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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마당(2011년 12월 13일)

기후붕괴시대에도 하나님은 전능하며 예수는 구세주이며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공교회인가?
- 철부지들을 위한 신학에서 성숙한 세대를 위한 신비와 공감과 저항의 신학을 향하여 - 

 

김준우(한국기독교연구소)

 

 

1. 생명평화신학의 포괄적인 컨텍스트: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행되는 대량학살

 

137억 년의 우주 역사와 46억 년의 지구 역사, 그리고 35억 년 동안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이어온 생명의 역사는 파괴와 죽임의 힘보다 창조와 생명의 힘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록 다섯 번의 대멸종을 회복하는 데 평균 천만 년이 걸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생명사의 막내둥이인 인류는, 에드워드 윌슨의 지적처럼, “현재 생명체의 종자들을 매년 만 종 정도씩 멸종시키고 있으며 그 멸종율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체 종자들의 “1/4은 기후변화만으로도 50년 이내에 멸종할 것”이라 경고하며, 『제6의 멸종』을 쓴 리처드 리키와 로저 르윈 역시 “지구상 생물 종의 약 50%가 21세기 말에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점에서 인류는 더 이상 “만물의 영장”이나 “피조물의 왕관”이 아니라 지구 생명계의 가장 막강한 파괴자(the terminator)가 되었다. 지구와 생명의 역사에서 신생대(Cenozoic)는 지난 6천5백만 년 동안 가장 아름다운 시대였지만, 인류는 신생대를 조만간 끝장낼 만큼 빠른 속도로 지구와 생명계를 파괴하고 있어서 인류 자신의 생존까지 위협할 정도로 자기-파괴의 길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평화신학의 포괄적인 컨텍스트는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토마스 베리)에서 자행되는 대량학살, 곧 종족학살(genocide)과 종자학살(biocide)과 지구학살(geocide) 현실이다. 전 지구적인 대량학살이 특히 서양 기독교 문명에서 태어난 산업자본주의 문명과 시장전체주의(세계화)의 결과라는 점에서, 기독교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참여하는 생명평화의 세력으로 작용하기보다 오히려 죽임과 파괴 세력의 모태로 작용할 만큼 취약하고 중병이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생명평화신학이 전통 기독교 신학에 대해 철저한 비판과 더불어 전면적인 재구성을 해야 하는 것은 이처럼 인류문명의 절박한 자기-파괴적 상황 때문이다.

 

 

2. 생명평화신학의 경험과 재료: “시대적 표징들”

 

