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문자주의(3)

Views 3282 Votes 0 2011.11.09 23:11:06

 

     셋째는 성서의 희화화(戱畵化)요. 희화화는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는 뜻이오.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는 복음서의 보도를 문자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소. 생각해보시오. 예수님이 물위를 그냥 걸으셨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소? 예수님은 참 사람(vere Homo)이시오. 온전한 사람이었다는 뜻이오. 그렇다면 물위를 걸을 수 없소. 여기서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오. 그런 것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소. 그런 것으로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가 보장되지도 않소. 지난주일 설교 본문에는 예수님은 재림 때 구름을 타고 오시고 사람은 공중으로 들림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오. 그걸 문자적인 차원에서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있소. 그런 게 성서의 희화화요. 성서의 심층적인 영성을 놓치고 만화로 만드는 꼴이오. 이런 예들은 한국교회 안에 널려 있소. 하나님을 마치 옥황상제처럼, 수염을 기른 산신령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많소. 천당을 직접 보고 왔다는 사람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들이 간증 하러 다니는 형국이니 더 긴말 할 필요도 없소. 그런 신앙은 아무리 진정성이 있다 해도 결국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꼬마들의 생각과 다를 게 하나도 없소.


신마적

2011.11.10 12:54:26

정용섭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의 글을 읽고 궁금한게 생겼는데요...

 

그래도 성서문자주의 하는 사람들 중에도 신학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 나름 이름 있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뭐 박윤선, 메이첸, 반틸 같은...)

 

그 사람들은 이런 거에 대해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아니면 어떤가요?

 

그 사람들도 신학하는 사람들이라면 나름대로 뭐 생각하고 그런게 있을텐데...

 

 

profile

정용섭

2011.11.10 23:19:36

신마적 님,

그분들 문제는 그분들에게 물어보세요. ㅎㅎ

그게 이상한 거는 아닙니다.

일단 패러다임이 그렇게 구성되면

천지가 개벽되지 않는 한 바꾸기 힘듭니다.

레그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은

좌파를 무조건 빨갱이 취급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학자도, 판사도, 검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람의 인식이라는 게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거지요.

르네상스

2011.11.10 17:42:15

성서문자주의에 대해 평소에 강조하시는 것을 공감을 하면서도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성서의 어느 부분까지 역사적 사실로 보고 어느 부분까지 신화적 요소들로 봐야 하는지

일반 성도들은 성서를 평소에 읽으면서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반 성도들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성서 전체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교회 지도자들이 가르쳐줘야 혼란이 없고

그렇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신앙에 큰 회의를 느낀다는 것이죠.

 

그리고 성서의 권위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고

굳이 성서의 말씀대로 안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나 신학자 입장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성도들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성서문자주의가 힘이 되고 영적으로 유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지도할 것인가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딜레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고민이기도 하구요.

profile

정용섭

2011.11.10 23:26:19

김종원 님,

성서에 사실과 사실 아닌 것을 구분하는 건,

그리고 역사적인 것과 신화적인 것을 구분하는 건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의미 있는 일도 아니에요.

명백한 사실은 없기도 하고, 

사실이 진리도 아닌 거에요.

화학실험실에서 얻어진 것만 진리는 아니에요.

실험실에서 얻어진 것도

실험을 하는 사람에 의한 해석이에요.

아직 우리에게 그 실체를 다 드러내지 않은 전체 과학의 일부만

실험을 통해서 논리적으로 해명한 것뿐이거든요.

교회지도가 신자들을 영적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사실 지도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성서의 어떤 사실들을 흉내내게 하는 게 아니라

성서의 사람들이 따라야 했던 어떤 영적 현실 앞에 직면하게 하는 것뿐이에요.

그런 작업이 쉽지 않은 거지만요.

 

haste

2011.11.11 10:15:15

물론 성서문자주의의 폐해에 대해 저도 공감합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구절 때문에 이걸 흉내내다가 물에 빠진 사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적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나요?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4복음서는 온통 이적 덩어리입니다. 사도행전도 마찬가지고.. 목사님 말대로 예수님이 참 사람이기 때문에

이적을 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내용을

부인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도 되시기에 이적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나요?

profile

정용섭

2011.11.11 23:56:26

haste 님,

예수님이 참사람이기 때문에 이적을 행할 수 없다고 내가 이야기 했나요?

그런 발언은 약간 위험하군요. ㅎㅎ

글을 빨리 쓰다가 보면 그런 실수를 종종 합니다.

이런 문제를 더 길게 말하려면,

그리고 서로의 오해를 줄이려면

'기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답니다.

고대인들의 눈에는 초자연적 기적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현대인의 눈에는 자연적인 현상인 것도 많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도

의학적으로 얼마든지 해명이 가능한 거에요.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에 기적을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고대 사회에서 기적은 예수님만이 행한 게 아니라

어떤 주술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게 행했어요.

