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희망버스'에 대한 두 개의 시선

Views 1543 Votes 0 2011.07.12 11: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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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씨의 고공 농성을 접하며,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정의가 욕되지 않게 해달라고, 당신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달라고.

 

아쉽게도 주말 근무가 겹쳐 '희망버스'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살펴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한겨레신문을 보니 '희망버스'를 다룬 두 편의 칼럼이 눈에 띕니다. 하나는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안병진 교수가 쓴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이고, 다른 하나는 <고래가 그랬어>의 김규항 발행인이 쓴 '부산발 혁명, 희망버스 혁명'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게는 두 편의 글이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안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삶의 뿌리와 정의의 복원을 위한 노동과 자유주의의 전면적 결합은 2012년 선거의 핵심적 화두가 되어야 한다.' 밑줄은 제가 친 것인데, '희망버스'를 통해 노동 진보세력과 자유주의자(민주당, 국민참여당)의 결합(아마도 통합? 차선으로서의 연대?)을 강조하며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 발행인은, '희망버스는 오늘 난무하는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 근본적으로 질문한다'며, '희망버스는 우리에게 제도정치에 대한 자기최면적 기대를 접고 자본을 견제하는 우리의 자치적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고 주장합니다. 한겨레 지면을 통해 김 발행인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별 차이가 없으며, 노동 진보세력이 힘들고 시간이 걸려도 독자적인 자신의 길을 가야한다고 꾸준히, 일관성있게 주장해 왔습니다.

 

다비안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저는 '희망버스'에 모인 사람들의 계급적, 혹은 계층적 특성을 실증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따져보자면, 자유주의자도 있을 것이고, 노동자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의식없이 참여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계급, 계층이 다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크게 봐서,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유시민, 문재인이나 박근혜, 김문수, 오세훈, 혹은 이회창이 김규항류의 사람들에겐 별 차이가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노무현의 실패가 주는 교훈 가운데 한 가지가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과, 이후의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적지 않은 차별성을 보이지 않았던가요? 김영삼 정권조차도 이전 군부 독재 정권과 나름의 차별성을 두려고 하지 않았던가요? 현재의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되느냐, 아니면 진보개혁 정권으로 바뀌느냐는 분명히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현장만 시야에 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진보개혁 정권으로의 교체가 이뤄진다면, 진보 세력이 그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더욱 생길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진보 세력이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재인의 운명』을 보면, 참여정부 당시 노동부 장관을 민주노동당에게 맡길까 고민했다가 말도 꺼내지 못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노동 진보세력의 입장에서는, 참여정부와는 이념적 좌표와 지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것 아니냐고, '선명'하게 말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이 어쩌면 '경직'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정권을 잡으려면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택을 받아야 하는데, 노동 진보세력은 그런 준비가 돼 있는가, 답답해 보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말이 길었네요. '희망버스'에 대한 두 편의 대비되는 글을 올립니다. 꼼꼼히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주장에 더 공감하시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sg-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안병진/ 한겨레(2011 0711)

 
희망버스는 단순히 주변부로 몰린
노동자 인권 지원 투쟁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민주공화국 운동이다

 

칼럼 마감 시간 때문에 일찍 현장에서 나와 버렸다. 하지만 가슴이 너무 아프고 부끄러워 차마 글을 못 쓰고 한 시간째 먼 곳만 보고 있다. 그곳은 천민자본의 일방적 정리해고에 맞서 186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님이 계신 85호 크레인의 방향이다. 그녀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는커녕 아예 입구에서 경찰의 차단벽에 가로막혀 돌아선 것이 너무도 가슴 아프다. 그녀는 35m 고공에서 처절한 삶을 이어가고 쌍용 해고 노동자는 퉁퉁 부은 발로 연대를 위해 수백㎞를 걸어왔는데 겨우 몇 시간 걸은 발을 불편해 내려다보는 나의 뻔뻔함이 참 부끄럽다.

 

하지만 나를 가장 부끄럽게 하는 것은 한동안 나는 삶의 뿌리로부터 절연된 지식인 상태로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김진숙의 용접노동에서부터 케이티엑스(KTX)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농민들의 수확노동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 삶의 모든 뿌리가 천민자본에 의해 위협받고 흔들리고 있는데 난 그저 눈을 감아왔다. 악수를 청하는 백기완 선생님의 눈을 차마 마주치지 못하면서 나의 가족은 부산의 김진숙님을 향해 가는 희망버스에 올랐다. 이는 곧 우리 가족의 삶의 뿌리에 다시 접속하고자 하는 여행의 시작이다.

