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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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기자들은 과연 예수의 혼과 꿈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한 것일까?
마태복음 5장에서는 형제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모욕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예수가 마태 23장에 이르면, 온통 험한 분노와 모욕과 저주의 말을 다 쏟아내고 있으니, 결국 마태는 예수 자신을 위선자로 둔갑시켜놓은 셈이다.
마태만이 아니라 마가, 누가, 요한은 자신들이 적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어떻게 예수의 입술을 통해 발언하도록 만들어놓음으로써 예수의 성품과 메시지 자체를 왜곡시켰는지를 분석한 크로산의 <비유의 힘: 예수의 비유들은 어떻게 예수에 관한 비유들이 되었는가>(2012)은 신약학이 정말로 물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김준우 목사님! 위의 내용을 보면서 자유주의 신학의 최대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해는 되지만 가슴이 아려옵니다
성서는 인간이 썼지만 정경이 되게끔 하신 이도 성령 하나님이시고 그말씀의 역사적 증명을 하신 이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죠 인간이 성서의 주체가 될수는 없습니다. 성서텍스트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역사적예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신것을 볼수 밖에 없는 것이죠 성서 기자들이 예수님을 왜곡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 쓰신 글처럼 이해하면 할수록 말씀은 변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용섭 목사님의 이번 설교 마지막 본문 내용이 아래와 같습니다.
그 예수는 성육신의 하나님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더 이상 다른 데서 서성거리거나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 자기를 학대하거나 자기 열망에 빠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수고를 거두십시오. 이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오신, 말구유에 태어나신, 십자가에 처형당했으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여러분의 운명을 맡기십시오. 그리고 지금 그분에게 집중하십시오. 구원은, 생명은, 영생은, 영원한 안식은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를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아멘.
위의 말씀이 진정한 예수님을 아는 핵심이라 생각됩니다.
예수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으면 어떤이는 성서기자가 예수의 입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하느라 그랬다고 하고, 어떤 이는 편집이 가능하지만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이 오히려 사실적 기록에 가깝다고 하고, 예수의 말이 앞뒤가 딱딱 들어맞으면 어떤 이는 가감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 하고, 어떤 이는 성서기자가 예수가 모순이 없는 자가 되게 하려고 예수의 말을 편집이나 취사선택했다고 하고...
'그냥 소설을 써보는 거야~' 나꼼수가 생각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