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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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요19:27절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에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왜 예수님이 자기 동생들도 있는데, 어머니를 제자에게 맡기셨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왜 그랬을까요? 혹시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동생으로 알고 있는 그들이 혹시 사촌동생이었을까요? 이유를 모르겠네요.
목사님의 답변을 듣다보면 어떨 때는
속시원한데 이런 대목에서는 참으로 난감해집니다.
그럼 평신도는 우짜란 말이고?
요한공동체가 사라진지 이천년이 흐른 후에
오늘의 교회공동체 곧 기독교인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저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마치 평신도들은 접근불가처럼 느껴집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직제자였는데도
요한공동체가 어디서 저 정보를 얻었는가,
예수님의 친언인 가능성이 낮다는 표현은
성경을 이해하려면 해석학을 비롯해서 고도의 신학훈련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멀게 느껴지네요.
성경이 정말 어렵습니다.
속시원한데 이런 대목에서는 참으로 난감해집니다.
그럼 평신도는 우짜란 말이고?
요한공동체가 사라진지 이천년이 흐른 후에
오늘의 교회공동체 곧 기독교인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저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마치 평신도들은 접근불가처럼 느껴집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직제자였는데도
요한공동체가 어디서 저 정보를 얻었는가,
예수님의 친언인 가능성이 낮다는 표현은
성경을 이해하려면 해석학을 비롯해서 고도의 신학훈련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멀게 느껴지네요.
성경이 정말 어렵습니다.
일단 요한복음 기자가 저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가 확실하지 않네요.
공관복음에는 없는 이야기지요?
저 구절을 소위 가상칠언에 속하는데,
저런 말씀을 예수님이 직접 하셨을 개연성은
좀 낮다고 봐야 합니다.
저런 진술을 전하는 요한공동체에
피치 못한 사정이 숨어 있겠지요.
저 장면은 예수의 효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예수는 효자가 아니지요.
불효자라는 뜻도 아니구요.
그런 것을 뛰어넘는 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