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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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사태는, 말 그대로 돈이 하나님도, 사람도 짓밟고 꼭대기에 올라선 사태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돈에 버리고 그 악마적 속성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선하게 만드신 인간이기를 포기한 '조남호'씨와 그를 감싸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한중 해고 노동자들과 김진숙씨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아무 거리낌없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부끄러움도 없고, 신앙은커녕 양심에 괴로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겠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위안을 주지만, 정말로 겁이 나는 것은 이 사태를 제대로 풀지 않을 경우, 돈의 폭주를 막을 수 있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인류의 역사에서, 하늘에서 뚝 떨어져 이뤄진 적이 있습니까? 침묵하고 묵인하고 회피할 때, 하나님은, 예수님은 85호 타워 크레인에서 또 울고 계시고, 그 위에서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입니다.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3차 '희망버스'에 함께 하고 싶은데, 여의치 않네요. 실컷 글 올리며 말씀을 드리고는, 막상 현장에 가지 않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합니다. 큰 아이와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봄부터 약속했던터라, 고민입니다. 도희의 병치료 과정에서 도영이에게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에 둘이 여행가기로 했습니다. 도영이도 함께 '희망버스'를 탈까 생각도 했는데, 부담스럽습니다. 또 중학생인 아들과 아빠가 하는 여행길, 아이와 속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했습니다. 실은 얼마전 다비안 한 분이 쪽지로 함께 가자고 하셨는데, 제가 고민만 하다 답쪽지를 못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이번 3차 '희망버스'에 함께 못해도, 너무 심하게 나무라지 않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다음은 오늘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 두 편입니다. -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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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호 - 이명수(한, 2011 0726)
아무리 자본독재 시대라지만
온 나라를 상대로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회사 쪽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정리해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부산 영도구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의원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사주의 부도덕하고 방만한 경영’ 때문이라고 지적했으며 국무총리는 ‘174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나눠가지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질타했다.
그러니 일반 시민들이 해고노동자들의 딱한 처지에 공감하고 분노하며 힘을 보태는 건 당연하다.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조선소를 다녀온 시민들만 만명이 훨씬 넘는다. 이번 주말 세번째 희망버스가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다시 출발한다.
매일 저녁 조선소 앞에선 85호 크레인을 위한 길거리 미사가 열리고 일부는 촛불을 밝힌 채 밤샘 노숙으로 마음을 포갠다. 주말마다 그곳을 찾아 108배를 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는 크레인을 올려다보며 몇시간씩 화살기도를 쏘아 올린다. 서울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선 24시간 내내 릴레이 1인시위가 계속되고 시청 앞에선 무기한 단식농성이 진행중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부산까지 천릿길을 다리를 절뚝이며 걸었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폭염 속을 내달리며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알린다. 어느 하나 초인적이지 않은 일이 없다.
하지만 반년 넘게 한진중공업 사측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불가사의할 정도다. 사측이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한진중공업 회장 조남호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그 핵심이다. 온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진 사태에 대해 분노와 간절함을 전달하지만 ‘너희는 짖어라. 내 알 바 아니다’로 일관한다. 지난달 국회 출석을 앞두고 출국해서는 한달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자본독재 시대라지만, 일개 기업의 회장 따위가 온 나라를 상대로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 많은 이들이 단식하고, 천릿길 걷고, 삼보일배 하는 게 조남호 일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서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회장의 측근들은 용의 목덜미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는 역린의 전설까지 신봉하는 듯하다. 한진중공업 내부에서 85호 크레인은 회장의 역린인가 보다. 그럴 경우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입도 뻥긋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회장님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온 국민을 대상으로 전쟁이라도 불사할 태세다.
해고노동자 김진숙에게도 초지일관한 역린이 하나 있다. 노동자를,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가 지옥 같은 크레인 위에서 반년 넘게 버티고 있는 것도 그런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로 공화국 시민들의 역린이기도 하다. 권력자의 역린이 그런 것처럼, 김진숙이나 공화국 시민 된 모든 이들은 사람을 함부로 하는 집단에는 화산처럼 폭발한다. 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건 개인의 콤플렉스를 전근대적 방법으로 표출하는 권력자의 역린과는 차원이 다르다. 민중의 역린을 건드려서 생긴 폭발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연코, 없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권력자들은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한진중공업 회장 조남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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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딘 손을 가지고 땡볕에 노숙을 하면서 종이배를 접었습니다. 배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종이배를 일주일 동안 만 장을 접었습니다. … 초등학생 자녀에게 배 접는 것을 배워가며 소주 한 잔 하며 밤새 접었습니다.”
