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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빈 설교 꽉찬 설교
홈피에서 아직 정확하게 발표하지 않았던 제 설교지평집의 제목은
<속빈설교 꽉찬 설교>입니다.
그동안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얻은 제목입니다.
다비안들의 좋은 의견도 많았고,
저도 나름으로 의견을 냈는데,
결국은 기상 한종호 편집장의 의견이 채택되었습니다.
제 책을 맡은 기독교서회 팀에서도 위의 제목을 좋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직 사진을 잘 찍을 줄 몰라서
책 사진을 여기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불원간,
김영진 목사님이 올리지 않으면
제가 올려보겠습니다.
2월 중순 경에 2권이 발간될 예정입니다.
그것은 제목을 따로 잡아야지요.
1권 제목과 어울리는 좋은 제목이 뭐 없을까요?
<듣기 싫은 설교, 듣고 싶은 설교> 어떻습니까?
그건 그렇고,
이 책이 일반 신자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합니다.
제 글이 별 것 아니지만
그래도 설교의 바른 길과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약간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기독교서회에서도 돈은 둘째 치고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서라도 이 책이 공헌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책 광고를 위한 포스터까지 제작했다고 하는군요.
다비안들께서 조금 씩 소문을 내 주시면
이 책이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오를지도 모르지요.
어제(22일)에 다비아 송년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미 사진도 올라왔고,
글도 올라왔기 때문에 대충 그 분위기는 전달된 것으로 보고,
저는 제 나름으로 느낀 것만 몇 가지 간추리겠습니다.
우선 그날 여러모로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전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하신
구미정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영진 목사님은 멀리서 오신 것만 해도 나로서는 감지덕지인데
사진 촬영을 맡아주셨으니 뭐라 감사해야할는지.
김 목사님이 나중에 사진으로 올리겠지만 그날 강단을 코디 해 주신 분에게,
저는 잘 모르고 구 박사님이 잘 아는 친구 여자 목사님인데,
감사드립니다.
더불어숲 님도 하루 휴가를 내면서까지
노래부르기를 맡아주기로 하고 참석하셨는데,
일이 엉클어졌습니다.
시작할 때 조금 기타반주로 노래를 부르는 시늉만 하다가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마음놓고 그곳에서 씽어롱을 할 수 있으려니 했는데,
합창은 곤란하다는 말을 그 전날 전해 들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기도 했구요.
이 자리를 빌려 더불어숲 님께 미안하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 드립니다.
양성희 님과 조정자 님은
그날 먹거리 사는 걸 도와주셨습니다.
그에 앞서 사전 답사를 하면서까지 무얼 준비해야 할지 점검하고
그날도 시간을 미리 내어 장만해 주신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봄볕 님은 친구에게 얻은 케잌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감사.
훗날 기회가 되면 맛있는 거 사 줄께요.
원래 대한성서공회 세미나 실은 유료로 빌려야 하는데,
정작 돈을 내려고 하니까 잘 처리가 되었다고 하면서
담당자가 돈을 받지 않네요.
여러 모로 편리를 봐 주시고,
그날 전체 시간을 함께 해 주셨고,
좋은 덕담도 주신 민영진 총무 님께 감사드립니다.
늘오늘 님은 기도를 맡아주셨지요. 감사.
그 이외에도 감사 말씀을 드릴 분들은 많습니다.
아니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야겠군요.
어제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성서공부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인문학적 성서읽기>입니다.
원래 하양 대구성서아카데미에서 수년 동안 매주 하던 공부인데,
이번에는 조금 성격을 바꿔서 서울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대충의 얼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월 1회- 매월 넷째 목요일, 저녁 7시
장소- 대한성서공회 세미나실
방식- 특강
주제- 미정
대상- 무작위
위의 내용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공식적인 프로그램으로 이 행사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구성서아카데미와 대한성서공회의 공동 프로그램으로 진행됩니다.
