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오늘 저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을 기억합니다.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국 지금 살아있는 이 모습의 짐을 벗어야 합니다. 삶은 즐거우나 괴로우나 짐입니다. 그걸 안고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옷을 벗듯이 짐을 벗을 수밖에 없으나 오히려 새 옷을 입듯이 생명의 옷을 입는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가 세월과 더불어 늙고 낡고, 그리고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사실 앞에서 삶의 허무를 탄식합니다. 그러나 이 허무하고 잠정적인 삶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생명의 힘에 완전히 포획될 줄로 믿습니다. 태양이 떠올라 어둠이 물러가듯이, 또는 눈송이가 불길에 완전히 녹듯이 예수의 부활 생명으로 죽음이 근본적으로 극복될 줄로 믿습니다.
죽음의 세력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으나 하나님의 전권으로 부활 생명체로 변화되시어 우리로 생명의 빛에서 살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목사님,
죽음은 아무도 모르는 사건입니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아는 게 아니라
나름으로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것뿐이에요.
나도 그런 축에 끼는 거지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설명도 듣고
자기도 거기에 참여하면서 앞으로 나가다보면
조금씩 잡히는 게 있어요.
그게 삶의 내공이라고 하겠지요.
그것도 천차만별이라 분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로 신학적인 공부를 해야겠지요.
하여튼 중요한 것은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겁니다.
생각의 문이 열리면 결국 어떤 답들이 그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주의 평화가...
목사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종교적, 철학적의미는 접어두고,
순수 인간자체에서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의 상징일까요
그럼, 삶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풍요, 행복, 쾌락, 온갖즐거움, 오감의만족,
이런것들이 삶의 목적일까요,
세속적인 삶, 종교적인 삶, 철학적인 삶,
삶의 종류도 황혼의 주름만큼 많은것 같습니다.
삶의 길목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되돌아 봤을 흐름의 발자취들을...
허무!
지나온 시간이나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서 죽음의 끝자락까지
저에 생각은 아무것도 없는것 같습니다.
죽음 또한 두려움이나 공포이 상징이아니라,
흐르는 물결속에 삶과죽음은 같이흘러갈뿐,시작도 끝도없는
그냥, 흐르는 물결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간적인생각의 삶과 죽음에대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삶과 죽음은 그리 깊은의미는 없는것 같습니다.
이제,
종교적인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목사님에 영성의 신비한 곳에는 어떠한 삶과 죽음이 있을까요,
많이 궁금하고, 체험해 보고싶군요,
붓자락이 짧아 두서가 없습니다.(죄송)
목사님 가정에 주님에 평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