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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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더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 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풀을 우습게보았다. 겨울을 지나고 봄에 하나 둘씩 언 땅을 솟아나오는 풀을 초기에 열심이 김을 맸다. 몇 차례 김을 매고 다시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날이 덥고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아, 이게 아닌데 손으로 김을 매던 일을 그만두고 예초기로 풀을 베었다. 그러다가 며칠을 보내고 보면 온 사방 풀 천지가 되어 버린다.
아, 인간이 풀을 이길 수 없구나, 그래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제초제를 써도 어느 기간이 지나가면 뿌리에서 다시 풀아 솟아난다. 도대체 이 풀의 정체는 무엇일까? 베면 벨수록 더 솟아나는 질긴 풀의 생명력…….
철학자 강신주가 시인 김수영에게 자신의 계보를 이어 갈 것이라 한다. 어쩜 강신주의 정신의 모태가 김수영시인이다. 왜 그가 김수영시인에게서 빛을 발견했을까? 김수영 시인은 1925년 태어나서 1968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48세 나이로 죽었다. 거제포로소용소에서 참혹한 수용소 생활을 통해 참다운 자유를 위한 그의 삶이 문학으로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가장 암흑한 시기 4.19와 5.16 군사혁명을 목격하면서 역사와 자유에 대한 통찰을 문학을 통해 날을 꺽지 않았다.
“....무엇이 바꿔졌느냐 하면 나라와 역사를 움직여 가는 힘이 정부에 있지 않고
민중에게 있다는 자각이다“ (김수영 산문 중)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 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푸른하늘 - 김수영)
그는 가장 완전한 자유를 요구한 시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고 노래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자기 검열의 시대에 접어든 것 같다. 민주주의 토대가 다시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언론과 정부기간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국가 정보원의 대선개입, NLL 둘러쌓고 남북정상회담의 문건의 공개 이것에 대한 국민들이 이 무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 및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촛불집회에 수만 명의 군중이 그 실체를 밝히라고 요구하지만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다시 역사의 비극적인 일들을 되풀이 할 모양인 것 같습니다. 나라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권력에 있지 않고 민중에게 있다는 이 소박한 진리가 외면되는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김수영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가 왜 99%가 아닌 왜 완벽한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는지.
연일 무더운 여름입니다. 사실 몸뚱이 하나 견디기 힘든 시기입니다. 그래도 민주주의에 대한 감시와 참여가 없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행복도 곧 억압과 폭력으로 얼룩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듭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역사와 자유에 대한 성찰과 오늘의 우리 삶을 견인해 나갈 희망을 찾아 온몸으로 살아내야 할 책임의식이 느껴지는 무더운 여름입니다…….
2013.8.14
김수영의 유명한 '시여, 침을 뱉어라'의 일부분이 인용되었네요.
이어서 조금 더 베껴보겠습니다.
김수영 산문집 읽으려 꺼내놓았는데 힘이 달려서 잘 읽히려나
모르겠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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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
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
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하다. 바로 그처럼 형식
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
고 나가는 것이다.
이 시론도 이제 온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순간에 와 있다. <막
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시인은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
라는 나의 명제의 이행이 여기 있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
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
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1968. 4.) / <김수영 산문집>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