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숭배가 왜 문제인가? 보기에 따라서 그것은 단지 국가 의식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 사람이 신사참배를 하더라도 일본 황제를 신으로 믿는 게 아니라 단지 일제의 정치 체제를 인정하는 것뿐이라거나, 국기 의례도 국가를 숭배하는 게 아니라 국민으로서 국가를 인정하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황제 숭배가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아주 심각하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황제를 절대화하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절대화하면서 행복하게 살듯이 황제를 절대화하면서도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로마 시대에도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있다. 군사 독재 치하에서도 거기에 적응하면서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황제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엄중한 사실에 놓여 있다. 황제도 실수를 한다. 때로는 교만하고 파괴적이다. 그런 대상을 절대화하면 개인과 공동체가 결국은 파괴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는다. 성서는 죽음을 죄의 결과라고 한다. 죄는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를, 또는 어떤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다. 우상숭배가 바로 그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의 황제 숭배 이념이나 그런 문화와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오직 예수만이 ‘퀴리오스’(주)였다. 로마 황제를 ‘퀴리오스’라고 믿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기독교인들은 반역자로 보였을지 모른다. 기독교인들이 순교당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를 로마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집단으로 보았다는 의미이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 제국이 지배하던 당시의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한심한 것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팔복을 진리로 선포했다. 오늘 우리도 초기 기독교의 그 메시지에 동의하는가? 겉으로는 진리라고 말을 하겠지만 속으로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근 대구에 있는 아무개 순복음 교회의 목사는 <빈손을 채우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빈손이 될 뻔한 야곱을 하나님께서 부자로 만들어주셨다고 설교했다.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가난한 자로) 가는 것은 불신앙이라고까지 했다. 이런 교회에서 팔복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의 한국교회는 기독교 영성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