인류 역사는 이처럼 농경시대 이후 제국을 주축으로 하는 죽임의 세력이 하나님의 생명평화 세력을 압살하며, 지배층의 집단이기주의와 폭력적 야만성이 민중들의 생존권을 유린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파괴하는 역사적 반동과 그에 대한 대다수 민중의 슬픔과 분노와 저항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생명평화신학이 일차적으로 “시대적 표징들”을 분별하는 작업, 즉 이 “시대적 표징들”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passion, 고통과 열정)을 느끼고 그 창조/구원 과정에 참여하고 그 과정을 다시 성찰하는 작업이라면, 특히 2011년에 나타난 “시대적 표징들”은 무엇인가? 1%가 99%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세계자본주의의 모순구조 속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옥죄는 국제금융위기와 많은 국가들의 재정적자와 높은 실업률 때문에 겪고 있는 약자들의 고통과 생존권 투쟁 운동만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 오염 때문에 멸종당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열고, 오늘의 주제와 직결된 열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11년 2월 현재 밀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75%, 옥수수는 77%가 올라서 글로벌 식량 위기로 인해 곡물 가격이 급등했던 2008년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르몽드 디플로마크』30호(2011년 3월호): 30). 한편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올해 북한의 곡물생산에 대한 합동보고서에서 “올 한해 북한에 300만명 분량의 식량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보고했다(한겨레, 2011/11/28). (2) 3월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폭발로 방사능이 계속 유출되고 있다. (3) 북극해의 바다 얼음이 “지난 8000년 동안의 온난기를 통틀어도 가장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한겨레, 2011/9/14). (4) <올 여름철(6-8월) 기상특성>(기상청)에 따르면, “강수일수는 48.3일로 평년(37.4일)에 비해 10.9일이 많았으며, 최근 10년(39.8일, 01-10년)에 비해 8.5일이 많았다.” 그러나 늦더위와 한국전력의 분할로 인해 9월15일에는 전국적 대규모 정전사태가 벌어졌다. (5)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0년경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던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32기가톤)이 10년이나 앞당겨 2010년에 거의(30.6기가톤) 접근했다(문화일보, 2011/6/1). (6) 기후붕괴로 인한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2도 상승 이내로 제한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최대 450ppm 이하로 제한해야 하는데, 국제에너지기구는 “현재 그 한계치의 87%인 390ppm에 도달한 상태에서 현재 추세로는 2015년 90%, 2017년 100%에 이르게 되어 인류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은 5년뿐이다”라고 경고했다(한겨레, 2011/11/11). (7)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확대되는 현실이며,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세계 7위이며 증가율은 세계 2위이지만, 탄소 배출권 거래제 시행조차 2015년으로 연기했으며(한겨레, 2011/11/30), 2016년까지 원전 6기를 새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한국일보, 2011/11/22). (8) 국회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고(11월 22일), “뼛속까지 친미․친일”(위키리스크가 폭로한 이상득 의원의 말)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행법안에 서명했으며(11월 29일), 또한 조중동매 4개 종편이 개국했다(12월 1일). (9) 해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김진숙 위원의 투쟁이 다섯 차례에 걸친 “희망버스”에 힘입어 309일 만에 승리했지만, 경찰은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을 구속했다. (10) 1%의 착취에 맞서서 99%가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이 미국의 여러 도시들에서 벌어졌다가 73일만에 종료되었다.
이런 “시대적 표징들”은 한마디로 인류가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 기후 위기, 금융 위기, 재정 위기, 양극화 위기, 민주주의 위기 등 전대미문의 총체적인 위기들이 더욱 악화되어 소용돌이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드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계급 갈등도 파시즘으로 치달을 만큼 더욱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 따라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소리 없이 더욱 많이 학살당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지구 자체가 파괴되어 지구 적자(Earth Deficit)가 더욱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총체적인 위기들 앞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명평화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특히 인류와 전체 생명계의 미래가 5년 후에는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떨어진다는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와 세계의 지배계층이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사회적 형평성과 평화, 민중과 미래 세대의 생존권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전체가 묵시적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절망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 파국에서 벗어날 대책들, 즉 탈핵을 위한 재생에너지로의 시급한 전환이나 식량자급을 위한 생태지역주의(bio-regionalism)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와 제국의 신” 앞에서 생명평화의 하나님은 철저하게 패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3. 생명평화신학을 위한 질문들: 전 지구적인 “아우슈비츠” 체제에서 신학하기

 

