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밥 한 그릇

Views 2896 Votes 0 2013.06.13 10: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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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도시 병원에 뇌졸중으로 입원해계신 시아버님 간호해드리고 어제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아버님은 여든의 노구임에도 아직 정신, 체력 모두 건강하시어

회복이 빠릅니다. 이틀 전부터는 지팡이 짚고 화장실을 다니십니다.


사흘동안 병원에 머물면서 저는 식사를 간편히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원내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사먹고 믹스커피 한 잔 타 마시면

딱 좋았습니다. 그러다 김밥에 물리면 근처 베이커리에서

잼이 든 달달한 빵 하나와 또 믹스커피 한 잔.

그런데 그제 저녁 아버님 저녁 식사 챙겨드리는데 TV에서

맛집 소개를 줄줄이 하더군요. 된장에 청국장에..그리고 하얀 밥.

저도 모르게 자꾸 입에 침이 고였습니다.ㅎ

아이쿠,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제대로 된 밥을 사먹어야겠구나,하고

병원 근처 식당 골목을 오가며 염탐을 시작했습니다.

이 동네는 밥이 좀 되직한 것 같어. 그래서 밥은 안되겠어..
(작년에도 아버님 편찮으셔서 다녀왔거든요.몇군데서 먹어봤는데
밥알이 올강올강한게 먹기가 좀 불편했더랬습니다.)

그래도 김치를 하얀 쌀밥 위에 척 얹어 먹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

그러면서 들어간 곳이 왠ㅋ 중국집이었습니다.

밥을 사먹다간 아무래도 작년처럼 낭패를 볼 것 같아 칼칼한 짬뽕을 먹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저 앞, 조리대 앞 단무지통 옆에 김치가 소복이 담긴 김치통이 보이는 것

아닙니까. 눈이 확 떠지면서 저도 모르게 김치 좀 많이 주세요,했습니다.

어찌어찌 짬뽕 면을 다 건져먹었는데,, 절대로,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밥을 이 새콤한 김치에 싸서 뚝딱 한 공기 더 먹고 싶어진 거에요..

그래서 아주머니께 밥 한 공기만 더 주세요, 김치도요! 하고 용감하게 말했습니다.ㅎ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나 했더니 저 벌써 娛拾* 넘은 아줌마라는 겁니다.

아주머니께서 제가 안돼 보였는지 밥을 고봉으로 갖고 오셨습니다.

아이구, 이거 너무 많으니 반만 덜어주세요..

그리곤 그 밥을 김치 얹어 한 숟갈 한 숟갈 다아 먹었습니다.

그러고나니 뭘 먹은 것 같더라구요.

식대를 내려는데 사장님, 짬뽕값만 말씀하시네요.

밥도 한 그릇 더 먹었는데요,, 하니 그건 그냥 나오는 거라 하십니다..

타지에서 받은 친절에,, 아니면 제가 조금 피곤했었나요.

찔끔, 눈물이 나려했습니다. 

아직 사람들은 온유하고 착합니다.

아는 사람에게든 모르는 사람에게든 그냥 베풀고 싶어하는 마음.

이게 진짜, 마음이겠죠.

저는 그 마음을 참 고맙게 받고 나왔습니다.

때로는 육신의 갈증을 통해 더 큰 정신적 풍요를 누릴 때가 있나봅니다.

숟가락으로 퍼먹은 따뜻한 공깃밥으로인해  호반의 도시 C 시의 인심을

오랫동안 따뜻하게 기억할 것 같습니다.

위 한자어는 음만 차용했습니다. 제발 못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밥도 촉촉하니 먹기 딱 좋았습니다.




무위

2013.06.13 12:09:13
*.154.230.130

닉네임부터 범상치 않더니,
문학 소녀를 넘어 아줌마가 되신 분의 필력이 느껴지네요.
어, 혹시 등단을 하셨거나 등단 준비를 하고 계신지도 모르겠군요.^^

시아버님 병 간호하시느라 멀리 ㅊ까지 다니시는군요.
며느리의 따뜻한 간호가 있어 쾌차하실 듯 합니다.

