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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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구적 자본주의', '흐름의 경제', '디지털 자본주의'같은 수식이 붙는 후기 자본주의에 등장한 한 무리의 '공산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의 명칭에 그토록 무시무시한 ‘공산주의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들이 자본주의에 대립하는 이들이 아니라 이러한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다보스와 같은 세계화의 경제회의에 참여하며 더 이상 포르투알레그레와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물론 포르투알레그레의 지지자들의 일부도 이들의 대열에 참여한지 오래다.

이들에게는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들은 세계화된 자본주의 하에서도 그것을 유지해 나가며 그 결실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바로 우리들의 영웅인 빌 게이츠, 조지 소르스,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그리고 구글, 아이비엠, 이베이 등의 최고 경영자들, 토마스 프리드만 같은 저널리스트 들이다.

물론 이들처럼 부를 축적한 자들만 이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수많은 소박한 추종자들 또한 함께한다.

어쩌면 한국의 안철수 씨 또한 이 범주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데올로기는 진보주의자들과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진보적이라 자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주장이나 행동에 동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그들과의 분절점을 찾아내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진보주의자들이 버리고자 하는 수많은 것들을 그들 역시 내다버린 지 오래다.

권위와 질서, 편협함 애국심, 문화적 경직성, 관료주의 등에 대해 진보주의자들과 공통의 거부감을 형성하고 있다.

'스마트'함이 이들을 대표하고 있다.

'마찰 없는 자본주의'

이것은 빌 게이츠의 표현이다.

'노동의 종말'과 함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정장의 경영자가 몰락하고 날날이 컴퓨터광이 자본주의 기업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에는 외부적 규율이 거의 없다.

TV 등을 통해 접한 이들 회사의 모습들을 기억하는가?

마치 카페와 같은 분위기의 사무실에 대해서 말이다.

사회를 전복시키고 교란시키던 그리고 기득권에 저항하던 해커가 바로 빌 게이츠의 전직이지 않는가?

성공한 해커, 반항의 자본주의적 적응, 이런 환상이 오버랩 되며 빌 게이츠는 시대적 아이콘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한다.

"야비해 져야만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직원으로부터 협력과 참여를 이끌어 내며 고객과 대화를 나누고 환경을 존중하고 거래는 투명하게 처리하는 것이 오늘날 성공의 열쇠다."

이렇듯 이들은 세련된 첨단의 이미지로 탈근대적인 아이콘 속에서 움직여 나간다. 수많은 기부들은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더하여 아프리카나 중동의 광범위한 비인도주의적 상황에 열렬히 반대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사태에 숨어있는 제국주의적 침략에 소극적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사랑하는 것이 인도주의 인지 아니면 인도주의의 위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스타벅스의 카푸치노 한잔에 커피농장의 아동노동자들에 대한 죄의식을 지울 수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일인가?

수많은 기부와 자선, 이 모든 것에는 항상 선행되어야만 하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기부하려면 돈을 먼저 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국가의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지적하며 민간기업의 주도만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윤만을 창출하는 기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보다 깊은 의미가 깃들기를 원하며 사회적 책임과 자신들을 성공이 사회가 선의를 베풀어준 덕이라며 이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업적 성공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자선적 행동.

물론 이것이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새롭게 생겨난 것들은 아니다.

자선에 유명한 앤드류 카네기를 잘 알지 않는가?

전기에서는 부를 축적하고, 후기에서는 축적된 부를 사회복지를 위하여 투자하여야 한다는 것이야 말로 카네기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분명히 알아야만 하는 것이 있다. 사병을 동원해 잔혹하게 철강 노동자들을 탄압하여 획득한 부가 바로 그 자선의 원천인 사실이다.

수많은 자선의 원천은 사실상 전쟁의 처참함과 착취의 저변으로부터 솟아나온 것이다.

조지 소로스는 무자비하고 극단적인 금융투기를 통해 착취를 일삼는 것으로 유명하다.

92년 영국과의 환율전쟁에서 승리해 10억 달러를 벌어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소로스 또한 자선사업과 검소한 생활로 늘 화제가 되는 인물이다.

장기적 투자로 투자의 롤 모델이 되고 있는 워런 버핏이 있다.

요즘 들어서 대두되고 있는 ‘버핏세’란 부자세의 이름에 붙어 있는 바로 그 이다.

