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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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인간으로 던져진 존재인 나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다른 존재들 특히
타인이 없이 살아갈 수 없는데 인간이 그려내는 학문인 인문학적 통찰 없이
살아가려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
뿌리 없는 부평초 마냥 이리저리 휘둘리며 내가 나로서 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나자신의 가치관도 정립하지 못하고 부모, 사회,
세상의 가치관으로,이념과 신념과 이데올로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지난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문자와 계율에 얽매어 통찰이란 게 뭔지도 모르고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보았건만 가슴 저 밑바닥에 형언할 길
없는 허전함, 기도가 부족해서인가 하여 더욱 열심히 새벽기도 철야기도 사이사이
기도, 헌금이 부족해서인가 하여 분에 넘치는 헌금을, 봉사가 부족해서인가 하여
가열차게 봉사를 . . .
속 모르는 교인들 신앙 좋다 믿음 좋다 칭찬하고 목사님은 신앙인의 모범이라 칭찬을
해대면서 본받으라!
하지만 깊어지는 허전함은 교회에서 발을 빼게 만들었고..
하지만 깊어지는 허전함은 교회에서 발을 빼게 만들었고..
세상에 나와 또 가열차게 세상의 삶을 살았지만 소금물은 들이킬수록 갈증만 더해
가고 그러면 다시 교회로 들어가고 반복 반복.
다비아를 만나면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뭔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선 공부에 재미를 느끼니 공부가 공부를 부르고 철학의 철자도 모르던 사람이 흥미를
느끼게 되고,철학을 공부하니 심리학 서적으로 사회학 서적으로 시로 소설로 나의 책 읽기는
끝 없이 이어지게 되고 . . .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 수없이 많겠지만 하나의 책을 읽으면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아! 내가 없었구나!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끝 없이 이어지게 되고 . . .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 수없이 많겠지만 하나의 책을 읽으면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아! 내가 없었구나!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내가 나를 몰랐던 거였구나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욕망하는게 뭔지 나는 없고 내 속에
타인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구나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의 타자가 있었구나 그 타자들의 소리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며 살았구나! 하는 내 삶에 먼동이 트는 날이 왔다. 비로소 인문적 통찰이
시작되었다.
타인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구나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의 타자가 있었구나 그 타자들의 소리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며 살았구나! 하는 내 삶에 먼동이 트는 날이 왔다. 비로소 인문적 통찰이
시작되었다.
나를 찾게 되다 보니 내가 없이는 어떤 성취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식이 늘어나고 경험이 증가하면서 삶이 조금씩 달라지는걸 느꼈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서 좀 더 행복해졌고 여유로와지고 좀 더 관용스러워지고 좀 더
부드러워지고 가족과 이웃들과 잘지내게 되었고 . . .
부드러워지고 가족과 이웃들과 잘지내게 되었고 . . .
그동안 정목사님이 책 좀 읽어라!
그 권유가 얼마나 고마운지. .. .
물론 책을 읽지 않고도 인문적 통찰이 가능하다면 책을 읽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 많은 현인들이 하나 같이 책을 읽어라 라고 말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서다.
신앙은 이제 나에게 강제가 아니다. <성서>를 읽을 때 <장자>를 읽을 때 <도덕경>을
<월든>을 읽을 때 나는 참 평안하고 행복하다. 사람은 그 사람이 먹는 것의 총체다.
그 사람이 먹은 것이 그 사람이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공기를 마시고 어떤 책을
먹는가가 그 사람이다.
<월든>을 읽을 때 나는 참 평안하고 행복하다. 사람은 그 사람이 먹는 것의 총체다.
그 사람이 먹은 것이 그 사람이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공기를 마시고 어떤 책을
먹는가가 그 사람이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의 책을 먹고(읽는다는 단어를 쓰지 않고 먹는다는 단어를 쓴다)
소유지향적 삶에서 존재지향적으로 바꿔지는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지
자연에 눈이 뜨여지고, 한송이 고마리 꽃을 향한 일년의 기다림 뒤에 고마리를
다시 만났을 때의 그 희열이라니. . .
자연에 눈이 뜨여지고, 한송이 고마리 꽃을 향한 일년의 기다림 뒤에 고마리를
다시 만났을 때의 그 희열이라니. . .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내 마음과 육체를 살찌우는 고마운 것들로 느껴지고. .. .
"너는 해야만 한다"의 삶이 아니고 "나는 할 것이다"의 삶으로 바꿔졌다.
"너는 해야만 한다"의 삶이 아니고 "나는 할 것이다"의 삶으로 바꿔졌다.
인간은 내가 나인가? 하는 질문을 항상 해야 한다. 내가 나 아닌 다른 것에 노예가 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욕망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욕망은 이곳에 있는 나를 저기로 끌고 갈 수 있는 의지이고 추동력이고
생명력이다.
