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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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 아버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전해드리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그리고,
사람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많은 일들과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누군가를 남겨두고
달려가야만 하는 우리네 삶이지만,
한없이 약하고 약한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 그분의 일과
그분의 뜻과 결실이 맺어지고 전해는것 외에는,
더 중요하고, 더 크고, 더 큰 감사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준비하시는 일들이, 도서관이,
하나님의 그분의 뜻과
그분의 사역의 소식들이 전해지는
도서관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옛날에, 어떤 랍비에게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랍비가 외출한 사이에 사고로 아이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랍비의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그녀는 두 아들의 시체를 방안으로 옮겼습니다.
한참 후 랍비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귀중한 보석 두 개를 맡기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그가 찾아와서는 그것들을 돌려달라는데
이럴 때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랍비는 별 생각 없이 쉽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
아니 주인이 달라고 하면 당연히 돌려주어야지
”
그제서야 아내는 랍비를 데리고 두 아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방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놓으셨던 귀중한 보석들을 찾아가셨답니다
”
랍비는 아내의 말 뜻을 깨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음
화물을 가득 실은 두 척의 배가 바다에 떠 있었다.
그 중 한 척은 이제 막 출항 차비를 하고 있었고,
또 한척은 항구에 입항한 상태였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가 출항할 때는
떠들석하게 환송을 하지만,
반대로 배가 입항할 때는 환송때와는 달리
별다른 환영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탈무드에서는 이러한 것을 대단히 그릇된 습관으로 지적하고 있다.
출항한 배의 앞날은 풍랑을 만나 어떤 고난을 당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떠들석하게 환송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오랜 항해의 길을 끝내고 무사히 귀항한 배한테는
진정으로 기쁘게 영접해 주어야 한다.
이 배야말로 어려운 역경을 뚫고 맡은 바 책임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기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많은 축복을 보낸다.
이 아이야말로 앞으로 어떠한 고난의 길을 걸어갈지,
도중에 그만 죽을지, 아니면 흉포한 살인범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막 항해를 떠난 한 척의 배와 같은 아기에게 축복을 보내는 것은 모순이 있다.
그러나 한 인생이 죽음이란 영원한 잠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가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사람들은 알고 있으므로,
이 때에야말로 진정한 축복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수고와 무거운 짐 뿐이지만...
내 아버지와 같은 너른 가슴의 하나님의 품, 그분의 집에서는
거할 곳, 쉴곳이... 믿는 이들, 그분의 자녀가 되고, 그분과 함께 되어 가는 모든
이들에게는 거할곳, 쉴 곳이 많음을 생각해보면 정말 하나님 계심이 어찌나 감사한지요...
또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흥미로만 대할 뿐이고,
수다 거리 소재로 써버리고 말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타인이 어떻게 죽어갔는가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같이 말할수 있고 기억해 줄 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독교인이 되어감을 생각해 보면 영혼에서부터 감사할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으로, 나를,
우리들을 기억해 주시고 대해 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