 

이번 희망버스는 단순히 주변부로 몰린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지원 투쟁이 아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삶의 뿌리와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민주공화국의 운동이다. 민주공화국이란 우리 모두의 자유롭고 품위 있는 삶의 공간 그 자체이기에 그 뿌리인 노동이 중심 어젠다가 되어야 한다.

 

그간 민주당과 같은 중도 자유주의 진영은 때로는 역량의 부족 때문에, 때로는 노동하는 이들의 주변화가 마치 21세기 트렌드인 것 같은 무지와 착각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뿌리를 훼손해 왔다. 이제 삶의 뿌리와 정의의 복원을 위한 노동과 자유주의의 전면적 결합은 2012년 선거의 핵심적 화두가 되어야 한다. 정치통합 운동도, 전당대회도 이 핵심 이슈의 관점과 고공 크레인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보적 정치세력들에게도 희망버스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희망버스 안 ‘정치학 강의’에서 김세균 교수님은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태동한 이 희망버스 운동은 21세기 연대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내가 탄 희망버스에는 87년 민중후보였던 백기완 할아버지부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96년생 중학생까지 포함되었다. 그리고 진보적 정당 운동의 김세균 교수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해 헌신해온 노혜경 시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포함되었다. 이 다양한 흐름의 접속은 전통적 노동운동에는 창조적이고 발랄한 자극을 주고 반대로 중간층과 신세대 운동에는 깊은 무게감을 부여해준다.

 

리 호이나키란 미국의 실천적 지식인은 평생의 화두를 삶의 뿌리와 연결된 지식으로 삼았다. 그의 아름다운 삶의 여행 궤적을 다룬 책의 제목은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이다. 사실 정의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세련된 책과 강의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의란 비틀거리며 삶의 현장과 뿌리를 찾아 나선 길에서 더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오늘도 김진숙님은 35m 고공 크레인에서 강풍에 비틀거리며 정의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절규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21세기 자본주의의 미래는 장인 노동자에게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나라는 장인에 대한 예우는커녕 인간 이하로 대접하고 있다. 이제 그녀와 정리해고 노동자들을 흔들리는 고공과 거리에서 다시 삶의 단단한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 대신에 대한민국 모두가 비틀거리며 정의의 길을 찾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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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발 혁명, 희망버스 혁명-김규항/한겨레(2011 0712)
승리의 벅찬 감동을 예감한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이며 제도정치 제도언론에 대한 기대를 접고 우리 정치 우리 언론을 모색하자’는 말에 비현실적이라 미간 찌푸리던 사람들이 ‘정치도 공권력도 언론도 자본의 하수인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아침. 부산발 혁명.” 서울시청 광장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1만여명의 참여자들이 김진숙씨를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모여든 다음날 아침, 트위터에 쓴 글이다. 김진숙(@jinsuk_85)씨는 이 글을 리트위트하며 덧붙였다. “희망버스 혁명!”

 

