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지난 어느 날 저는 동대구역 지하철 입구 광장을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늘 보던 그런 광경이 그날도 펼쳐졌습니다. 온몸에 노숙 행색이 가득한 중년의 한 남자가 자질구레한 옷가지 등속을 넣은 배낭을 옆에 끼고 벤치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어떤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또는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것일까요? 그 사람은 삶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인지, 아니면 일상 너머의 도에 들어간 사람인지요. 그 사람에게서 그 순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요.
바로 그 자리 그 시간에 봄 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몇몇 꽃나무에 매달린 각양 색깔과 모양의 꽃이 황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건너편 벤치에는 조금이라도 젊은 아낙네가 앞의 남자와 마찬가지의 노숙 행색으로 담배를 피우며 오가는 행인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차도에는 온갖 차량이 질주하고 별로 크지 않은 광장으로는 사람들이 급히 지나치고 있을 뿐 아무도 이 사람들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그 한 순간의 모든 광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저에게 꿈이었습니까? 아니면 분명한 현실이었습니까. 막걸리를 마시며 허공을 응시하던 그 남자와 담배를 피우며 행인을 바라보던 그 여자, 그리고 곁눈질로 그들을 쳐다보며 급히 광장을 가로지르던 저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피조물인 저는 알 수 없으니 창조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 가르쳐주십시오.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서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