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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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데일 패러독스:
베트남 전쟁 당시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병사들 가운데 미군 최고위 장교였던 스톡데일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용어이다. 그는 수용소에 갇혀 있던 8년 동안 큰 고초를 겪으면서도 가능한 한 많은 포로들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전쟁 영웅이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들이었다고 한다. 낙관주의자들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그렇게 되지 않자 부활절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근거 없는 희망만 품다 결국에는 상심해 죽어갔다고 한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언젠가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아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는 성공 방정식을 가르치고 있다. (인터넷에서 인용)
안토니오 그람시는 감옥에서 보내온 편지에서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란다. 어떤 상황이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비축해 놓은 의지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단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즐겨 인용하는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는 비록 로맹 롤랑의 것이었지만, 우리에의 뇌리에 각인되기에 충분합니다.(안토니오 그람시 김현우 살림)
긍정의 힘으로 대표되는 조엘 오스틴의 낙관적 사고방식에 대해서 찬반이 극한 대립의 양상까지 보여 지고 있지만, 오늘은 두 가지를 화해시켜보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목회자들이 설교 때 많이 하는 이야기중 하나가 긍정적사고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의 대표적 유명인은 단연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였습니다. 목회자들은 설교때 반 컵의 물을 비유로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은 ”물이 반밖에 안남았구나“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항상 저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왜 물이 반밖에 안남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인가? 하고요...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고나서, 물을 한 컵 가득 채우는 것이 좋겠구나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그것이 긍정적인 생각이 되는건 아닐까요? 결국 물이 반이 남은 것은 어떻게 생각하던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자들은 농부가 밭을 갈 때 밭고랑의 남은 숫자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논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열 개의 밭고랑을 갈면서 한 사람은 두 개를 먼저 갈고서 아 벌써 두 개를 갈았구나 이제 겨우 여덟 개가 남았구나 하면서 즐겁게 일했고, 또다른 한사람은 아 이제 겨우 두 개를 갈았구나, 아직 여덟 개가 남았구나 하면서 즐겁지 못하게 일했다고 하면서 즐겁게 일한 처음 사람이 긍정적이어서 나머지를 더 빨리 갈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성도에게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신앙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감옥에서 고생한 스톡데일은 살아났기 때문에 그의 이론을 스스로 경험상 증명했지만, 안토니오 그람시는 감옥에서 죽었기 때문에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였습니다. 무엇인가를 경험한 사람을 논리로 설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기도조차 근거 없는 낙관적인 사고방식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의주의자(skeptic)은 그리스도교나 오컬트나 다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인들은 기도의 힘을 의지합니다. 회의주의자사전을 잃어버려서 인용하기 쉽지 않지만, 회의주의자 로버트 캐롤의 회의주의자 사전에 의하면(저의 기억에 따르면) 병원에서 입원중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기도를 한 그룹과 기도하지 않는 그룹을 조사한 결과 기도한 그룹이 기도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서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고, 도리어 악화되었다는 몇몇 증거는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사례가 몇몇의 사례로 끝난 실험이 아니고, 아주 많은 실험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플라시보효과조차도 상당히 의심하고 있는 회의주의자들입니다. 회의주의자들이 인정하는 것은 병문안 뿐 이었습니다. 병문안을 많이 받은 환자들은 병세의 호전이 아주 뚜렷하였다고 하더군요...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 병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되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리스도교의 기도조차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 중 칭찬이란 것이 있습니다.
“칭찬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정이나 지지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칭찬은 우선 시기심의 다른 얼굴이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재능에 대해, 그것을 빼앗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위해 칭송하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칭찬은 또한 말로써 타인을 움직이려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칭찬의 위력을 아는 사람들은 칭찬으로써 타인을 조종하는 생존법을 사용한다.” (사람풍경 김형경 예담 320쪽)
이 얼마나 음흉한 마음이 깃들어 있는 칭찬인가... 고래를 춤추게 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남의 일에 칭찬을 하면 매우 긍정적으로 보이고 비판을 하면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칭찬이 그리 웃기는 긍정적이라는 것을 잘 알아차리기가 힘이 듭니다.
이렇게 두 가지의 예를 들었지만, 실제로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들은 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것 입니다. 이걸 기도의 응답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확대하지 말아주세요^^
칭찬이나 긍정적인 말투 등은 갈등회피에 대단한 영향을 줍니다. 갈등회피는 조화의 지향이라는 적극적인 가치를 지향하기 보다는 대립적 상황이 주는 심리적 불편함을 잘 참지 못하는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153쪽) 이러한 갈등의 회피는 교회 내에서도 상당히 만연해 있습니다.
권위주의와 갈등회피주의는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수단방법 중심주의와 잘 맞아 떨어진다.(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183쪽)
사실 낙관주의는 현실을 견인하는 어떠한 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약조차도 극한 고통에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병원에서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투약해주니까요.. 낙관주의는 마약과 같은 힘이 일부 있습니다. 현실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에게 근거가 없어도 견딜 수 있는 힘만 되어 준다면 그것 하나만으로 족할 것 입니다. 현실을 너무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상보적인 진리와 분리된 어떤 진리도 반쪽 진리에 불과하다.(신앙의 눈으로 본 심리학 22주 적극적인 사고의 능력 174쪽)는 입장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고의 한 유형 곧 실패할까 조마조마해서 미리 이것저것 재 보는 불안감이 높은 성취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나타나 있다. (같은책 179쪽)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적인 사고도, 긍정적인 사고도 아니고, 오직 현실적인 사고라고 하겠다. 그것은 관심을 유발시킬 만큼 충분히 비관주의적이며, 희망을 양산할 만큼 충분히 낙관주의적인 사고로 특징지어진다. (같은책 179쪽)
위의 글을 보면 마치 낙관과 비관의 상호보완이 옳은 것으로 결론지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던가요?
또다른 결론은 추후에 내겠습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긍정과 부정의 사고는 사물이나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계열화된 사고인 듯합니다.
물컵뿐만 아니라 평행선에 대한 이야기도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 선"이라는 도형적 정의와 영국 록그룹 spirogyra의 노래 처럼 "평행선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가사와 같이 같은 사물에 대하여 서로 다른 사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사건과 사물을 동일화를 위하여 포획하고자 하는 의도일 뿐입니다.
사물과 사건은 스스로 그러할 뿐이지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습니다.
無爲自然
잘 읽고 좋은 생각하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제가 한 줄 납깁니다.
웃음님! 글 잘 읽었습니다. 긍정에도 부정에도 치우치지 않는 글을 올려주셔서 도움이 됩니다. 얼마전에 이곳에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을 어떤 분이 소개해서 다른 분의 의견도 있으리라 생각되었는데 역시 웃음께서 글이 올려 주셨네요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정립이 안되었는데요 참고가 되겠습니다. 계속 이부분에 대해 써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