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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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님, 잘 지내시는지요?^^ 도희 위한 기도 늘 고맙습니다. 저는 삼송님이 말씀하시는 소통에 전적으로 같은 생각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삼송님의 질문에 글을 쓰다보니 좀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다비안들도 함께 읽으시면 좋겠다 싶어서, 댓글이 아니라 따로 글을 올립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밑의 밑에 있는 '이것이 조선일보다①'을 꼭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삼송님의 질문은, '한겨레 신문은 정말 선생님이 생각하실때는  편향없이 공정합니까? 조선일보는 권력이고 한겨레 신문은 권력이 아닙니까?  사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문제 많죠 그러면 진보적이라고 하는 한겨레 신문은 과연 편향없이 순수한지요?' 이지요? 제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순수가 뭐냐, 편향이 뭐냐, 객관적이란 게 가능하냐, 이런 개념이나 주장이 아니라 가능한 실증적인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이라고 늘 편향없이 공정하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한겨레신문도 권력입니다. 그런데 제가 의아한 것은, 한겨레나 '조중동'이 동급으로 비교가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먼저 양적으로 볼까요? 한겨레는 제가 알기로는 발행부수가 60만부가 안 됩니다. '조중동'의 공인부수는 각각 150만 부, 120만 부, 100만 부 가량인 것으로 압니다. 조선일보의 발행부수는 300만부 정도 된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 한겨레신문에는 삼성의 광고가 실리지 않았습니다. 삼성을 비판하고 여론을 환기하는 기사가, 그래도 꾸준히 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한겨레신문은 재정이 늘 헉헉댑니다. '조중동'은 재벌과 공존하며 주고받습니다. 때로는 기사로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속내는 다른데 있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플라이급이나 페더급 정도 되는 선수와 헤비급 또는 무제한급의 선수를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속된 말로 한겨레신문에 볕든 날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였습니다. 그렇다고 한겨레신문이 그 두 정권을 만들었고, 그래서 지분을 요구하며 권력에 밀착했습니까? 이런 적은 있습니다. '조중동'이 파상적으로, 언론의 정도와 본분이 뭐건 상관없이 공격하는데, 한겨레라도 감싸여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움직임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부 한편에서는 그렇다고 정부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떨어뜨려선 안된다는 자성도 강하게 일었습니다. 한 가지 더 살펴볼까요? 한겨레신문이 진짜 권력 지향적이었다면, 그 두 민주정부 때 조선일보가 독재정권 아래서 그랬던 것처럼 사세를 확장하며 재정 문제를 해결했을텐데,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일보를 살펴볼까요? 박정희 때까지 동아일보에게 크게 밀렸던 2등 신문이었습니다. 중앙일보에게도 밀리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전두환이 집권하자 전두환에게 완전히 달라붙었습니다. 기자들의 속된 말로, 전두환을 열심히 빨아준 것입니다. 80~90년대, 대한민국에서 영향력 1위의 언론인으로 날렸던 조선일보 김대중 전 주필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르포랍시고 쓴 기사에서 광주 시민을 '폭도'로 매도하고 딸갱이로 딱지붙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전두환 정권 내내 철저하게 낮추며 권력의 시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동아일보는 그래도 전두환 정권을 종종 비판하는 기사를 싣기라도 했는데, 조선일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힘입어 사세가 크게 성장해 동아일보를 따라잡았고, 노태우 정권 들어서서는 완전히 1위에 올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건 제 주장이 아니고 회사의 매출, 순익, 윤전기 차입 등 관련 통계를 보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조선일보의 논조는 어땠습니까? 조선일보가 자랑한다는 논객 류근일씨가 1992년 대선을 며칠 앞두고 쓴 칼럼을, 많은 언론학자들은 언론인이 결코 써서는 안되는 칼럼의 대표적인 예로 지목합니다. 금도를 넘어 특정인, 특정 정파를 노골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이 대선에 뛰어들면서 김영삼 후보의 표를 잡아먹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류씨는 칼럼에서 이런 취지로 썼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정주영씨가 적당히 YS의 표를 갈라먹으면 DJ가 집권한다, 그렇게 할 것이냐', 이게 이른바 정론지를 자처하는 신문에서 나온 칼럼입니다. 정주영씨에게 투표하면 DJ가 대통령 되니까 알아서 투표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YS가 승리했습니다. 이 때부터 조선일보의 '정권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이후 조선일보는 YS 집권기 내내 또한번 영화로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심지어 YS 후반기에는 그 영향력이 대통령보다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삼송님, 혹시 '밤의 대통령'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방우영씨가 회장으로 있을 때, 몇 살인지 생일을 맞아 연 잔치에서 조선일보의 간부가 방씨를 가리켜 했다는 말입니다. 낮에는 YS가 대통령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지만, 밤에는 방 회장이 대통령이라고 아부한 것입니다. 언론계에서 크게 회자됐고, 지금도 조선일보의 폐해를 말할 때 나오는 얘깁니다. 조선일보의 권력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오만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홥니다.