세부적인 것은 그쪽의 팀 담당자와 의논해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일 년 동안 12번에 걸쳐서 강의하게 될
<인문학적 성서읽기>는 성서내용을 50%,
그리고 인문학적 해석을 50% 정도 배합해서 진행해볼까 합니다.
아니면 인문학적 해석을 70% 정도로 늘릴 수도 있습니다.
삶, 죽음, 시간, 역사, 그림, 음악, 시, 소설, 전쟁, 사랑 등등,
우리가 생각해야 할 많은 인문학적 내용을 통해서
성서의 주제를 명확하게 따라가는 공부가 되겠지요.
이런 특강은 입담이 좋아서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제가 가장 부족한 게 그거라서 결과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반교회에서 행하는 그런 진부한 성서읽기나,
또는 신학교에서 배우는 그런 따분한 이론에 머물지 않고,
이 세상과 생명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도록 해보겠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것은 다음 기회에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수원촌놈
책에 대하여 감사하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책방에 전시하는 날 미리 알아보고 사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저도 목사입니다만, 설교의 내용문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많이 듣고 읽기도 하였습니다만 만족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책을 읽은 후, 어느 정도(? 죄송합니다 다른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내가 생각하였고, 그리고 하여야 할 설교에 대한 윤곽(이 단어도 좀 그러네요..)을 확신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신년에는 목사님의 사역이 더욱 빛을 발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다음 책도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목사입니다만, 설교의 내용문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많이 듣고 읽기도 하였습니다만 만족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책을 읽은 후, 어느 정도(? 죄송합니다 다른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내가 생각하였고, 그리고 하여야 할 설교에 대한 윤곽(이 단어도 좀 그러네요..)을 확신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신년에는 목사님의 사역이 더욱 빛을 발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다음 책도 기대하겠습니다.
신문에서 정용섭 교수님의 기사를 읽고 찾아 왔습니다.
쓰신 글들도 읽어 가고 있습니다. 되도록이면 다읽어 보고 생각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그러나 궁금증이 생겨 질문을 드립니다. 답변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질문을 드려봅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을 깨우시려 이런 노력을 시작 하신것 같군요 가입을 하고 약관 동의서를 읽어보니 그런 의도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읽다가 보니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야기 하시는 것 처럼 보이나 장점 보다는 비판의 시각을 가지신다는 느낌이 있는데 맞나요? 그리고 많은 목회자 분들을 도마위에 올려 놓으셨구요.
전 비판론자도 아니고 옹호론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분들에게 임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의 체험을 나누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그 개인이 설교자로써 가져야할 분별력을 비판하는 것 일수도 있으나 그들을 세우시고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비판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히 그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의 잘못을 비판함으로 잘못된것을 들쳐 내게 함으로 교회를 회계 시킬수 있나요?
저 또한 어린 저에게도 이상하다 생각을 하게 하는 목회자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결론은 그들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아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날에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는 더 중한 잣대를 세우신겠다고 하셨지 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말입니다. 평신도인 저는 그들의 행위를 보지 않고 말씀만을 보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어떠한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이러한 것이 또하나의 선동이라고는 생각 해보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제가 잘못 파악 한 것이라면 .. 교수님의 순수한 의도를 알고 싶습니다.
한명의 신앙인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균형을 잡아가야 할 신앙인으로써 궁금합니다.
쓰신 글들도 읽어 가고 있습니다. 되도록이면 다읽어 보고 생각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그러나 궁금증이 생겨 질문을 드립니다. 답변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질문을 드려봅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을 깨우시려 이런 노력을 시작 하신것 같군요 가입을 하고 약관 동의서를 읽어보니 그런 의도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읽다가 보니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야기 하시는 것 처럼 보이나 장점 보다는 비판의 시각을 가지신다는 느낌이 있는데 맞나요? 그리고 많은 목회자 분들을 도마위에 올려 놓으셨구요.