투자의 정석은 이야기 되지만 그 증권이란 게임이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제로섬게임이자 힘 있는 자가 위너가 되는 도박판과 동일함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빌 게이츠 또한 다르지 않다.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경쟁사를 파산시키거나 사들이고 수없이 치사한 거래 수법을 동원한 이가 바로 그이다. 물론 이것은 자본주의가 가지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타벅스의 커피농장 아동노동을 숨기기 위한 기부.

자선의 두 얼굴, 그것은 모두가 볼수 있도록 드러난 야누스의 얼굴이 아니다.

그것은 제임스 앙소르 작품에 나오는 가면과 그 속에 숨겨진 얼굴과도 같다.

자선은 가면이다.

무자비한 이윤추구 행위를 상쇄시키는, 경제의 착취라는 얼굴위에 씌워진 키다리아저씨의 가면이다.

조르주 바타유가 ‘제한경제’라고 불렀던 끝없는 확대재생산과 이윤추구의 화신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삶에도 모종의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하여 그들의 애로틱한 자본의 축적에 대한 사랑은 이제 티모스로의 전환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들의 이데올로기는 모든 것이 '제국'의 내부에 있다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에 의하여 완성되어 가고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드러나는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착취가 착취에 대한 치료제고 전쟁이 전쟁에 대한 치료제라는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의 주장과 행위이다.

이들의 자선이 진심이거나, 선의거나 하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이제 자본주의는 사회를 향한 선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는 저 스스로 재생산할 힘조차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자본주의가 완결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과 더불어 더 이상 국가적 차원의 착취가 불가능해짐을 보여주는 이중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80년대 이후로 급격히 감소하는 자본의 이윤율과 축적률은 그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윤율의 저하는 ‘화려한 중산층’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 중산층은 이제 자본주의가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사치품이 되어 버렸다.

포디즘의 몰락은 국가가 담당해야 하는 케인즈적 복지 또한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총량에서는 국가가 지출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적지만 자본에 대한 저항을 무마시키기에는 훨씬 효과적이며 감동적인 자선의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선행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자본가들에 대한 적개심마저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돈을 벌어들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선량하게 보인다.

그들의 모습 또한 ‘칠드런 오브 맨’에 등장하는 주인공 테오의 사촌처럼 더 이상 권위적이지도 않다. 사촌의 직업은 문화제와 관련된 정부의 관료이다.

청바지 차림은 빌 게이츠의 모습과 흡사하게 세련되어 보이며 ‘게르니카’를 배경으로 한 거실은 예술적이기 조차 하고 동성의 장애자 애인은 소수자의 모습까지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들이 진정한 친구들인지 고민해야만 한다.

문제제기가 무해한 도덕적 항의나 그들의 양심에 대한 호소에 그치도록 하는 가짜 친구들은 아닐까 의심해 보아야 한다.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의 양심에서 나오는 선의나 탐욕이 아니다.

문제는 체제 그 자체이다.

‘지금의 세계로 가능한 것인가와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아니 ‘가능한 것은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을 깨닫는 것일 것이다.

이들의 선행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꿈꿀 능력조차 앗아가 버린다.

마치 자본주의와 그들의 생산품에 길들여지던 전후 미국의 원조처럼...

우리 자신의 정치 참여는 노동쟁의의 위험이 제거된 자본주의의 체계처럼 지방자치 단체부터 국회까지 매우 단계적으로 아웃소싱 되어져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체제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웃소싱된 민주주의.

이것이 내가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던 민주주의에 대하여 의심해봐야 하는 이유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다.

“자신과의 사랑에 빠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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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1.11.08 17:24:41
*.228.35.13

많은것을 생각하게하는 좋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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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진머리

2011.11.08 23:20:59
*.237.98.114

ㅎㅎㅎ 감사합니다.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서...

프로필 사진 바꿨습니다.

그림에서 사진으로.

웃음님도 헬멧 한번 벗어보시죠? ㅋㅋㅋ

좋은 생각들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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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11.11.09 11:44:01
*.104.194.88

저도 석연치않게 생각하던 어두움의 기운이었는데

잘 써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명문들이 많으네요..^^

profile

떡진머리

2011.11.10 22:51:20
*.237.98.114

유니스님도 플필사진 개비하셨네요.

ㅎㅎㅎ 사실은 저 같은 사람들이 어둠의 세력입니다.

아마 더 어두워지실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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