 

요즘은 그래도 좀 덜하지만(누워서 침뱉기거든요), 몇 년 전까지 '조동'이 싸우곤 한 주제가 있습니다. 서로 내가 민족지라고 원조 싸움을 벌이는 겁니다. 조선일보의 시작은 정말 민족지였습니다. 특히 1920년대인가,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이 대거 조선일보 편집국에 들어가 신문을 발행했을 때는, 민족지다웠다는게 언론학자들의 평갑니다. 그러다가 일제의 탄압을 받아 신문이 정간, 휴간을 거듭했고, 그러면서 경영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금광으로 떼돈을 번  방응모가 조선일보사를 인수했고, 그 뒤 영예로웠던 민족지 조선일보는 친일의 선두에 나섰습니다.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여론을 왜곡하고, 그러다가 정치권력의 위에 올라서 호령하고, 한편으로는 경제권력과 결탁하고, 그러면서 정권을 창출하고.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의 일그러진 이제까지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정치권력은 국민의 투표를 통해 획득한다는 정당성이라도 있는데, 조선일보의 권력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5년하면 물러나야 하고, 국회의원은 4년하면 다시 선거에 나서야 하는데, 조선일보의 권력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YS 당시 조선일보 안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다고 할까요?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조선일보)은 무한하다."

 

삼송님, 저는 87학번으로 6·10 항쟁을 겪었습니다. 한 가지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도둑질당했습니다. 바로 언론 민주화의 과실을 '조중동'에게 고스란히 강탈당한 것입니다. 1988년 언론청문회 때 방우영 회장을 비롯해 동아일보 김상만 회장이 청문회에 불려나갔습니다. 정말 죄인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 못같습니다. 노태우 정권이 일정 부분 진행하고, YS 정권이 그래도 좀 더 넓혔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굳건히 한 것이 형식적 절차적 민주화였습니다(MB정권은 이같은 민주화를 집권 5년도 안돼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기로 돌렸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론의 자유입니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목숨값과 독재에 맞서 싸운 많은 기자들의 해직의 대가로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에게 빌붙어서 언론 민주화 투쟁을 가로막았던 조선일보는, 마치 자신들이 정권의 탄압을 받았던 것처럼 거짓말하고, 언론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것처럼 속입니다. 이걸 언론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볼까요? 노무현 정부 때 '조중동'이 비판했던게 '회전문 인사', '코드 인사'였습니다. 삼송님 보시기에는, MB가 인사를 잘 하고 있나요? 고소영 내각, 소수 측근 중심의 회전문 인사, 심지어 요즘은 '누나 인사'까지 합니다. 그런데 '조중동'이, 노무현 정부에 퍼부었던 것만큼, MB 정권을 비판합니까? 안 하거든요. 종편을 미끼로 MB정권이 '조중동'을 쥐락펴락 한 것도 있지만(이동관 전 대변인은, MB 정권이 역대 대한민국 정권 가운데 더할 나위 없이 가장 좋은 언론환경이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조중동'은 본질적으로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에 '개혁'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겁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제까지의 글을 다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겨레신문도 권력을 갖고 있고, 모든 사안에 대해 공평무사 불평부당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겨레신문이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처럼 언론의 가면을 쓰고 족벌 세력과 극우 세력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펜을 갖고 장난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또 한겨레신문 정도의 영향력과 조선일보의 권력을 비교하는 것은, 흔한 말로 7살 짜리와 어른을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언론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개인 언론사들의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추구하는 방향은 자기 회사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광고를 많이 주는 기업에 편향적이고 또 권력지향적일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부분도 질문하신 것인지, 아니면 의견을 주신 것인지 모르겠는데, '조중동' 자체와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은 이런 논리를 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갖는 특수성을 무시한 정글의 논리, 천민자본주의의 논리입니다. 신문사들이 '자기 회사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고, '광고를 많이 주는 기업에 편향적이고 또 권력지향적'인 것을 오냐오냐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이 사회는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돈만 되면 언론이건 뭐건 상관없다는 그런 논리입니다. 그 좋은 예를 바로 요즘 영국에서 보고 있지 않습니까? 머독의 전화 해킹 스캔들. 또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KBS의 민주당 도청 의혹. 언론은 언론이어야 합니다. 언론이 삼성같이 굴고, 언론사 사주가 이건희 회장처럼 군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제가 성경의 지식이 많지는 않아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성경 기자들이 이미, 있는 자들의 횡포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지 않았던가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추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돈이면 다 된다는, 억울하면 돈벌라는, 이 미친 시대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이미 그에 대한 결단을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요? 제가 좋아하는 '마리아의 찬가'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누가복음 1장 51~53절)

