겨질수 없는것이라는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원수가 누구입니까? 죽이고 싶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죽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죽음이란것이 가장 큰 고통을 주는것이라고 생각해서 원수를 죽이고 싶은 것이겠지요... 어쩌면 죽음조차 그에게는 사치라고 느끼시는 분은 그 원수를 살려두고 평생 괴롭히며 고통주며 후회하게 만들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가 쉬울까요? 가끔은 자신의 자식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살인자를 자신의 아들로 삼고 살아가는 성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과연 그 사랑이 누구에게나 쉽게 이행되는 행위인가요?
사실 저는 원수를 사랑할수는 없지만, 원수를 사랑하기는 쉽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앞뒤가 안맞는 말입니까?
원수를 사랑할수 없는데 사랑하기가 쉽다니요.....
생각만해도 죽이고 싶고, 괴롭히고 싶고, 그가 고통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원수를 정말 사랑하기 쉬운 것일까요?
오늘 네이버뉴스를 보니 인면수심의 강도강간범에 대한 기사가 나왔더군요...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서 부녀자를 성폭행한 사람이 붙잡혔다는 뉴스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을 가정파괴범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 했었는데....
우린 과연 이런 사람을 사랑할수 있을까요? 내 아내를 내 딸을 그들의 자녀가 보는 앞에서 무참하게 성폭행하고 금전을 강탈해가서 가정을 파괴한 사람을 사랑할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저에게 그런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저는 당연히 안된다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목을 "참 쉬운 원수 사랑하기"라고 했을까요?
사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약간 바꾸면 쉬울것 같아서 그렇게 쓴 것입니다.
나의 원수를 사랑하기는 어려워도 남의 원수를 사랑하기는 훨씬 쉴울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원수를 바꿔서 사랑하기를 해보자는 것이지요...
나의 원수는 그냥 놓아두고, 남의 원수를 사랑해 보는것은 어떠냐는 것입니다.
그걸 행동하시는분들은 많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그러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에게는 원수가 되는 그 사람을 여러분은 사랑하고 계실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겠습니다. 어느 사람이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붙잡혀서 교도소를 갔다면 누군가가 그를 위해 교화위원이 되어서 그를 도와줍니다. 즉 남의 원수를 그 교화위원들은 돌보며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원수를 사랑하려고 너무 집착해 하지 말고, 내 원수는 내 대신 다른분이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나는 남의 원수를 사랑해주는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 원수도 남이 사랑해주고, 남의 원수도 내가 사랑해주면 원수들은 다 사랑받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원수사랑하기 쉬운방법인것 같습니다.
중요한것이 있습니다. 참 중요하지요...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 할 존재인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실은 그 원수가 자신이라는것을 인정하는데는 인색하답니다. 우리가 이웃을 도와야할 사람이라는것을 인정하지만, 도움을 받아야할 사람이라는것은 잘 인정 안하지요.
우리는 남을 용서해야하는 사람이지만 그 이상으로 남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라는 주기도문의 한부분의 위치가 자꾸 사하여준 사람의 위치에만 머물게 하는군요.. 사하여준 사람이 있으면 사함받은 사람이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때린 사람이 있으면 맞은 사람도 있고요... 때린사람만큼 맞은 사람이 있으면 용서해준사람만큼 용서받은 사람이 있지요. 그럼 우린 용서받은 사람입니까?: 용서한 사람입니까? 맞습니다. 용서를 해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럼 우리는 용서를 받아야 할 원수 입니까? 아니면 용서를 해줘야할 사람입니까?
우리의 현 주소는
모노톤이 아니라, 서라운드며 입체적이니까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