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학자들이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 성서가 갖고 있는 당시의 상황과 저자의 의도를 설명해내려합니다.
동정녀마리아나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문제들을 예로 든다면
이러 이러한 당시의 상황때문에 동정녀마리아라는 이야기가 탄생한것이다라는것이지요.
하지만 데리다가 자주 주장하는것중 하나가 바로 저자의 문제입니다. 저자가 자신이 쓴 글을 모두 정확한 상황을 가지고 확실한 판단을 해서 그렇게 기록한것은 아닐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바울의 초기저작과 후기저작의 신학이 다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자신의 견해가 바뀌어가는것이지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이 항상 시대와 일치하는것도 아닙니다.
저는 성서의 많은 부분이 저자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할수 밖에 없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저자 스스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곳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는것으로 알수 있지요. 많은 소설가들은 자료를 수집하여서 소설을 쓰지만, 전체적으로 의도하는바는 있겠지만, 부분부분은 인용도 하고, 오해도 하고, 착각도 해서 쓰여진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를 후대에 그 저자의 입장을 정확히 찾아내려는것은 모순을 인정하지 않고 해석을 하려는 불찰인것으로 보여집니다.
저는 원어를 모르지만, 유진피터슨이 쓴 이 책을 먹어라라는 책에서 신약성서가 정말 쓸모없는 단어의 반복들도 많고, 필요없는 접속사의 연속인 문장들도 많다는 내용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신약성서가 쓰여진 당시의 헬라어가 우리가 알듯이 고급헬라어가 아니고 일반헬라어이듯이 무식한 사람들이 제대로된 문장이 아닌 어법에도 맞지 않고, 문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들로 구성된 부분이 많다는것입니다. 이는 신약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이 역사적이고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배경만 있는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수 있습니다.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저작이 성서가 될줄을 몰랐다는것 이상으로 이 책이 널리 읽히거나 연구될줄도 몰랐다는것입니다. 어찌보면 시골의 작은 목회자가 자신의 교우들을 위해서 쓴 작은 설교원고와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복음서의 공동체가 크지 않았다는것이 그 증거일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신약성서가 쓰여질 당시에(특히 복음서) 저자들은 이 복음서가 널리 읽히리라는 생각도 없었고, 자신들이 무슨 논문을 쓴다는 생각도 없었고, 후대에 누가 검증한다는 생각도 안했을것이고, 더더군다나 성서가 될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쩌면 급조하다시피(과장한다면) 만들어진 문서를 너무 의존하여 해석하는것은 옳지 못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당시의 시대적 종교적 정치적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고서 메시아관을 신화적이든 역사적이든 기록한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혀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는 불트만의 비신화화와 같은것입니다. 성서에서 신화만 제거할것이 아니고, 저자의 오해나 판단착오 혹은 저자조차도 잘 모르고 쓴 기록들이 많을것인데 그러한 부분은 간과하고 신학이 해석을 해내는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잘 읽어봤습니다.
대부분 공감하지만 의문이 있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많은 학자들이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 성서가 갖고 있는 당시의 상황과 저자의 의도를 설명해내려합니다.
동정녀마리아나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문제들을 예로 든다면
이러 이러한 당시의 상황때문에 동정녀마리아라는 이야기가 탄생한것이다라는것이지요.
하지만 데리다가 자주 주장하는것중 하나가 바로 저자의 문제입니다. 저자가 자신이 쓴 글을 모두 정확한 상황을 가지고 확실한 판단을 해서 그렇게 기록한것은 아닐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바울의 초기저작과 후기저작의 신학이 다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자신의 견해가 바뀌어가는것이지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이 항상 시대와 일치하는것도 아닙니다.
저는 성서의 많은 부분이 저자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할수 밖에 없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저자 스스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곳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는것으로 알수 있지요. 많은 소설가들은 자료를 수집하여서 소설을 쓰지만, 전체적으로 의도하는바는 있겠지만, 부분부분은 인용도 하고, 오해도 하고, 착각도 해서 쓰여진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를 후대에 그 저자의 입장을 정확히 찾아내려는것은 모순을 인정하지 않고 해석을 하려는 불찰인것으로 보여집니다.
저는 원어를 모르지만, 유진피터슨이 쓴 이 책을 먹어라라는 책에서 신약성서가 정말 쓸모없는 단어의 반복들도 많고, 필요없는 접속사의 연속인 문장들도 많다는 내용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신약성서가 쓰여진 당시의 헬라어가 우리가 알듯이 고급헬라어가 아니고 일반헬라어이듯이 무식한 사람들이 제대로된 문장이 아닌 어법에도 맞지 않고, 문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들로 구성된 부분이 많다는것입니다. 이는 신약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이 역사적이고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배경만 있는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수 있습니다.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저작이 성서가 될줄을 몰랐다는것 이상으로 이 책이 널리 읽히거나 연구될줄도 몰랐다는것입니다. 어찌보면 시골의 작은 목회자가 자신의 교우들을 위해서 쓴 작은 설교원고와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복음서의 공동체가 크지 않았다는것이 그 증거일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신약성서가 쓰여질 당시에(특히 복음서) 저자들은 이 복음서가 널리 읽히리라는 생각도 없었고, 자신들이 무슨 논문을 쓴다는 생각도 없었고, 후대에 누가 검증한다는 생각도 안했을것이고, 더더군다나 성서가 될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쩌면 급조하다시피(과장한다면) 만들어진 문서를 너무 의존하여 해석하는것은 옳지 못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당시의 시대적 종교적 정치적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고서 메시아관을 신화적이든 역사적이든 기록한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혀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는 불트만의 비신화화와 같은것입니다. 성서에서 신화만 제거할것이 아니고, 저자의 오해나 판단착오 혹은 저자조차도 잘 모르고 쓴 기록들이 많을것인데 그러한 부분은 간과하고 신학이 해석을 해내는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제 생각을 잘 전달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