 

삼송님, 제가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조중동'이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고 생각하시나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목숨을 걸고 2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김진숙씨에 대해 '조중동'이 어떻게 보도하고 있습니까? 좀 거친 말일 수 있는데, 제가 '조중동'을 읽지 않고 있지만, 김진숙씨가 왜 싸우는지, 조남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진지하고 성실하게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부탁 말씀을 드린다면, 오늘부터라도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를 함께 비교해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또 앞서 말씀드린 '미디어 오늘' 같은 기존 언론을 감시하는 언론도 살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조선일보가, 돈의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정말 언론답게 보도하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저는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저는 신학을 공부해서 신앙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이, 정치적 허무주의나 사회적 사안에 대한 양비론, 양시론을 이끌어내고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전해주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마음과 몸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 주시고, 치료가 필요하면 손길을 뻗어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남의 나라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정 목사님의 해석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온힘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닐런지요.

 

삼송님, 긴 글로 번거로움을 더했네요.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제 글이 삼송님과의 대화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도희 위한 기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늘 고맙습니다.     -sg-


삼송

2011.07.29 06:41:42
*.119.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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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아빠

2011.07.29 14:27:40
*.115.223.46

삼송님, 고맙습니다. 좀 길다 싶게 썼는게, 다 읽어주신 것 같아 기쁩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지만, 글이 길면 좀 읽다가 그만 두기도 하잖습니까?^^ 다만 제가 혹시라도 과하게 썼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열린사회'에 대한 삼송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니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자기 중심성이 강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에 삼송님처럼 건강한 보수주의자는, 정말로 감사합니다. 삼성송님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저는 저와 다른 의견을 좀 더 깊이 있게 알게됩니다.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저의 생각에 약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또는 그런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들을 줄은 알게 됩니다. 그런 과정-시간이 많이 걸리겠고, 대화가 감정적이 되지 않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어려움은 있지만-을 통해 이해의 폭과 너비가 깊어지고 넓어지겠지요. 실제로 삼송님이 알려주신 문사모 관련 기사를, 조선일보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제 원칙에는 맞지 않지만, 정말로 조선일보의 변화의 낌새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조선일보가 그런 열린 자세를 가지고 이제까지 보도해 왔고, 지금 그렇게 보도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의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조선일보의 과거사를 보면 그런 열린 자세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성의 모습도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삼송님, 해방 이후 조선일보의 편집국장 가운데 호남 출신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제가 아는 범위에서 말씀드리면, 단 한 명입니다. 그것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어쩔 수 없이 임명한 것입니다. 이런 신문사가 이 사회에 대해 건강한 보수적 시각을 갖고 열린 자세로 보도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보수와 진보에 대한 떡진머리님의 말씀에 삼송님도 동의하셨듯으니 말씀드리기가 수월합니다. 제가 '이것이 조선일보다①'와 '왜 조선일보가 문제인가'를 올린 것은, 진보와 보수의 관점에서 논쟁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상식과 비상식(혹은 몰상식)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조선일보를 본다고 보수주의자고 한겨레신문을 본다고 해서 진보주의자'라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로 건강한 보수주의자라면, 역사를 통해 드러난 조선일보의 정체성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 지면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는게 괴롭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성향에 있어 보수적입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중앙일보가 제휴하고 홍석현 회장이 워싱턴포스트 사주와 다정하게 사진도 찍어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워싱턴포스트지의 사주가 신문의 편집에 직접 개입한다는 얘기,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닉슨 행정부의 외압이 들어와 당시 편집국장이 흔들렸을 때, 오히려 당시 사주가 편집국장과 취재 기자들와 함께 했고, 결국 닉슨은 물러났습니다. 70년대 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자들이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싸울 때, 두 신문사의 사주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기자들을 회사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해직시켰습니다.