종이 한 장이 배가 되는 사이, 종이를 접는 손길이 열한번 왔다 갔다 하는 사이, 그들이 손끝에 실어 보낸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소주로 잠재워야 했던, 마음속에서 일렁이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살면서, 사랑하는 이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갗을 만진 시간보다 쇳조각을 어루만진 시간이 더 많았을 사람들.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느라 정작 아이와 함께 종이배를 접으며 놀 시간을 미뤄둬야 했을 사람들. 그들이 정리해고되었습니다. 김진숙씨가 살인 같은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200일이 넘었습니다.
정리해고가 살인이라는 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이 말해줍니다. 왜 ‘열심히 일한 당신’들이 일터에서 쫓겨나야 하는지. 열심히 일한 당신들을 보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기업이라면, 남은 당신들도 언젠가는 쫓아낼 게 분명합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다 해도 ‘정리해고’가 아니라 어떻게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게 도리일 텐데, 정리해고 다음날, 주주들이 174억원이라는 이익배당금을 나누었다니 이 정리해고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요.
기업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윤을 얻는 행위를 기업의 목적이 그러하니까, 자본은 원래 그러니까 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조선소를 두어 2만1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한다고 합니다. 필리핀 노동자들은 한국인 관리자들한테 늘 욕을 들으며 일하고, 점심 도시락에 구더기가 들어있더랍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군대 피티 체조를 시키고, 군가인 ‘진짜 사나이’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저임금에 산재사망사고도 많고, 부당한 일에 항의하면 바로 해고. 한국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는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을까요? 저렇게 해서 이윤을 얻는 한진중공업 자본을 인정해야 하나요?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의 오늘은 한진중공업을 비롯해 민주노동조합이 들어서기 전의 한국 노동 현장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정리해고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내일 비정규직으로 떠돌 노동현장의 모습입니다. 1970~80년대 당신들이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살아야 하기에 참아냈던 고통들이 30~40년을 지난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여기서, 저 멀리서 되풀이됩니다. 눈부신 과학과 기술, 사회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자에게만 가혹한 현실은 여전한가요?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쫓아내면 쫓아내는 대로 따라야 하는, 노예이기를 강요하는 현실은 왜 변하지 않는 걸까요? 아이들이 어른이 될 미래에는 그러지 않으리라 꿈꿀 수 있을까요?
1960년대 미국에서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해 버스를 탄 사람들이 있습니다. 버스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남쪽을 향해 달렸습니다. 흑인은 버스 앞자리에 앉을 수 없었던 당시, 그 버스에는 앞자리에 흑인들이, 뒷자리에 백인들이 앉았습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그 버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프리덤 라이더스’ 입니다.
2011년 한국에서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버스를 탄 사람들이 있습니다. 버스는 한국사회가 위험한 곳에 올려놓은 김진숙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있는 남쪽을 향해 달렸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탔습니다. 어두운 밤, 부산에서 자본의 사병으로 변한 공권력은 위험한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쏘고, 바로 눈에 대고 최루가스 스프레이를 뿌리고, 곤봉으로 사람을 쳤습니다. 그래도 버스는 멈추지 않습니다. 7월30일 세번째 버스가 출발합니다. ‘희망의 버스’입니다.
희망의 버스에 탄 사람들, 그리고 마음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길을 나섭니다. 나, 내 가족, 내 것에만 집착하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이웃이 겪는 고통에 마음 불편해하고, 누군가 간절하게 외치는 말에 귀 기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를 넘습니다. 각자 삶의 자리, 견주기 어려운 힘든 일이 있을 겁니다. 그것마저 붙안고 희망을, 사랑을, 연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걸음을 내딛는 일에 이제 당신이 함께해 주십시오. 저 너머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