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 7월호를 어제(7월3일)에 발송했습니다.
사무착오로 받지 못하신 분은 연락주세요.
주소 변경되신 분들도 함께.

*바르트의 신학묵상-죽은 자의 부활········································ (2)
*이신건의 책읽기-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4)
*이길용의 미디오피아-한국 최대 종교는?································ (6)
*구미정의 생태묵상-강아지와 월드컵······································ (9)
*신완식의 런던이야기-그런 열정이 아직도!···························· (11)
*정용섭의 설교비평-설교의 두 기둥, 교회력과 해석학············ (17)
*정용섭의 신학단상-샬롬의 뿌리··········································· (31)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여기서 제외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지나가는 이 세상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지나서 어디까지 간다는 말인가요? 물리학자들의 계산이 옳다면 지구는 앞으로 45억년 정도는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 당장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만 해도 걱정이 산더미 같은데, 45억년 후를 무엇 때문에 생각하는가, 그런 것이야말로 현학(衒學)이 아닌가, 하는 핀잔을 들을 것 같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45억년 후에 대한 생각은 지금 당장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과 다른 게 아닙니다. 일 년과 45억 년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그런 종말의 빛에 의해서만 오늘의 삶이 이해될 수 있으니까요.
이번 <말씀과 삶> 7월호는 통권 50호입니다. 50이라는 숫자는 성서에서 희년의 숫자를 가리킵니다. 이걸 발행하기 시작한지 벌써 4년 2개월이 됐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시간과 세월이 이렇게 숫자로만 표시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숫자 말고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월에 담긴 인간 삶의 흔적들이 바로 시간의 실체라는 말인가요? 이런 문제를 밝히기에 우리 인간은 너무나 어립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삶이 불안합니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으니 어쩝니까. 불안을 그대로 안고 살아갑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원장 정용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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