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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과 신화, 성경, 그리고 역사

Views 1967 Votes 0 2011.10.05 16: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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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다비아동영상강의에서 목사님의 해석학에 대한 강의내용을 들었습니다. 듣다가 생각난 책이 있어서 뒤져보았습니다. 해석학에 관한책은 아닙니다. 다만 가다머의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부분이었습니다.

세계관이 중요하고 그 세계관중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관이 또 중요하고 그 역사를 해석하는 해석학이 또 중요합니다. 그 역사해석학을 적용한 성경해석이 우리에게는 또 많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질문을 포함해서 글을 하나 써볼까 합니다. 그러니 더 많이 아시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중심은 에드워드 헬릿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한 서울대교수 허승일의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저도 대학교에 다닐 때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레포트를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가 그 책을 읽고서 무엇을 느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너무 유명한 책이라고 그냥 기억만하고 살다가 몇 년전 다시 그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유시민전보건복지부장관도 자신이 읽었고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책들을 모아 출한한 책 ‘청춘의 독서’에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이 나온 지가 50년이 약간 넘었고, 아직도 이 책은 유명한 책입니다. 다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유명한 말이 그 책에서 나옵니다.

 

제가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를 이야기한 정목사님의 강의에서 이 책을 생각해낸 것은 공연한 것이 아닙니다. 가다머의 지평융합과 카의 역사관은 대비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바로 ‘다시 역사는 무엇인가’라는 책을 쓴 허승일교수입니다. 제가 정목사님의 설교란 무엇인가가 출판되기 전 책제목을 구하시는 공지란의 댓글에 다시 설교란 무엇인가? 라고 써서 그 제목이 거의 최종결선(?)에 올랐던 것이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랍니다.

 

카는 역사에는 우연이 없다는 이성적 합리적 설명을 합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간극을 고려하지 않은 역사 인식이며, 가더머는 과거의 지평(당대를 둘러싼 정치, 경제, 제도적 상황 혹은 틀)을 통해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이론을 폅니다.

 

한겨레신문이 책출판 당시에 쓴 서평을 옮겨봅니다.

로마시대 역사학자 투기디데스는 역사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눈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이성적 판단과 본성에 근거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철저하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쓴 <역사>란 책에는 한 도시가 스파르타군의 무차별적인 화공을 받아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도시를 구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투키디데스는 소나기는 운의 여신 티케가 내려준 것이라고 썼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혼란스럽다. 고정된 역사인식의 틀을 깨고 역사 자체를 유연한 인식의 흐름과 대화로 이해하자고 한 에드워드 핼릿 카에게도 그런 우연성과 신비주의는 걸려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한스게으로크 가다머는 고대 그리스인들을 티케신이 비를 내려주었다고 믿고 정말 그런 신념속에 살았던 그 시대의 지평에서 봐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겐 현재의 잣대로 과거와 대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온전한 두 지평의 성실한 융합만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었다.

올 여름 우리마을을 휩쓸고간 산사태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지리산 어느 골짜기 사람 없는 곳도 산사태가 났을 수 있지만, 뉴스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다치는등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바로 이러한 사람에 관한부분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화가 무엇인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신화란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야기지만, 과거에 대한 하나의 견해, 곧 과거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되는 견해를 갖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뿐 아니라 신화란 순전히 개인의 사사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를 말한다. 신화라는 말의 전문적 의미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공동체가 믿어 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신앙은 ‘신화적’이다. (신앙의 눈으로 본 역사 로널드 웰즈 지음 한인철 옮김 IVP48쪽)

 

성경은 진리라는 말속에서 알아낸 우리의 입장은 과학적이며, 합리적이고,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인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새롭게 해석해낸 입장으로는 성경은 비과학적인면도 많고, 비합리적인부분도 많고, 틀린부분도 있고, 종교편향적이고, 정치적이며, 오해와 편견이 있는 부분도 상당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위의 말들이 서로 분산되어 있는듯하니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창세기에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서 양때를 치다가 라반과 다투어서 양을 나누기 위해서 서로 약속을 합니다. 야곱은 점 있고, 아롱진 양과 염소를 자기것으로 하고 깨끗한 것은 라반의 것으로 합니다. 그리고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앞에서 양때들이 물을 먹게 합니다. 양때들이 물을 먹으로 와서 새끼를 배니 그 새끼들이 점있거나 아롱진 상태로 태어납니다. (창세기 30장)