 

'조선일보는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겨레 신문은 선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가 과거의 잘못된 보도와 정치적 행태를 보인 것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정말로 보수언론다운 보수언론의 길을 걷는다면, 어느 국민이 마다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까지 조선일보가, 88년 언론청문회에 불려나간 것말고,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는 얘기, 듣지 못했습니다. 강준만 교순가가 한참 전에 말했죠. 조선일보의 문제는, 조선일보가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데 있다, 조선일보가 그 권력의 크기를 줄인다면, 큰 문제가 아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한겨레 신문은 늘 잘 하냐, 보도가 항상 공정하냐의 반론은, 앞의 글에서 어느 정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한겨레 신문도 비판받을 것 많죠. 내부의 당파성 문제도 있다고 하고. 그러나 한겨레 신문을 평면적으로 조선일보와 비교할 수 없다고 봅니다. 몇 가지 예를 들까요? 편집국장을 한겨레는 기자들이 투표해서 후보를 2배수인가 3배수 뽑고 사장이  그 가운데 임명합니다. 조선일보는 사주가 일방적으로 임명합니다. 조선일보에도 노조가 있지만, 활동이 별로 없고, 신문의 논조에 대해 비판을 못하고 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짐작하시겠지만, 노조가 사측과 맞서기도 합니다. 얼마 전 사장이 새로 선임돼 삼성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자, 노조를 중심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이 항상 선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일보에 비해 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없지만, 훨씬 건강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또 길어졌네요.^^ 언젠가 얼굴 뵙고 얘기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수련회에 갈 예정인데, 오시는지요? 비와 더위, 건강 조심하십시오. 늘 고맙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sg-

삼송

2011.07.29 15:00:09
*.109.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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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아빠

2011.07.29 15:59:24
*.115.223.46

별 말씀을요. 제가 알고 있는 것들과 의견을, 삼송님이 배제하지 않으시고 주의깊게 읽으며 생각하시니 감사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다른 이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으려 한다면, 당장은 아니어도 '수렴' 혹은 '절충'되지 않을까요? 대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미 드린 말씀의 반복인데, 특정 사안을 놓고 한겨레와 조선일보(삼송님은 경향신문을 보시니까 그것도 좋고요)의 기사와 칼럼, 사설을 비교해서 읽으시는 것입니다. 꾸준히 살펴보시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 차이가 왜 생기는지를 헤아리실 수 있을 겁니다. 또 저도 그렇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신앙의 양심'에 비춰본다면 더욱 좋겠지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통'과 '열린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sg-

삼송

2011.07.29 17:42:55
*.109.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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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

2011.07.29 09:52:33
*.126.124.163

두 분 이야기에 끼어들게 되네요.

 

신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집에 배달된 경향신문을 갖고 와서 읽습니다.

한겨레 신문은 노조 사무실에 있으니, 편할때 가서  읽습니다.

