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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개혁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오. 루터는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겠다고 큰소리를 치지 않았소. 그는 비텐베르크 신학대학교의 신학 선생이자 성당의 사제였소. 비텐베르크는 별로 크지 않소.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넉넉잡아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소. 당시 기독교 총본산인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볼 때 변방 중의 변방이 비텐베르크요. 루터는 거기서 시편, 갈라디아서 등을 가르쳤소. 종교를 개혁하려는 의도로 한 게 아니라 사제로서, 교수로서 일상 업무를 수행한 것이오. 1517년 10월31일 성당 출입문 위에 95개 조항의 신학논제를 적은 대자보를 붙였소. 신학적인 토론을 제기한 것이오. 물론 그 순간에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은 아니오. 아무도 거기에 주목하지 않았소.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소. 해프닝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종교개혁으로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정신, 예술, 정치 역사에서 중세기를 넘어서 계몽시대로 오게 한 역사적 사건으로 크게 확장되었소. 거기에는 많은 요인이 있소.
어디 성당이요?
바티칸 큰 성당이요, 아님
자기가 다니던 성당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