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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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중학생 때까지, 어쩌면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여름이면 만화책과 추리소설 읽곤 했습니다. 마루에 돗자리 깔고 선풍기 틀어놓고, 엄마한테 수박 화채해달라고 받아먹고, 그리고 누워서 만화책도 보고 추리소설도 읽고, 스르르 잠들기도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낮은 저녁 무렵으로 넘어가고. 무더위를 그렇게 잊기도 했습니다.
며칠 동안 『신들의 봉우리』라는 만화책을 읽었습니다. 유메마쿠라 바쿠라는 소설가의 원작을 다니구치 지로가 만화로 풀었다고 합니다. 원작가와 만화가 모두 일본에서는 상당히 알려졌다고 합니다(우리나라에서도 정식으로 출판됐는데, 꽤 비싼 가격인데도 2쇄를 찍었네요).
일본하면 떠올랐던 것들(사실 요즘은 이런 이미지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을 갖게 됐습니다), 이른바 '곤조', 우리말로 하면 '근성'인가요?,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만화입니다. '일본의 혼'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5권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그래, 이런게 일본(놈들)이야,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설인만큼 '픽션'이지만,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한 자락 깔아 미스테리적 요소를 넣어 상당히 흥미롭게 구성돼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은데, 대략의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빼앗긴 일본인 산사나이가 주인공입니다. 한때 '전설의 클라이머'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산밖에 모르는 그의 집념과 의지 앞에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점차 떠났고, 결국은 혼자가 됩니다. 또 다른 '전설의 클라이머'와의 대결 아닌 등산 대결에서 잇따라 머리를 숙인 그는,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고, 산악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코스인 에베레스트 산의 남서벽 루트를 무산소 등반하기 위해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무수한 어려움을, 말 그대로 초인적인 인내와 의지로 이겨내고 정상에 오릅니다...
확실히 만화는 글과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그림이 보여주는 느낌은, 활자가 주는그것과는 또다른 맛이 있네요. 특히 히말라야 산맥과 에베레스트 산, 주요 등장 인물들의 얼굴에 대한 묘사는, 정말 탁월합니다.
『신들의 봉우리』를 읽다가, 평범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산에 가나? 올라갔다 내려올 거 힘들게 왜 올라갈까? 산에 올라가면 뭔가 달라지나?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과 선후배들과 지리산 3박 4일 동안 올랐다가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 전에도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당시의 지리산 등반은 별 감흥이나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천왕봉, 노고단을 올라섰지만, 그냥 그랬습니다. 뭔가 해냈다, 이 힘든 걸(?) 했다는 성취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위해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 낑낑거리며 올라간다는 건, 제게는 뭔가 남지 않는 장사(?)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은 달랐습니다. "…산사나이는 산에 오르기 때문에 산사나이라고. 죽기 위해서 오르는 게 아니야. 죽으면… 쓰레기일 뿐." "무슨 일이 있든 좋아!! 행복할 때도 산에 오르고 불행할 때도 산에 오른다.! 여자가 있든, 달아났든 산에 오르고 있다면 나는 산사나이 하부 조지야."
생명을 건 등반 끝에 8,848m 정상, 이 지구의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그는 이렇게 담담하게 내뱉습니다. "아무도 모르지만 해냈어! 염려하지 마, 키시(주인공과 함께 등반하다 사고로 숨진 후배 산악인입니다). 해냈어, 해냈다는 건 내 몫이야. 나만의… 그래… 아직이로군… 그렇군… 일어서면 가야겠지… 가는 거야." 그리고 주인공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내려오다 험악해진 날씨와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이 만화책을 읽으며, 등산, 특히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을 생각하다, 갑자기 '하나님'이, '신앙'이 떠올랐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 등산의 목표가 무엇일까? 정상에 서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 순간은 너무 짧다. 정상을 정복했다는 그 쾌감은, 성취감은 얼마 가지 않는다. 엄홍길 대장처럼, 그 무슨 여성 산악인처럼, 8,000미터 이상의 고봉을 정복했다고 기록된들, 그래서 그것으로 돈을 번들,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닐 것이다. 그럼 왜 산에 오를까?
영국의 산악인으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다 숨진 맬러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산에 오르는 것은)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하부 조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적어도 나는 아냐.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 내가 있기 때문이야(이 부분의 그림은 확실히 돋보입니다). 나에게 이것밖에 없어… 이것밖에 없기에 산을 오르는 거야."
이 만화에서 원저자와 만화가가 이 부분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마음이 듭니다. 산에 오르는 것은, 남보다 먼저, 빨리, 남이 가보지 않은 길로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 때문이라고. 육체와 정신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그 혹독한 환경 속에,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 과정 때문이라고. 다시 주인공의 말입니다. "이건… 마약이지." "……마약?(또 다른 등장인물입니다)" "그래. 한번 산에서 바위벽에 달라붙어보았다면, 거기서 그것을 맛보았다면 일상 따윈 미지근한 맹물이나 다름없어." 주인공에겐 에베레스트 산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른다'는 것이 본질이 됐습니다.
신앙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신앙의 거봉에 오른 구약의 시편기자들, 선지자들, 신약의 열 두 제자(유다도 포함이냐를 따지자는 건 아닙니다)와 사도 바울,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과 교부들, 중세의 아퀴나스 등 신학자들, 마틴 루터 등 종교 개혁가들... 하나님을, 예수님을 알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삶의 어느 순간, 장삼이사들은 이를 수 없는 정점에 올랐던 신앙의 선배들. 그러나 그분들에게 삶의 목표는 높고높은 그 순간과 자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순롓길에서, 멈추지 않고 걸어간다는 것, 무엇보다 하나님께 집중하며 기도하며 당신의 뜻을 따르며 걸어간다는 것, 그것이 제게는 산에 오르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하산길도 마찬가지 아닐런지요.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다고, 우리의 현실이 마술처럼 바뀌는 것이 아니지요. 때론 여전히 혹독하고, 심지어는 상황이 더욱 나빠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더니…"라는 조롱을 듣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는 내가 왜…"라는 비탄도 터져나옵니다.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이, 금의환향의 영광과 평탄한 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집니다. 심지어는 산을 내려오다 길을 잘못 들거나 날씨가 나빠져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붙잡혀야 하는 우리의 신앙도 이런 게 아닐런지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물질적인 영광과 풍요의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고 순종하기 위해, 자신을, 때로는 가족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하는 길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산에 오르는 것도 그런 길인 것 같습니다. 돈과 명예를 생각하면, 좀 더 순탄한 길이 있겠지요. 정상에 오르고, 다시 내려오는 그 길에서,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는 중심을 잃고, 팔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산에 오릅니다.
신앙의 길과 등정의 길, 그것은 모두 '이를 악무는 찬란한 고통의 길'이구나 싶습니다. -sg-
그 고생을 하면서 왜오르냐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올라보지 못한 사람은 그 맛을 모르지요. 말로 표현할수없는 그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