전 비판론자도 아니고 옹호론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분들에게 임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의 체험을 나누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그 개인이 설교자로써 가져야할 분별력을 비판하는 것 일수도 있으나 그들을 세우시고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비판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히 그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의 잘못을 비판함으로 잘못된것을 들쳐 내게 함으로 교회를 회계 시킬수 있나요?
저 또한 어린 저에게도 이상하다 생각을 하게 하는 목회자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결론은 그들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아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날에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는 더 중한 잣대를 세우신겠다고 하셨지 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말입니다. 평신도인 저는 그들의 행위를 보지 않고 말씀만을 보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어떠한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이러한 것이 또하나의 선동이라고는 생각 해보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제가 잘못 파악 한 것이라면 .. 교수님의 순수한 의도를 알고 싶습니다.
한명의 신앙인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균형을 잡아가야 할 신앙인으로써 궁금합니다.
대학생 님,
반갑습니다.
목회자와 설교자를 향한 대학생 님의 태도가 옳습니다.
모든 문제를 트집잡듯이 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요.
설교자가 죽을 쒀도
성령이 고유한 방식으로 그 결과를 선하게 인도할 줄로 믿습니다.
다만 내가 이렇게 설교비평 작업을 펼치는 이유는
모든 진리의 잣대를 내가 확보했다는데 있는 게 아니라
성서텍스트를 바르게 해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 뿐이지요.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은 마지막 때 판단받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진리논쟁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예언자들 사이에도 그런 논쟁이 많았지요.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도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로마카톨릭 교회의 신학적 문제점을 지적한 것, 아시죠?
교황무오설과 면죄부를 격렬하게 비난한 것 말입니다.
감히 교황 문제를 비난하다니...
주님의 은총이.
반갑습니다.
목회자와 설교자를 향한 대학생 님의 태도가 옳습니다.
모든 문제를 트집잡듯이 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요.
설교자가 죽을 쒀도
성령이 고유한 방식으로 그 결과를 선하게 인도할 줄로 믿습니다.
다만 내가 이렇게 설교비평 작업을 펼치는 이유는
모든 진리의 잣대를 내가 확보했다는데 있는 게 아니라
성서텍스트를 바르게 해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 뿐이지요.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은 마지막 때 판단받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진리논쟁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예언자들 사이에도 그런 논쟁이 많았지요.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도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로마카톨릭 교회의 신학적 문제점을 지적한 것, 아시죠?
교황무오설과 면죄부를 격렬하게 비난한 것 말입니다.
감히 교황 문제를 비난하다니...
주님의 은총이.
큰일을 앞두신 분에게 작은 일로 마음 쓰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날 저녁은 정말 많이 속상했지만 항상 모든일에 섬세히 신경쓰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속좁고 옹졸하게 반응했던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요즘 목사님의 이 책으로 인해 기독교계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더군요. 이런 저런 반응들을 살펴보면서 진작에 이
런 책이 발간되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과 이제라도 이런 논란을 통
해 외곡되고 일그러진 기독교 예배와 설교들에 올바르고 건강한 토론이
형성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정기구독하고 있는 한
겨레21의 커버스토리가 코미디를 남발하는 교회에 대한 것으로 되어있더
군요. 목사님의 책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조롱꺼리로 전락해버린 기독교를
살리는 데에 작은 희망의 빛이 되리라 믿습니다. 새해 계획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그날 저녁은 정말 많이 속상했지만 항상 모든일에 섬세히 신경쓰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속좁고 옹졸하게 반응했던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요즘 목사님의 이 책으로 인해 기독교계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더군요. 이런 저런 반응들을 살펴보면서 진작에 이
런 책이 발간되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과 이제라도 이런 논란을 통
해 외곡되고 일그러진 기독교 예배와 설교들에 올바르고 건강한 토론이
형성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정기구독하고 있는 한
겨레21의 커버스토리가 코미디를 남발하는 교회에 대한 것으로 되어있더
군요. 목사님의 책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조롱꺼리로 전락해버린 기독교를
살리는 데에 작은 희망의 빛이 되리라 믿습니다. 새해 계획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계속 좋은 결실이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