 

저는 정말 따뜻하고, 합리적인 참 보수자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단지 부서 안에서 경향신문을 정독한다고 좌파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아니올시다 입니다.

단지 진보 신문 몇장읽고, 관련 서적 몇권 읽는다고 진보라고 불리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시대에 대한 별 고민도 없으며, 행동하는 양심이 없는 한, '나는 보수이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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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진머리

2011.07.29 13:00:55
*.181.245.104

스스로를 진보다 혹은 보수라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안에 모두 양면을 간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개인의 측면에서 볼 때 제가 알고 있는 사회운동가들 중에도 어떤면에서는 보수적인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분들도 많으니까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진보적였던 것들이 보수적인 것이 되버리는 경우는 어쩌면 당연하게 우리들이 직면하는 것들입니다.

한 사람의 이러한 마음과 경향을 얼마정도의 비율로 측정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비율이 많은 것을 진보적이라고 혹은 보수적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경향적으로 그러한 측면이 존재합니다만 그러한 경향들 조차 온전히 하나의 측면으로 명명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 이라고 생각됩니다.

똘레랑스, 혹은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각각의 경향을 인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면에 섞여있는 이러한 경향의 혼재를 인정하는 것일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이러한 혼재된 것들이 외부와의 접속을 통해서 가능한 것들일 것입니다.

 

한겨레 신문에 대한 애정은 이 신문이 군사독재시설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을 다른 언론들이 담아내지 못할 때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대중들의 성금을 모아서 신문이 창간되었고 변화를 바라던 이러한 대중의 마음을 신문에 담아낸 것입니다.

새로운 언로를 생성시켜낸 것입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창간의 과정을 겪었다고 보아집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들은 한겨레에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본에 의해서 돈벌이의 수단으로 출발한  혹은 모금의 형태로 시작해 변질된 다른 언론들과는 차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부분에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한겨레의 경우 대중의 흐름을 선도해 주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혹은 정권에 대해서 과도할 정도로 비판하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편향'적이라고 이야기 할 만은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어느 경우든 편항적이지 않은 중간적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편향에 대하여 결정합니다만 이 기준도 사실은 결코 중간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것에 의하여 학습되어지거나 포섭, 포획되어져 있는 의식입니다.

그 학습은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것일 수도 있으며 포획은 권력의 욕망에 스스로 묶여 들어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삼송님의 경우 조선일보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경우가 저는 훨씬 위험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권력화되거나 영토화된 것들의 유연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하여 중간적 부분들에 대하여 권력화 과정으로 포섭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흐름을 창조해내기 보다는 항상 변화하는 흐름에 뒤따라가며 발목을 잡아 들이는 경우라고 보아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얼마전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인터넷을 통한 생중계는 기존 언론의 권력에서 벗어난 새로운 흐름을 보여줍니다.

누구든지 언론을 창출해 낼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가감 없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스스로를 통제하는 데스크도 없으며 편집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이 권력으로 벗어나는 언론을 가능하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삼송

2011.07.29 13:55:31
*.109.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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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진머리

2011.07.30 03:46:26
*.237.98.114

많은 철학자들이 바로 그 모든 것을 판단가능하게 하는 '중간이성'-칸트는 순수이성이라고 함-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초월적인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 최근의 철학적 입장입니다.

굳이 누가 말했느냐고하니까 말씀드리면 그 전에도 있었지만 칸트의 순수이성을 박살 낸 대표적 철학자로 들뢰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쉽게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저는 조선일보가 못마땅하다고 이야기 하고 삼송님은 조선일보를 조금은 옹호하고 계십니다.

과연 누구의 생각이 이성적일까요?

저의생각입니까? 아니면 삼송님의 생각입니까?

저는 저의 생각이 중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삼송님의 생각도 중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송님 스스로는 중간적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입니다.

문제는 이것에 대한 것 조차 판단해줄 중간적 이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각자의 입장만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철학자도 이것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또한 국가 역시도 법체계를 통하여 심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실을 판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인혁당 사건과 수 많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판결들이 그러했고 또한 일반 사건에서도 오심의 가능성을 배재하지 못하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도 세계적 이성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이것은 명백해 드러났습니다.

