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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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수원대학교 이주향 교수란 분이 경향신문에 '그림으로 읽는 철학'이라는 꼭지로 연제한 글중 밀레의 만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부분입니다.
우연히 밀레의 만종에 대한 글을 검색하던 중 찾아낸 것인데 그림에서 '소박한 시골생활의 힘'을 발견한 이 분의 철학이 하두 소박(?)해서 저는 이분이 미술을 전공하는 분인줄 알았느데 철학을 전공한 분이더군요.
밀레의 그림을 다른 것들과 접속시키면서 감상하고 싶어서 글을 인용해 봅니다.
ㆍ소박한 시골 생활의 힘
저기,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그저 한 번 따라해보고 싶습니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는 넓은 평야에 서서, 멀리서 들리는 은은한 저녁 종소리에 맞춰 홀린 듯이 손을 모아보는 일! 편안한 신발, 편안한 옷이면 좋겠습니다. 감자밭을 뒹굴어도 아깝지 않은! 일을 하고 손을 모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아는, 편안한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겠지요? 맨 얼굴이 부끄럽지 않고, 격식을 차리지 않은 옷을 누추하게 느끼지 않는 좋은 사람과! 아, 땀 흘려 일한 직후라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으는 행위에 좀 더 힘이 붙을 테니까요.
저기 저 밀레의 만종엔 소박한 시골생활의 힘이 있습니다. 우아하고 품위있게 살게 하지는 못하지만 땅을 살피고 생명들을 보살피고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게 하는 힘! 그러다 보면 직관을 믿게 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고 매사 감사하게 되지요.
그래서 고흐가 그토록 저 그림을 좋아했나 보지요? 고흐가 사랑한 그림들이 있습니다. 행복으로 충만한 여자의 표정과 남자의 손동작이 인상적인 ‘유대인 여자’, 그리고 저 그림 ‘만종’입니다. 그러고보니 저 그림의 정서가 ‘감자 먹는 사람들’과 통해 있지 않습니까? 산다는 것이 가난을 뜻한다 해도,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것이라 해도 생을 아끼며 사랑하며 누리며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함 말입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 ‘만종’, 1857~59년, 캔버스에 유채, 55.5×66㎝, 오르세 미술관, 파리
그 얘기를 읽으며 웃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드라마를 만들기 전에는 저렇게 손을 모으는 일이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하긴 매일매일 밭을 갈고 생명을 돌보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생에 대한 감수성 없이 밀레를 이해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아마 달리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고도 불안감을 느꼈을 겁니다. 달리의 그림들을 보면 모든 선이 불안으로 흐르지 않나요? 밀레의 그림을 패러디한 달리의 ‘atavism at twilight’를 보십시오. 불안은 달리에게 친숙한 정서입니다.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달리의 감성은 밀레를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이 아니라고. 자연을 믿고 운명을 믿고 가난하고 소박한 생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가 그에게는 낯설고,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밀레는 다릅니다. 밀레는 가난하고 소박한 삶이 불편하지 않은 정서 속에서 나서 자란 사람입니다. 밀레는 생에 감사하는 농부들을 그리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옛날에 저녁종이 울리면 할머니는 언제나 일손을 멈추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어!”
저렇게 기도하는 손이 삶의 중심인 한 저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저들이 손을 모으는 것은 사람이 약해서 종교로 도망가는 일이 아닙니다. 저들은 사람을 믿고 생명 있는 것을 믿고 자연을 믿어서 초자연의 신비를 뱃심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 그림 ‘만종’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지요? 교과서에 나와 있는 유명한 그림이어서가 아니라 만종의 정서에 친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매일 새벽 정화수를 떠놓고 하늘에 기도하고 땅에 기도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박수근이 밀레를 좋아했고, 밀레를 좋아하는 우리가 박수근을 좋아하는 겁니다.
비록 x-ray 투시상에서 작은 상자 형태의 밑그림이 관찰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만종"의 해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예를 들자면, 밀레가 처음에는 아기의 관을 놓고 기도하는 슬픈 장면으로 초안을 계획하였으나 나중에 관을 감자바구니로 수정하면서 작품의 분위기도 일부 변하게 되었다는 의견입니다. 즉, 처음에는 사회고발적인 그림으로 출발했으나 중간에 관이 감자바구니로 바뀌어지면서 최종적으로 완성본을 발표할때는 그림 전반의 분위기가 시작과는 많이 달라져버렸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이 그림을 처음 발표할때의 제목이 아기의 죽음과는 전혀 무관한 "감자수확에 대한 감사기도" 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이후에 "만종" 이라고 제목을 바꾸는 등 여러가지로 심경의 변화를 거쳤음을 알 수 있으며, 그리고 단지 제목만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차례에 걸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손 모양을 덧칠하여 바꾸었고 배경의 교회당 역시 나중에 첨가했다는 사실들로 미루어 볼때 밀레는 이 그림에 대해 처음에 가졌던 이미지에다가 점차로 여러가지 새로운 이미지들을 덧붙여 나갔던게 아닌가 추정한다는 것이지요. 즉, 처음에는 사회고발적인 비극적 이미지로 출발하여 나중에는 좀 더 포괄적이고 중의적인 개념으로 확대시켰던게 아닌가 하는 추정입니다.
또다른 의견으로는, X-ray 투시화면에 비친 네모난 상자형태의 스케치가 관을 그린게 아니라 바구니가 놓일 자리를 배치하면서 간략하게 네모상자 형태로 초벌그림을 그렸던 것이 남아서 투시되었을 뿐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견해를 따르면 죽은 아기에 관한 설 자체가 허구가 되어 버리는데, 사실 "친구가 만류하여 아기 관을 감자바구니로 바꾸어 그렸다"는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입증할만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의 진실성 여부도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뭐, 진실이 무엇인지는 밀레를 만나서 직접 들어보기 전에는 최종판결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최소한 이 그림이 낭만적이고 고즈넉한 신앙심 깊은 시골정취를 보여준다는 안일한 해석은 좀 피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비록, 밀레가 이 그림에 대해서 그렇게 말을 했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역시 입증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