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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9월28일, 저녁 8시, 시편 141편
유혹 앞에서
시편 141편은 ‘개인탄원’이다. 탄원은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보이는 태도다. 수렁에 빠진 것을 사람들은 불행이라고 여기지만 그 불행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복이다.
1) 기도의 본질(1,2절)
1, 2절은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이다. 1절은 주를 부르고, 주께 부르짖는다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단순히 소리를 내거나 외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주’가 누구인지, 그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부를 수는 없다. 통일교와 신천지에 속한 이들도 부르짖는다. 갈멜 산 사건을 기억하라.(왕상 18장) 둘째, 주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그 이외의 것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는 뜻이다.
2절은 기도를 분향과 저녁 제사로 설명한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지는 제사에는 분향이 있다. 하나님이 향을 받으시듯이 자신을 받아달라는 의식이다. 기도는 예배의 차원에 속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기도하는 사람의 욕망이 완전히 배제되는 순간이다. 탄원도 역시 욕망의 실현이 아니라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2) 유혹 앞에서(3-7절)
시편기자는 큰 유혹 앞에 직면해 있다. 유혹은 악을 행하는 자들로부터 온다.(4) 그 유혹은 매우 그럴듯하게 보인다. ‘진수성찬’이다. 그게 악인지 아닌지도 분간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꼼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려면 우선 무엇이 악인지 아닌지에 대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그걸 모르면 그냥 진수성찬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시편기자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3절에서 말을 지켜달라고 기도한다. 일단 말을 뱉으면 진수성찬을 먹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악의 시작, 악의 동조는 말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5절은 약간 다른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의인’에게서 받는 고통을 은혜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것도 유혹은 유혹이다. 견디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악으로부터 오는 유혹과 의로부터 오는 유혹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6,7절은 전체 맥락과 어울리지 않는다.
3) 영혼이 피할 곳(8-10)
유혹을 극복하려면 주께 피하는 길밖에 없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주께 부르짖는다는 말과 비슷하다. 주가 누구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이로부터의 도움을 접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알아야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분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영성은 바른 공부를 필요로 한다. 시편기자가 주께 피하는 이유는 거기서만 영혼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시편기자는 이제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내용으로 탄원기도를 드린다. 올무와 함정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올무와 함정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의지로 어느 정도 피할 경우도 있고, 불가항력적인 경우도 있다. 우리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과의 일치에서만 그게 가능하다. 그분의 도움을 원한다는 것은 그분과 함께 하겠다는 결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