맑스는 이것을 '계급의식' 혹은 '당파성'이라고 하며 편향을 가지는 것을 당연시 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결코 중간적일 수 없는 입장들이 중립을 가장한다는 것입니다.

방송의 뉴스나 토론회의 사회자들 중에 그런 것을 많이 봅니다.

그리고 신문들은 객관적인척 하는 논조로 기사를 생산해 냅니다.

이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가장 기회주의적인 양비론일 뿐입니다.

물론 조선일보의 경우는 이것 조차 인색해 비판과 옹호가 편중됩니다.

세상의 그 많은 입장들 가운데 어떤 입장을 중간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삼송님의 생각이 그러하다고 하면 바로 그것이 독단입니다.

 

저는 저의 생각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결코 중간적이지 않으며 누군가의 편을 들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며 모두가 가지는 입장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이성적이라고 스스로를 무장할 때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파시즘의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나찌의 경우 스스로를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했고 이에 호응한 독일 대중들 또한 이러한 이성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욕망했기에  '파시즘'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단순하고 단호한 생각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확신했는 지에 대해서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란 책을 보시면 너무나 잘 나타납니다.

 

그리고 한겨레 신문을 읽는 사람들 중에 국가관이 희박한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국가관이 희박함을 감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투철한 국가관이나 민족관은 의미있는  가치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해하지 말아야 하실 것은 저는 특히나 사람에 대해서는 보수주의자니 진보주의자니 하는 가르기를 무척이나 싫어 합니다.

선생님에 대해서도 전혀 '보수 꼴통'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 이런 생각을 하시고 계시구나" 할 뿐이며 다만 동의하지 않는 것은 선생님의 생각을 중간적이라고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저의 생각도 중간적이지 않으니 선생님의 생각이 중간적이라고 하는 것도 철회하시기를 바래봅니다.

나아가 스스로  특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거나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기를 바래 봅니다.

똘레랑스란 너의 입장이 나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입장의 차이가 있음으로 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주체를 중심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객체를 고려해 주는 것이며 나아가 주체와 객체를 해체시킴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야 말로 중용의 도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변증법 처럼 어떤 정반합의 상태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해제된 상태 그 자체를 이야기 하는 것이며 도에서 이야기하는 비워진 그릇을 일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송

2011.07.30 16:47:21
*.119.241.122

 ?

피트

2011.07.29 14:19:50
*.161.132.177

삼송님! 조선일보를 중용으로 소화하기에는 너무 심했었어요!!

삼송

2011.07.29 14:21:58
*.109.42.2

 ?!!

profile

눈사람

2011.07.29 17:18:28
*.23.36.90

언제 한 번 똑같은 사안에 대해 조선일보와 한겨레 신문에서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

비교해서 토론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 조선일보, 한겨레 다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원래 한겨레 왕팬이었고 성금도 보냈던 적이 있었는데도...

솔직히 반기독교적인 글들이 자주 올라오면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좀 외골수라^^.

둘 다 상당히 편향되어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중 누가 서민편에 있느냐를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한겨레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는 서민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온갖 부류의 사람이 함께 살고 있기에

어느 한쪽의 신문만 읽다보면, 아니 두 신문을 같이 읽더라도 시각을 고정시켜놓고 읽다보면

결국 계속 한쪽으로 치우쳐가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중용을 삼송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구요.

한겨레 신문만 읽거나 그곳의 내용만 너무 옳은 것으로 보고 따른다면

그로 인하여 또 다른 잘못된 시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 조선일보 절대 안봅니다.

한겨레는 인터넷 신문으로 가끔 봅니다.

가능하면 여러 신문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가능하면 시각을 고정시키지 않고 보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어렵지만^^

더럼

2011.07.29 20:33:07
*.69.124.34

안녕하세요

7월 4일에 귀국했으니 한달 다되어 가네요

저를 성원 해주신 목사님과 다비안님들에게 이자리 빌어를 감사드립니다.

한달여 동안 시차적응하고 몸부게 3킬로 줄여 나온 뱃살로 줄이고 건강을 되찾는데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시간이 나는데로 다비안님들과 대화하는데 참여 하고자 합니다.