욕망이 게세된 인간은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이것이 인문학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있지 않은가?
나의 욕망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욕망은 이곳에 있는 나를 저기로 끌고 갈 수 있는 의지이고 추동력이고
생명력이다.
욕망이 게세된 인간은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이것이 인문학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나는 과연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았나? 바라는 일을 하고 살았나? 나는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나? 해야하는 일을 하고 살았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나? 자문해 봐야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잘하게 되고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해진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니겠는가?
혹자는 누가 그런 삶을 꿈꾸지 않겠는가? 반문한다. 정말 그런가? 물어야 한다. 자신에게 정말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때 길이 보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나? 해야하는 일을 하고 살았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나? 자문해 봐야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잘하게 되고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해진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니겠는가?
혹자는 누가 그런 삶을 꿈꾸지 않겠는가? 반문한다. 정말 그런가? 물어야 한다. 자신에게 정말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때 길이 보인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자가 과연 누구에게 행복을 나눠 줄 수 있겠는가 “자족의 샘물을 마시지 않고는 전도와
봉사가 그을음과 연기일 뿐”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은 사실이다.
봉사가 그을음과 연기일 뿐”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은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절체절명 지상 명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허나 그전에 "네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다는 걸 생각지 않는다. 나를 사랑 하려면 나를 알아야한다.
우린 사랑 사랑 사랑 타령을 참 많이도 한다.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도 하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도 한다.
사랑이 뭔지 알아야 사랑도 할 것이고 하나님도 알 것이다.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실체, 존재자로서
인식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과연 저기 저 먼 어느 곳에 무한한 능력을 소유한 슈퍼맨으로 존재하는가?
모른다. 모르니까 공부해야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았던가 내가 알려는 노력 없는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진들 그게 뭔지 알겠는가?
하늘이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경험해 본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된다.
허나 그전에 "네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다는 걸 생각지 않는다. 나를 사랑 하려면 나를 알아야한다.
우린 사랑 사랑 사랑 타령을 참 많이도 한다.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도 하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도 한다.
사랑이 뭔지 알아야 사랑도 할 것이고 하나님도 알 것이다.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실체, 존재자로서
인식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과연 저기 저 먼 어느 곳에 무한한 능력을 소유한 슈퍼맨으로 존재하는가?
모른다. 모르니까 공부해야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았던가 내가 알려는 노력 없는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진들 그게 뭔지 알겠는가?
하늘이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경험해 본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타인을 괴롭힐 수 없다. 내가 주체적인 사람이 되었을 때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내가 나의 주인으로의 삶을 살아 본 자만이 타인을 그것이 아닌 그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으로의 삶을 살아 본 자만이 타인을 그것이 아닌 그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 되고 자족하면 타인을 억압하고 나의 종으로 부리고 싶은 욕망이 없어진다.
주체로 서지 못한 타인을 볼 때 측은함이 생기고 도와 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주체로 서지 못한 타인을 볼 때 측은함이 생기고 도와 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가고 악한 일을 해서 지옥에 가는게 아니다. 선한 일은 그자체로 천국이요
악한 일은 그자체로 지옥이다. 비슷한 말이 성서에도 있다.
악한 일은 그자체로 지옥이다. 비슷한 말이 성서에도 있다.
“선한 사람은 지옥엘 보내도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 것이요 악한자는 천국을 보내줘도 그곳을 지옥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만든다”는 말이 있다.
“춤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있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있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위의 시를 나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소녀이며 노친네의 허접한 고백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의 시를 나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소녀이며 노친네의 허접한 고백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린왕자를 읽고 댓글을 달려다 글이 너무 길어져 여기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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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반가우이...양소루...
난 오랜동안 왜 난 나일까? 왜 ㄱ도아니고 ㄷ도 아닐고 나일까?
지금도 가끔 자신이 낮설지, 이러면서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지금 나의 영혼의 시즌은 겨울
많은 것이 떨구어져 나가고,그러다가 곧 순수하고 새로운 싹들이
돋아나길 바라며 삶의 가는 길을 묵묵히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보낸다.
겨울을 보내면서
가볍고, 단순 무식(지식이 없는게 아니라, 지식으로 부터 자유로와지는것) 이 좋아지고
나란 나무의 잎들이 떨어 지고 나니 하늘이 더 많이 보이는 것,
어쩜, 그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상상도 하며
왜? 가벼우니까...
비우고 또 채워야 할때
도와주시게나
초원에 돋아난 파릇파릇한 새싹이
하늬바람에 하늘 대는 듯한 생명가득한 글을 쓰는 눈꽃님을
누가 노친네라 할 수 있을까요?
가없이 자유롭게 부는 바람같이 자유로운 글.
그러면서도 따스함을 한껏 품고 있는 글.
근래 눈팅한 글 중에서 가장 시원함을 가져다 준 글입니다.
바쁘시더라도 자주 글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