이처럼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목도하는 “시대적 표징들”은 이미 충분히 절망적이다. 기후붕괴로 인한 인류문명의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정부와 기업들과 대학들과 종교들이 대체로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학적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기후재앙으로 인해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뭄과 태풍과 홍수와 식량난과 식수난으로 인해 매년 수만 명씩 무고하게 떼죽음을 당하는 현실에서, 또한 이미 시작된 “기후 대전”(귄 다이어)으로 인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수십 억 명의 인류가 죽게 될 가능성(제임스 러브록)이 점차 높아가는 현실에서, 기독교 신학은 지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런 전대미문의 총체적인 위기에 대해 경고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깨우고 있는가, 아니면 이런 위기들의 주요 원인들 가운데 하나이며 또한 그 해결책을 외면하는 “자폐증”(토마스 베리)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가? 기후붕괴로 인한 인류문명의 붕괴를 피할 방법에 대해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이 에너지 전환을 비롯한 해결책들을 분명히 제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세상을 더욱 끔찍한 “생지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다름 아니라 인간 자신인 마당에, 강수량과 지하수 고갈과 해수면 상승에 전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하나님을 여전히 “초자연적인 전능한 하나님”이며 “사랑과 은총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종족학살과 종자학살과 지구학살은 전 세계의 경제력과 군사력과 매스컴과 학문과 예술을 지배하는 “유대인 파워”가 중심이 되어 자행하는 또 다른 “홀로코스트”로서, 그 규모가 전 지구적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유대민족주의의 산물인 “메시아(그리스도)”를 기다리거나,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절망의 묵시적 해결자로서 “재림 예수”(계 19에는 도살자 예수로 나온다)와 “휴거” 혹은 “천년왕국”을 기다리는 것이 성서적인 신앙인가, 아니면 인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짓인가? 이것은 기후붕괴시대에도 여전히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 아래 살고 있다는 허위의식과 유대 민족주의와 결탁한 제국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주입하여 집단최면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군다나 기독교는 거의 대부분 여전히 4영리(창조-타락-속량-완성)에 입각해서 “개인의 영혼구원”과 “마음의 평화,” 심지어 “성공과 번영의 복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인류가 눈앞에 닥친 생존의 절박한 위기마저 은폐하며 세계 현실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아편”에 불과하지 않는가? “생명의 자궁”인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인간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근거하여 “내일에 대한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는 식으로, 기후붕괴와 대멸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하나님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아닌가? 특히 “유대인 파워”가 “인류 공공의 적”으로 작동하여 기후붕괴를 더욱 악화시키는 시대에 유대인 예수를 여전히 “인류의 구세주”이며 “주님”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또 다른 “신사참배”와 같은 것은 아닌가? 도대체 나사렛 예수가 아브라함 종교의 핵심인 “전능하신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을 단 한번이라도 가르친 적이 있는가? “식민지의 아들” 예수가 제국의 지배체제에 동조했던 적이 있었는가? 기후붕괴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기독교는 농경시대에 제국화된 기독교가 만들었던 정통 구원론, 즉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주장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지구/생태계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절박한 인식을 기독교 메시지의 기본으로 택할 것인가? 또한 구원은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듯이 “외적인 의의 전가를 통한 구원” 혹은 “밖으로부터의 구원”을 반복하며 “재림 예수”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 아니 도대체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는 수없이 많이 있지만, 그 몸속에 “그리스도의 마음” 즉 역사적 예수가 목숨을 바쳤던 인간과 세상에 대한 꿈(비전)이 살아 있는가? 기독교는 우리들 자신의 구원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 수리할 책임을 우리에게 맡긴 하나님의 뜻은 상당부분 망각해버린 것이 아닌가? 예수의 구체적인 가르침과 죽음을 인류의 보편적인 죽음의 문제와 죄의 문제로 추상화시키고 우주적인 대속론, 즉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사탄과의 우주적인 거래로 추상화함으로써 인간의 삶과 세상에 대한 예수의 꿈과 가치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상당부분 잊혀진 현실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이란 애당초 귀족들의 평균수명이 서른 살 미만(엥겔스)이었을 만큼 죽음이 가까이에 있었던 시대에 죽음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종교 귀족들이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갈 것이니 아무 염려하지 말고 잘 자라!”는 심리적 위안을 기초로 해서 성전, 율법, 경전, 교리의 “신적인 절대 권위”를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왔던 것이라면, 또한 기후붕괴로 인해 수십 억의 인구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 시대에는 더 이상 “전능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통해 심리적인 “안전과 평화”를 선포하는 것이 종교귀족들의 속임수에 불과하다면, 종교의 새로운 역할은 무엇인가? 단적인 예로 북미 대륙과 유럽연합이 환경난민들을 막기 위해 철책선과 군사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현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현재 진행 중인 전 지구적인 대량학살로 인해 “아우슈비츠”보다 더욱 거대하며 더욱 장기적인 죽임의 체제로 변해버린 세계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계속)


profile

웃음

2011.12.03 13:58:28
*.228.35.13

흰구름님께서는 질문에 대답을 안해주시지만 그래도 질문하나 해봅니다.

영화 2012를 보면 지구 멸망때 결국 대피하는 사람들은 권력과 부를 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보기에 흰구름님 말씀이 맞다면(학자들중 환경에 대해서 음모론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파멸을 맞이할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근데 대부분 환경을 지키자고 하는 사람들은 권력과 부에서 떨어져있는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한다면 그 노력으로 얻어진 좋은 환경을 누리는 사람들은 또다시 권력층과 부유층일것입니다. 그러다가 종말이 오면 또 대피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권력층과 부유층일것입니다. 근데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그런 환경에 대한 무임승차자들이 모든것을 다 누릴텐데... 그냥 같이 죽는것이 낫지 않을까요?