대학다닐 때 처음 성경을 읽기 시작해서 이 부분을 읽고서 저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신비로운 비법이 섞여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대학자들이 실제로 위와 같이 실험을 하였지만 새끼들은 원래 태어나던 대로 태어난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모르는 무슨 비법이 있어서 야곱의 소유가 되는 점 있고 아롱진 새끼들이 많이 태어나게 된다고 믿었었습니다.

 

지금은 아니랍니다. 어렸을 때 저는 이빨(사람에게는 이라는 말을 써야하고 동물에게는 이빨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보통의 경우 대화할 때 이라고 하면 상대가 알아듣지 못해서 어쩔수 없이 이빨이라고 다시 반복해서 말해 줘야하는 번거로움이 많으니 항상 이빨이라고 쓰는 것이 낫다고 믿는 일인입니다)을 빼면서 지붕위에 던지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빨 가져가고 새 이빨다오...’ 하지만 커서 이것이 진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아이들을 키울때는 비슷하게 따라해 봤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의 전승은 그것을 신화적으로 담고 있는것이지, 그 내용이 과학적이기 때문이거나 합리적이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위 구절을 읽을 때... 아하 이 구절은 버드나무나 살구나무를 어떻게 하면 양의 새끼가 점이 있고, 아롱지게 태어나는구나 하고 읽는 것이 아니고, 아하 이 전승은 그렇게 내려오다가 이렇게 정착된 것이구나하고 읽고 있습니다. 버드나무나 살구나무가 무엇을 할수 있는 것이 아닐 뿐 만 아니라, 그것이 과학이나 합리성을 담을 필요도 없는 그냥 전승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전승을 굳이 우리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그 진위를 물으려 한다면 웃기는 개그가 되어버리는구나 하며 생각한다는 것 입니다. 야곱이 나무들을 가져다 놓으면 새끼들이 변한상태로 태어난다는 그릇된 미신을 믿었을 수도 있고, 창세기기자가 당시 자신이 시대에 맞게 각색했을 수도 있지만, 결코 그것이 꼭 잘못된 것 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굳이 우리의 해석으로 그런 나무들이 그것을 변하게 할 수 없으므로 성경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틀림없는 것이기 때문에 뭔가 비밀스러운 비법이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 나무들이 뭔가 틀림없이 작용을 했을 것이다라고 믿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정상적인 역사학 방법론을 동원하고 지적인 정직성을 간직한 채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사렛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것과 같은 ‘역사적(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가 ’진짜‘가 아니라는 주장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 신앙의 중심 교리를 확증함에 있어서, 우리는 신앙 공동체의 증언에 가담한다는 말이다. 즉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은 논박할 수 없는 ’사실들‘로부터 귀납적으로 도달한 결론이 아니라, 신앙에 기초한 믿음이라는 말이다. (신앙의 눈으로 본 역사 로널드 웰즈 지음 한인철 옮김 IVP 47쪽)

 

역사도 스스로 말할 수 없습니다. 역사도 해석이 필요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해석입니다. 그러니 해석하는 방법이 매우 중요한 모양입니다. 현대학자들은 지금을 합리적인 시대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수많은 신화속에 살고 있고, 합리성을 이겨낸 심리전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를 결코 합리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신화적일 것입니다. 이 신화를 다시 이야기하면 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시속에서 살고 있고, 이 시를 해석하며 살고 있지만, 그 해석도 또다시 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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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1.10.05 16:22:53
*.228.35.13

아 참 질문입니다.  누가 위의 내용과 헤겔의 역사철학과 비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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