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관련링크 : |
---|
월든(Walden Pond)!
이곳 어디서 정목사님의 추천을 읽었기에 사진들을 올려 봅니다.
이번 여름, 월든은 소로 서거
150주년을 맞아 컨퍼런스를 열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저서 '아름다운 마무리'(2008)에서도, 2장에 걸쳐 월든 방문기를 남겼더군요.
월든과 법정,정목사님의 신학......생명의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도운 귀한 스승들이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 대운하 안된다>라는 글로 제 고향에 생긴 댐으로 성장기의 추억들이 그 강들같이 홀쭉하고 초라해진 마음에 깊이 연대의 울림을 주었습니다. 월든을 읽다가 새벽이 오고, 달려가 수영하면서 편협한 신앙, 탐욕의 영성을 해독하고 해방이 되는 여름 시간을 잠시나마 즐거워하였습니다.
콩코드 박물관에 전시된 소로우의 유품들
주차장에서 월든 가는 길에 위치한 소로의 집(복제);한 싸이트에서 당시 1달러가 일당인 것을 감안하면, 1400-2800불 정도의 예산(월든에서 28달러정도 들었다고 하니)이 소요된 집이라고 하네요.
아래는 콩코드 박물관의 에머슨 서재. '월든'에서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알코트의 아버지와 교유한 기록도 흥미롭습니다. 마녀 재판관 할아버지와 거리를 두려 성도 바꾼 나다니엘 호돈과 이들이 콩코드의 지성계를 형성하고.....
위는 소로 집터 근처의 호수
길을 묻자,늪을 관찰하던 쌍안경을 내려놓은 Thoreauvian.
얼굴에 빛과 명철,따스함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철학자시냐고 묻자,
월든 구절을 인용하며
늪지대를 관찰하는 삶,저널과 시를 쓰는 일상을 나누어 주고, 백로가 날아드는
순간에도 설명을 아끼지 않아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미국 교육의 세속적 소프트 파워를 진정으로 넘어선, 깊은 생명 사랑과 위트,자연에 대한 경외심의
眞人!
......우리의 교제가 잘 읽은 과일의 풍미를 띠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의 착함은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그것은 끊임없이 흘러 넘치되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또 그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그것은 많은 죄를 덮어 주는 恩典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 (월든,110쪽)
그에게 합당한 구절입니다. 뒤편 길로 가면 소로의 오두막 터입니다.
아래-앤 여왕의 레이스(Queen
Ann’s Lace)란 당당한 이름을 가진 들꽃.
영화 헝거 게임의 Rue란 소녀가 죽었을 때 여주인공 캣니스가 애통해하며 이 꽃 묶음을 가슴에 올려 놓던. 유럽에서 건너와 이곳 월든에서 보입니다. 두번째 영화를 보다가 겨우 알아내었습니다.
대단히 상징적인 행위로서 한 인간의 죽음이 애도되어야 될 만큼 고귀한, 게임의 제물이 아니란 선언이고 항거였지요. 이어지는 그녀의 높이 들리던 세 손가락! 시민 불복종 항거 장면…불후의 씬! 여선지자,사사의 탄생을 예감케 하는 비장미와 고귀한 인간애......소로의 시민 불복종 정신과 같은 스토리 텔링을 가지게 된.
그러나 이 꽃 이름과 잘 어울리는 걸까요.
물을 초월한 초월주의자 오리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
(요 14;6)하신 삼위일체 주님을 믿습니다.
우린 범신론자가 아니지요:)
자연이나 다른 종교와 문화에 폭력적이고 파시즘적인 기독꾼!중의 하나였던 저나 주변의 죄악을 분별하고 참회하는 데 소로,법정 이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고백이었고요.
월든 호수는 수 많은 탐욕과 오만의 죄들을 씻기고 생명과 창조, 부활의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지만,
이 소박한 소개하나라도 자칫 *국 문화 패권에 골빈 사대주의같이 읽히지 않기를 염려합니다.
서구를 위한 매판 학문에 봉사하는 자도 많으니까요.
한국의 고향을 지키는 분들 중에 진정한 소로의 친구가 많겠지요.
*스톤은 인구 60만의 (진주시 인구)작은 도시이고, 수 백년된 *교도 특유의 커뮤니티 건설이란 고도의(?) 정치공학이 작동하는 곳이어서 월든의 한 소로비안의 사진을 내렸습니다. 조심조심…. 팍스 브리태니카, 팍스 아메리카나, *국 성공회, *수 신학,**들이 더불어 첨예한 전쟁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소로와 법정 모두 북미 원주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고!
이들의 역사가 어찌 소통되는지 지금 제게는 탐구거립니다.
이 주제에서 정목사님의 설교 비평 덕을 많이 입었고요.
저보다 다들 선배신데요….
얼치기로 산 제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우리에게 주의 은혜가.
기쁜 메리님, 안녕하세요? 미국에 사시는 분이신가봐요.
저는 쬐매 오래 묵은 국내 다비안이랍니다.^^
월든 호수에 다녀 오셨군요.
사진 제목에 깜짝 놀랐어요.
청소년때는 뭐가 뭔지 모르고 좋았했다가
교회를 열심히 다닐때는
초절주의자라는 게 맘에 걸려서 헷갈렸고,
더구나 범신론은 반기독교라는 가르침에
더 헤갈렸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 헷갈림을
다비안이 되고 나서 몽땅 훌훌 벗어던졌어요. ^^
기쁜메리님처럼
"...생명의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도운 귀한 스승들이었습니다."
이신 셈이지요.
다비아에서 더 좋은 만남을 기대하겠습니다.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어요.
아, 글 참 잘 쓰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