우리가 아무리 환경운동 한다고 해도..  자본의 논리가 아마존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원주민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한 환경파괴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 정목사님 잘 표현하시는 이야기로 호랑이등에 올라탄 상황인데 이제 내릴수 없다면 무임승차자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하는지요?

흰구름

2011.12.03 17:14:04
*.241.112.15

웃음님이 말한 것처럼 어차피 권력층과 부유층은 살아남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같이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태도는 현재 아직 파국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5년 정도는 남아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너무 일찍 체념하는 성급한 패배주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현재의 상황을 "전 지구적인 아우슈비츠 체제"로 파악하고 있는 나 역시 결코 낙관적인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아우슈비츠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기 전부터 유태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에 대해

상당수 독일인들이 지지했으며, 대량학살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처럼 오늘 한국인들 대다수가 예컨대 북한의 식량난 문제에 대해서조차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히틀러 당시 대다수 독일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다수는 우리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무임승차자들보다는 대량학살을 적극적으로 자행하는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이 문제인데

지금으로서는 그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막아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지요. 

 

설령 그 사탄의 세력을 막아내지 못하여 대파국이 현실이 되는 2040년이 되었을 때

그 사탄의 세력과 무임승차자들에 대해서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결정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아우슈비츠의 복음"을 발견하고 살아내는 것은

우리 세대의 과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profile

웃음

2011.12.03 21:52:10
*.228.35.13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말하는 무임승차자는 우리 어께위에 앉아 있는 무임승차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무료로 타고 다니지요.  권력자나 기업가들과 동일인들입니다.

사실 우리가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co2 배출량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차를 고를때 그것을 제일 먼저 고려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 소나무 2그루를 심은것과 같다는걸 누가 알겠습니까?  

근데 왜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책은 재생지를 안사용합니까?

 

삼송

2011.12.04 21:44:36
*.119.241.122

웃음님의 위의 말씀은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김준우 목사님!예수님을 너무 일정한 카테로리 안에 가두어서 설명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메시아이신데 그것이 신성과 인성을 두루 살핀 역사적 결과이고 신학의 산물인데요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예수님을 너무 인성에 방점을 찍으시고 말씀을 전개하십니다. 인문학적인 분석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런 것입니까?

말씀하신 자본주의와 제국의 신은 또 무엇입니까? 사탄의 또다른 형상입니까?  또 말씀하신 밖으로부터의 구원을 반복하며 재림 예수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 라고 말씀하셨는데 재림예수님을 기다리는 신앙은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신지요? 예수정신만 추구해야 한다는 말씀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자본주의내에서 환경파괴를 일삼는 모든 행위는 악이라고 규정하시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목사님은 자동차가 없으십니까? 라면은 전혀 드시지 않으십니까?

극단적으로 말씀 드리면 수돗물은 쓰시지 않고 약수터의 물만 드십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행위중에 환경파괴의 행위가 아닌것이 무엇입니까?

자본주의만 악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싸는 우리 모두가 환경파괴의 주범인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다미선교회도 아니고  종말론적 기한을 5년의 시한으로 못박으신 것은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목사님은 예전에 감리교 안에서도 너무 진보적이다 라고 경고도 받으셨는데요 글을 잘못 읽으면 너무 좀 난해하다 못해 이단도 아니고 정통도 아니고 좀 이상합니다.  한국기독교 연구소는 제가 존경하는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도 오셔서 강의도 하시던데요 그런데 목사님의 사상과 글은 정통기독교 안에서는 해석이 안됩니다. 제느낌만 그런지..

이해가 안됩니다.

바우로

2011.12.13 00:27:16
*.62.24.93

해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김진숙 위원의 투쟁이 다섯 차례에 걸친 “희망버스”에 힘입어 309일 만에 승리했지만, 경찰은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을 구속했다.

이 말이 너무 마음이 쓰립니다. 두 분 모두 아는 분들입니다. 특히 정진우 국장님은 같은 진보신당 당원이어서 더욱 알고 지냈습니다. 그분들의 고통을 보면서 예수가 말한 올바른 일을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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