저희 집에도 병원에 입원한 가족이 있어서,
병원에서 나오는 보호자 식사를 신청해서 먹고 있는데,
병원에서 주는 식사가 참.... 다이어트 하기에 딱인지라^^;;;
식탐없던 사람도 식탐이 생기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ㅎ 
남편이 병원 식당 아줌마에게 식사 좀 넉넉히 달라고 했나봐요.
그랬더니 식당 아줌마께서 밥도 한 공기 더 챙겨주고 국도 한 그릇 더 챙겨주시네요.
옆에 환자들이 둘이 사귀냐고, 식당 아줌마가 너무 잘 챙겨준다고...ㅎㅎㅎ

환자도 환자지만 간호하는 사람도 힘들기는 매한가지 같아요.
남 눈치 보지 말고 드시고 싶은 거 있음 든든하게 식사하세요.

중국집 사장님이나 병원 식당 아주머니나
시아버님 간호하는 여름비님이나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여름비같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의미로 여름비란 닉을 쓰시는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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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3.06.13 13:20:47
*.94.91.80

여름비 님이 정말 글을 쉽게, 편안하게,
그러나 맛깔나게 쓰시네요.
순간순간 장면이 눈에 선하네요.
이런 글쓰기를 나도 좀 배워야겠어요.
근데요.
짬뽕 면을 다 건져 먹고
또 밥 한그릇을 김치 얹어 다 먹었다는 건가요?
별로 먹는 거 좋아하실 것 같지 않았는데,
좀 뜻밖이군요.
짬뽕 국물과 다른 건데기들은 남겼겠지요?
간호 다녀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profile

여름비

2013.06.13 21:56:10
*.182.17.150

딸 아이가 오글거린다고 닉을 바꾸라고 하던데요. 전도사님 글에서 가져와 문학아줌마,로 바꿀까요? 아니면 밥순이,는 어떤가요? 어쩌면 밥순이로 글이 올라갈지 모르겠습니다.ㅎ  오랜만의 버스여행이 좋았습니다. 밤꽃이 필 때인가요. 제가 보기엔 밤꽃이던데,, 밤꽃이 산을 하얗게 덮고 있었습니다.

profile

여름비

2013.06.13 22:09:11
*.182.17.150

목사님, 짬뽕 국물까지,,-오징어만 남기고- 건데기도 다아 먹었습니다.
이 말은 일부러 빼놓았는데 들켰네요. 
글 칭찬 주셔서 고맙습니다. ㅎ 건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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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13.06.13 23:33:49
*.116.221.129

여름비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개운하고 편안해집니다.
각박하고 먼지날리는 속에 칼칼한 목이  따뜻한 차를 마신 것 같아요.
뜻 아니게 타인으로부터 안좋은 말이나 태도를 만날 수도 있지만
이런 모습은 받을 때도 감동이고
한편 생각해보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태도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대접을 받을 일을 한 적이 잇나 싶기도 한 것같아요.
저도 요즘 느끼는 부분이라서 공감이 갑니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 밤에 출출하네요.
참아야지...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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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2013.06.14 02:58:23
*.182.17.150

유니스님, 가끔 이런 순간을 만나면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이 오래토록 떠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벅찬 마음을 갖고 있을 때가 바로 복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밤참은 출출할 때 먹는 것 아닌가요. 참고 계신 모습이 참 안스럽습니다,^^

profile

김영진

2013.06.14 14:20:41
*.203.200.174

밥 한 그릇의 감동이 제 마음에도 일어나네요...^^
호반의 도시가 춘천인가요? 춘천이 맞다면 몇 년 전에 아이들과 막국수 체험하러 간 생각납니다.
막국수에도 감동이 있더군요...^^
profile

여름비

2013.06.14 22:52:10
*.182.17.150

김영진 목사님께서 막국수 말씀하시니 막국수가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막국수는 홍천 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맛있는 것 같아요. 국수에 따뜻한 육수를 반 컵 정도 붓고 설탕 반스푼, 식초 한 티스푼 넣고 먹으면 정말 맛있지요. 또 침 고이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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