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있는 딸과 가끔 메일을 주고 받습니다. 남편은 주로 스카이프(skype)로 화상통화를 하는데 저는 주로 메일로 나누는 편이예요. 엊그제 주고받은 편지가 마음에 깊게 와 닿는데 우리모녀의 편지를 공개한다니 남편이 저더러 푼수래요...ㅎㅎ 머, 어차피 제 푼수끼는 다 아실테니 올려도 무방할 듯.^^ 제가 쓴 편지입니다.............................. 지연아, 어제 노자강의 들은 것 너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서 메일 쓴다. 새벽에 잠이 깨었는데 잠도 안오고해서...^^
선생님이 엊그제 전철을 타고 가시는데 맞은편 좌석에 자기 또래의 노인이 앉아 가시는데 꾸벅꾸벅 졸더래, 아주 고단한 인생을 살아왔고 사는 것 처럼 보이더래. 인상도 그렇고 옷차림도 꼬지지한 게.. 그런데 선생님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더래. "그 사람 함부로 보지마라...! 그 누구도 함부로 밟을 수 없는 독특한 (Unique) 인생이다. 온 우주를 통틀어도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하고 고귀한 영혼이다." 내가 존경하는 J목사님도 같은 소리를 해. 대통령 부인이나 시장바닥에서 좌판을 놓고 장사하는 아주머니나 존재의 무게로는 다 똑같다.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소중한 인간이라고. 노자 도덕경 56장에 이런 말이 나온단다. "화기광 동기진(和其光 同其塵)" 즉 빛을 누그러 뜨려서 먼지,티끌과 하나가 된다... 이를 가르켜 "현동(玄同)"이라고 한다. 현동이라 함은 분명치 않은 것과 같아지는 것이야. 즉 무슨 소리인가 하면, 사람이 너무 잘나고 빛나면 평범한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가 어렵잖아. 그러니까 도인은 자기를 반짝 반짝 드러내지 않고 수더분해 짐으로써 어떤 사람도 어렵지 않게, 다가오게끔 한다는 거지. 선생님이 스승으로 모셨던 장일순선생님은 아주 덕이 많으신 분이셨는데 그 분의 장례식 때 보니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문상을 오더래. 국회의원도 있고, 농부도 있고 창녀도 있고... 즉 그 분의 품이 넓어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품을 수 있었다는 거지. 현동, 이 놈과 만나면 이 놈이 되고 저 놈과 만나면 저 놈이 되고... 즉 자기정체성이 없어지는 거지. 물과 같은 사람이지. 그런데 모든 사람과 같아지면서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그게 뭘까! 그렇게 되기까지 먼저 자기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는거야.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이 인생 전반부에는 분명해야하고 그 이후 인생 후반부에는 그런 틀이 넓어져 이 것도 좋고 저 것도 좋은 그런 품이 넓은 인간이 되야한다는 거지. 첨부터 자기주관 없는 인간이 나중에 가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전반부에는 줏대 세우기가 있어야 인생후반부에서 줏대 허물기가 되는거란다. 그러니까 젊었을 때는누가 뭐래도 옳은 건 고집하기. 등도 필요하다는 것이지. 예를 들어, 기도도 딱 시간 정해 놓고 무릎이 닮도록 철저히 기도한 사람만이 삶이 곧기도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야. 그렇게 철저히 기도를 하지도 않고 일상이 기도인데 뭘 꼭 무릎꿇고 기도해야만 하냐..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 우리는 그 과정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란 말이야, 그림도 그렇잖아. 피카소도 처음엔 철저히 구상을 그렸잖아. 그 이후에 입체파가 나온거지. 이런 얘기들이 니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거야. 엄마는 요즘 노자강의를 들으면서 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나하는 물음을 하기 시작했단다. 하느님께 이렇게 묻는 중이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는 목적이 있으셨을텐데 그게 뭐지요? 그걸 잘 알고 찾아서 살고싶어요..." 그러고보니, 니가 네살 때 쯤, 그러니까 한 이십년 전 쯤 엄마가 삼십대 초반에도 같은 기도를 드린 적이 있는데. 무얼하면서 어떻게 사는 게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와 목적을 잘 살고 가는걸까...? 지연아, 엄마는 요즘 다시 그런 진지한 질문을 하고 있단다.. 나이 오십삼세에 말이다. 여긴 새벽 세시가 조금 넘었구나.. 잘있어. 사랑한다.
엄마가. |
덕분에 "화기광 동기진" 다시 공부하게 되어 좋습니다. 이런거 넘 좋아.ㅡ..ㅡ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