 

저 입장은 이렇습니다.

저는 한계레 신문을 받아 보고 조선일보는 인터넷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이든 한계레든 어느 신문이든 완벽할 수 없습니다.

구독자가 선호하는 잣대가 있는 줄로 압니다.

이를테면 자유라는 것이 자본가는 시장의 자유를 선호할 것입니다.

노동자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요구하고 선호할 것입니다.

국가나 정부는 여기서 어느편에 선호하는가에 따라 정부의 성격이 진단될 것입니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조선, 한겨레가 어느 편에 선호하는 가는 다비안님들이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러한 기준이외에도 언론을 평가하는 다양한 기준들과 역사가(도도아빠님, 삼송님을 비롯한 참여자들이 언급 했듯이) 있을 것입니다.

다양하고 종합적인 기준에 의거하여 잣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익한 정보를 얻고자 조선도 보고 한계레 보려고 하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언론사가 어느 정도 진실된 기사를 알리려 하는지, 여론 조작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권력에 대한  비판 감시기능 발휘(언론의 중요기능인)에 충실히 하려는지, 그리고 기득권 보다 약자들의 아픔(예수님의 뜻)을 대변하려는 논지를 일관성 있게 지키는지  등을 감안할 때 저는 한겨레를 신뢰 합니다.

 

그야 말로 이상적인 논조는(실현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영국 전문가 Phillip Bond 쓴 단어를 빌리면) 조선은

Red Tory(Red 는 노동당을 뜻하는 진보이고 Tory 는 보수당 뜻합니다.)를 지향하고 한계레는 Tory Red를 지향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우파 정당과 언론이 더많이 집권하면서 덕을 보았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조선(조중동 포함)이 먼저 Red Tory 입장으로 전환되어야 한게례, 경향도 ToryRed 로 입장이 바끨 것 같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다비안님들을 신문의 논조를 평가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신뢰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피트

2011.07.30 10:50:38
*.161.132.177

더럼님이 제가 하고싶은 얘기를 해주셨네요! 

 

진실을 호도해서 교묘하게 여론을 조작한다든지 강한권력에 대한 비판감시 기능을

 

현저하게 방기한다든지 자세히 알면알수록 조선일보의 폐해는 이루말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강남에서 조선일보만 계속 보신분들한테는 한겨레신문도 보시라구 권하고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조,중,동 가리지 않고 읽고 있어요..  

profile

도도아빠

2011.07.30 17:38:08
*.121.215.165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제 글과 댓글들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고 의견도 밝혀주고 계십니다. 약간의 논쟁도 있었고. 주로 저와 삼송님 사이에 의견 교환이 있었고, 다른 분들도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충분히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그 내용은 알았다고 보입니다. 대체로 절제된 가운데 의견이 오갔기에 이제까지 댓글을 통해 참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부탁 말씀은, 이 정도면 더 나올 새로운 이야기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요, 더 이상은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내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약간 과열된 느낌이 드는데, 글을 통한 서로의 생각을 이해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비아에서 종종 논쟁이 일었다가 별로 좋지 않았던 사례들이 있었잖았습니까? 이제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당신이 뭔데 나서서 그러냐 하실까 싶습니다. 뭐, 그냥 내버려두어도 상관없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괜히 서로 얼굴 붉히고 마음 불편할 이유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내일은 기쁜 주일입니다. 한 주간 열심히 일하고 하루 쉬도록 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다비안께도 늘 고맙습니다.     -sg-

profile

떡진머리

2011.07.30 20:54:20
*.237.98.114

좋은 토론 즐거웠습니다.

사실은 삼송님 한 분에 대해 여러분이 대응하는 형태다 보니 이번 토론은 한 분에게 너무 버거울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부담이 너무 편중되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끼어들다 늘 한 소리 듣지만 넓은 오지랍은 별 다른 방법이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토론 또한 토론방에서 진행되어지는 것이 마땅하지만 불꽃이 튀는 곳이 바로 그곳인 걸 어찌하겠습니까?

다음에 토론방에서 좀더 좋은 주제로 함께들 하시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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