행했다고 사람들이 믿은 거지요.

거짓 선지자들도 그런 능력이 있었구요.

예수님도 그런 거짓 선지자들이 초능력을 행할 거라고 말씀하시기도 했구요.

복잡하게 들리나요?

여기 다비아 어느 구석엔가 기적에 대한 글이 있을 테니 찾아보세요.

주님의 은총이... 

 

삼송

2011.11.11 12:39:01

목사님 글에 감사를 드리고 공감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라는 말은 성경의 문맥과 문법적, 문학적 구조를 도외시하고 - 즉, 저자의 의도와 텍스트의 의미론적 주제들을 무시하고 - 성경 자체를 일종의 경전이나 법전처럼 사용하려는 것을 의미것이 아닙니까?. 쉽게 말해 교조화 시키는 것이죠. 이는 필연적으로 성경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종교적 주장들이나 개념들이 끼어들게 되고 종국에는 본문과는 상관없는 성경해석과 규정들이 성도들을 통제해서 성경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위의 말씀하신 내용중에 예화를 드신 것에 제 의견을 말씀 드리면 예수님께서 물위를 걷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다가 중요하지 않으면 전체 성경 문맥을 해석하는데요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기적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기 때문에 그자체를 절대화 시키는 것이 문제지요.. 사실을 인정하고 그말씀의 핵심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서기자자가 적은 글을 진실이 아닌 다른 의미다 라고 전제하고 성서를 보면 오히려 성서해석을 방해하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면서 참 인간이시기 때문에 두부분을 같이 연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화를 드신 목사님의 말씀의 의미 이해는 됩니다. 저같이 성서를 보는 눈이 바둑으로 치면 초급수준이라면 성서기자는 프로9단정도의 기보를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제가 바른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공부를 해야하지만 어렵습니다.

 


profile

정용섭

2011.11.12 00:00:33

ㅎㅎ 삼송 님,

공부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군요.

기보를 놓고 서로 왈가왈부를 하려고 해도

일단 정석 공부를 한 뒤에 가능한 것처럼

성서에 대한 논의에서

건전한 신학의 기초를 공부하는 게 최우선이면서

최소한의 자격이랍니다.

물론 신학공부가 없어도 열린 마음으로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을 묻고

나름으로 대답을 찾아가는 태도는 중요한 거구요.

좋은 주일을 맞으세요.

삼송

2011.11.12 10:00:43

목사님! 말씀 감사드리고요 저도 지금 신학공부 천천히 하고 있습니다. 기본에 충실히 하지 않으면 어떤 학문이든 집을 세울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 철학 과학등 신학을 공부함에 있어서 세상 모든 학문이 기초가 되겠지요. 신학은 모든 학문의 도달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이번주 설교말씀도 기다려집니다.

창조의 향기

2011.11.12 19:55:31

  요즘 제가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는 내용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봅니다.


  문자텍스트는 인류에게 역사의식이라고 하는 산물을 낳게했다고 합니다. 문자텍스트가 보편화되기 전 사람들은 소위 마술적인 의식과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고 보죠. 인류의 가장 대표적인 문자텍스트인 성서는 그러한 역사의식의 결정체이고 또 서구의 역사의식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했습니다. 때문에 기독교는 역사성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서과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데 역사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서를 기술했던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한번 들여다본다면, 이들은 역사의식 형성의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마술적 의식이 그들의 의식과 세계관에 여전히 지배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성서 속의 사건들이 마술적 의식을 따라 경험되고 해석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질병을 악한 영에 의한 것으로 이해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부적이라는 것도 마술적인 의식으로 문자를 마술화시킨 흥미로운 예인 것 같습니다.즉 현대의 화학실험실에서 연금술사가 주술을 행하고 있는 경우라 할까요? 한국교회에도 성경책을 마술화시키는 성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구절을 하나 떼어내서 부적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구요. 성서문자주의는 어떻게 보면 본래 의도와 달리 이런 마술적인 종교성을 지탱하는 신학적인 도구로 오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같은 신앙문화에서는 성서와 역사의식에 바탕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세계로 전혀 걸어들어갈 수가 없는것이겠죠. 성서가 펼쳐놓은 역사성을 제거하고, 기적과 이적에 집중하는 것은 다시 고대의 마술적 세계로 퇴행하는 것과도 같은 꼴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강조하시는 점들이 이런 배경과 연관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개인적으로 고민인 것은 현대는 역사의식을 상실해가고 있는 시대라고 진단한다면(문자 텍스트가 문화적 힘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성서와 역사의식에 바탕한 기독교는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게 될까요? 아니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게 될까요? "탈역사시대의 기독교 신앙" 뭐 이런 제목을 붙여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추상적이고 광범위한데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목사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독일 라이프찌히에서 오정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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