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과 죄책감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떤 비정통 교파에서는 <회개>를 하는 것을 불신앙으로 간주하더군요.
그 교파가 어딘지는 아마 목사님께서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정통 교단안에서는 <회개>를 신앙생활의 필수요소로 인정하더라도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들었습니다.
일반신자들이 회개를 하려면 죄에 대한 통렬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회개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물론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가 마음의 근본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삶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신자들이 그 사실을 안다하더라도 실제로 마음의 근본을 하나님께만 두고는 살수 없잖아요.
그럴 때, 회개가 필요하고 잘못에 대한 고백이 필요할텐데, 그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참회를 할 수 있는지요?
자기를 파괴하지 않는 영성의 차원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참회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있는지요?
그리고 좀 어려운 질문인데
사람마다 자기의 고백이 죄책감인지, 아닌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까요?
저도 참회를 하는데, 그게 죄책감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렵네요.
목사님은 자신의 죄와 양심의 가책,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소하는지 궁금합니다?
제일 쉬운 예로 당장 이렇게 질문을 바꿔 보면 어떨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질문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니까, 실제로 죄를밝히라는 뜻은 아니구요.
샘터교회 예배때 죄의 고백순서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때 샘터교우들은 무슨 죄를 고백할까,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용섭 목사님은 어떤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할까,
한주일 동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있을텐데
그런 잘못을 고백하는 것일까,
아~ 그리고 참
양심이란 거는 신앙과 전혀 상관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신앙을 가지지 않았을 때의 양심과
신앙을 가진 후의 양심이 같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바울도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한 걸로 기억이 나는데요.
기독교 신앙이 과연 양심과 무관하게 작동될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아주 구체적으로 잘해주셨네요.
샘터교회 예배 때 참회 기도는 두번 있어요.
함께 참회 기도문을 소리 내어 읽는 게 하나고,
개인적으로 개인의 문제를 침묵으로 아뢰는 게 다른 하나에요.
개인 참회 순서에 신자들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는 내가 모르고,
나는 주로 가정과 교회, 그리고 몇몇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기도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겉으로, 또는 속으로 화를 낸 것,
어떤 이들을 겉으로, 또는 속으로 무시한 것,
교회 운영에 대해서 쓸데 없이 걱정한 것, 등등입니다.
목사의 삶이라는 게 참 단순해서
일반 신자들이 세속에서 당하는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그래서 참회라는 것도 나이브할지 모릅니다.
'양심'은 너무 복잡해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도 잘 모르겠구요.
독일어로 'Gewissenheit'라고 할 겁니다.
'안다'는 단어가 어근이에요.
칸트나 헤겔, 키에르케골, 쉴라이어마허 등등,
그리고 니체나 프로이트, 또 현대 수많은 심리학자와
포스트모던 학자들도 많이 말한 단어에요.
물론 성경에도 나오구요.
아마 그걸 잘 정리하면 박사학위 논문으로 가능할 겁니다.
<양심 개념과 기독교 죄론의 비교연구>
관심이 있으면 한번 이런 논문이 있나 찾아보세요. ㅎㅎ
'죄와 양심의 가책...어떤 식으로 해소하는지...'
기독교적으로 '해소'라는 말은 가당치 않습니다.
그건 상담이나 심리학이 말하는 거겠지요.
무슨 질문인지는 잘 알겠어요.
지금 신학적인 설명을 원하는 게 아니라
목회 상담적인 설명을 원하는 거겠지요?
뭘 예로 들어야 좋을지요.
살인 강도 같은 건 아예 말이 안 되니까 접어두구요.
그외에 메스컴에 나오는 파렴치한 일들도 접어두어야겠지요?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육체의 일'을 말해야 하나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분쟁...
이런 것도 손에 딱 잡히지가 않네요.
도대체 뭐가 죄이며, 양심의 가책이 될까요?
갈매기 님이 구체적으로 말씀하셔야 되겠네요.
그냥 두루뭉실하게 말해서는 너무 뻔한 말이 되고 마니까요.
죄책감은 건강한 신앙 현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초등학생들이 부모님의 말을 안 듣고 놀러갔거나
집에서 몰래 돈을 훔쳐서 과자 사 먹은 걸로
그 아이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거는 뭐
신앙과는 상관없이 그냥 도덕심이니까요.
이거 설명하기가 쉽지 않네요.
죄책감이 아닌 회심이 무언지를 알고 싶은 거지요?
일단 우리는 무엇이 죄인지를 잘 모른답디다.
그리고 양심은 늘 바르게 작용되는 것도 아니에요.
'악의 평범성'(한나 아른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양심적으로 악할 수 있는 게 인간이거든요.
기독교적으로 산다는 것과 양심적으로 산다는 말은 다른 거에요.
나치들은 양심적으로 악을 저질렀어요.
아마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도 그런 일들은 적지 않았을 겁니다.
내 입장에서 역시 신학적으로 끝낼 수밖에 없군요.
회심도 결국 은총이다.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곧 회심이다.
다른 이들의 삶을 훼손시키는 일,
다른 생명체의 생명을 훼손시키는 일은
실제적으로 윤리적 책임을 진다.
그리고 그분의 용서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