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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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5382
기사를 한 번 보시구요, 오마이뉴스에서 교회사용 설명서라는 시리즈 기사를 연재했는데 5번째로 한국교회의 설교자의 설교준비부족, 설교준비 알바 및 대필등등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주욱 읽어가던 중 이런 대목이 하단부에 나오더군요.
전략...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교인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어떤 잡지 기획자가 설교비평이라는 장르를 기획해서 한 반골신학자로 하여금 집필하게 하자, 엄청난 반향이 일었다. 또 꽤 많은 작은 교회들은 설교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예배 안으로 도입하여 수행한다. 사람들은 말하고 싶어 한다. 더 이상 듣기만 하는 수동적 수용자로만 예배에 참여하고자 하지 않는다.
후략...
여기서 말하는 반골신학자가 정목사님인가요? 그러면 정목사님이 반골기질이 강하신다는 뜻인데요...
(반골의 뜻은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순응하지 아니하고 저항하며 바른 말 잘하는 그런 기질의 사람이란 뜻이군요.)
반골이란 이미지가 그렇게 좋게 보이지가 않아서 말이죠. 다른 단어로 교체해야 하지 않을까요?
육바지기 님,
그렇군요.
김진호 목사님이 거론하신 반골기질의 신학자는
제가 맞는 것 같습니다. ㅎㅎ
좋은 뜻으로 그렇게 표현해주셨으려니, 생각합니다.
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좋은 책을 소개하고, 그 안에 한 구절을 인용해서 선물로 드립니다.
테리 이글톤의 <신을 옹호하다>입니다.
37쪽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억압에 마치 연인처럼 집착하며,
거기서 얻는 자학적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고
무슨 짓이든 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러니 죄책감을 떨쳐낸다는 것은
곧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질변 자체를 빼앗기를 일이 된다.
이 질병이 바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근원적 마조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우리로서 사랑받는다는 복음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다.
적어도 우리가 아직 살아 있음을 입증해주는 고통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것 같고,
도덕적 자기수양을 위해 애쓰는 우리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멍에가 가벼워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무거운 사슬에 묶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