혁명. 체제 안에서의 변화나 개혁이 아니라 체제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뜻하는 말. 우리는 이 말을 폐기한 지 오래다. 수사적 표현으로서 혁명이라는 말은 상업광고에서조차 쓰이지만, 그 사실은 이젠 누구도 혁명이라는 말을 본디 의미로는 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혁명이라는 말이 오갈까? 희망버스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좀더 근본적인 곳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명의 육체에 새겨진 이틀의 체험이 그것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오늘 한국을 지배하는 건 이명박도, 이명박의 미래로서 박근혜도 아닌 자본이라는 것. 조남호와 정몽구와 이건희 같은 자본가들이 한국의 진짜 지배자이며 정치와 공권력과 제도언론은 단지 그들의 도구이자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3년 전 한국에선 촛불행진이라 불리는 거대한 시민의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촛불행진은 이명박이라는 악덕한 대통령에 대한 분노에 몰두함으로써 결국 모든 걸 이명박 탓으로 돌린 개혁정치 세력이 그 열매를 차지하고 말았다. 그러나 희망버스는 김진숙이 188일째 싸우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싸우던 김주익이 129일째 되던 날 목을 맨 건 바로 그 개혁정권에서였다는 것, 개혁적 공권력과 개혁적 언론에서였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그들 역시 자본의 또다른 도구이자 하수인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희망버스는 오늘 난무하는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희망버스는 우리에게 제도정치에 대한 자기최면적 기대를 접고 자본을 견제하는 우리의 자치적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소통하고 연대하고 희망버스를 타고 싸우면서. ‘세상을 바꾸는 정권교체’는 그 힘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정치,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의 편에 서는 정치, 이윤이 아니라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정치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시작된다.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간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희망버스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역시 질문한다. 김진숙의 싸움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었다. 김주익이 개혁정권에서도 실패한 싸움을 이명박 정권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김진숙은 김주익이 죽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현실적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김진숙의 비현실적인 선택을 지지하는 희망버스도 마찬가지다. 만명의 참여자는 김진숙을 무사히 내려오게 하지도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만명 가운데 누구도 희망버스가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승리의 벅찬 감동을 예감한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에서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선택과 행동이 모이고 쌓여 모든 비현실적인 것들을 현실로 바꿔낸다. 거대한 물살처럼 체제의 둑을 무너뜨린다. 역사는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혁명중이다. 부산발 혁명, 희망버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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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1.07.13 23:52:29
*.120.170.250

도도아빠라는 닉이 멋있네요.

나는 자세한 건 모르고,

김규항 씨 류의 분들에게 느끼는 것만 한 가지 말합니다.

너무 선명해요.

옆에 갔다가는 살이 베일 것 같더군요.

그분이 하는 말은 다음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우리 안에 있는 이명박스러움을 어쩌구 저쩌구...."

자기들만 의식과 삶이 분명하고,

나머지는 다 이명박스럽다는 말로 들리거든요. 음.

그런 분들에게는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이 다를 게 없어요.

그런 선상에서 노무현 정권 시절에

노무현을 까대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나는 그런 논리가 얼마나 허무하고 해괴한지 이해를 하기 어려워요.

당시 청와대 비서관 하다가 노대통령과 정책적인 대립 이후 튀어나온 정 아무개 씨,

파리운전사였다는 책을 쓰신 홍 아무개 씨,

성공회 대학교에 계신, 김민석 전 의원의 형인 김 아무개 목사 님 등등,

이런 분들에게는 뭔가 불편한 게 많이 느껴지네요. ㅎㅎ

다시 김규항 씨로 돌아가서,

그분의 논리는 나에게 공자 왈로 들리는군요.

종교개혁 시대의 예로 들면

루터의 입장을 따르는 나에게

그분은 뮌처처럼 보이네요.

모든 악한 질서를 폭력적으로 뒤짚어 엎으려고 한 뮌처 말이에요.

김규항 씨가 폭력 혁명을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라

논리가 그렇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소수파로 만들고,

작은 차이를 참아내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분파주의에 빠지는 것이죠.

오늘 내가 김규항 씨 공격하려고 작심했나요? ㅎㅎ

그건 아니에요.

말을 하다보니

비도 오고 해서 배설하듯이 글을 썼네요.

도도아빠 님의 진지한 글을 잃다보니

나도 공연히 진지해졌나봐요.

말투는 그래도 생각은 가볍답니다.

결론,

큰 틀에서 같다면 함께 가는 게 좋겠지요.

profile

도도아빠

2011.07.14 10:23:11
*.121.215.165

저도 목사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작은 차이(본인은 작다고 하지 않겠지만)를 이유로,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걷어찬다는 건,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개신교와 카톨릭, 정교회를 포함해)와 불교, 혹은 기독교와 힌두교처럼, 신앙의 본질과 그에 따른 형식에 있어 차이가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그같은 차이가 있어도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점도 받아들입니다), 이른바 진보신당의 독자파나 김규항씨류의 사람들이 내세우는 차이가 과연 그런 정도인지, 의아합니다. 또 현실적으로 독자적인 진보세력의 집권을 희망한다면, 국민들, 대중들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의 그런 태도가 집권을 꿈꾸는 모습인지도 회의적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그 작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냐는 의문도 듭니다.

 

큰 틀에서 국민들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일단 현 정권을 민주적 정권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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