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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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가운데 몇 주에 걸쳐 강신주 박사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 부제로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를 읽었다. 서평을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이해를 느끼며 책 소개하는 걸로 만족해야 겠다. 이런 좋은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귀한 보화를 많이 담아야 겠다는 소망이 간절하네요.
아래의 글은 출판사의 책소개 글입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욕망 들여다보기>
라캉은 묻는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이 책은 우리들에게 자본주의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자고 제안하며 우리 일상과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체제의 요소요소를 파헤쳐보자고 말한다. 이마 너무나 길들여 있어서 의심하기조차 어려운 ‘자본주의적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소비사회에서 부풀어 오른 욕망과 그 욕망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데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대한 원초적 느낌을 직관으로 포착해낸 예술과 그 복합적 메커니즘을 이성으로 분석해낸 사상의 만남을 통해 인문적 치유를 모색한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자본주의에 상처받은 인간을 묘사한 문학가 네 명(이상, 보들레르, 투르니에, 유하)과 마르크스 이후 자본주의적 삶을 폭넓고도 심층적으로 탐색한 사상가 네 명(짐멜, 벤야민, 부르디외, 보드리야르)이 그 안내자가 된다. ‘화폐와 도시의 탄생’으로부터 ‘소비와 노동의 무한루프’ 궤적 그리고 ‘선물의 사회’에 대한 청사진까지, 20세기 자본주의의 노회한 역사를 관통해낸 인문학의 진단과 처방을 만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부풀게 하는 소비의 욕망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을 발견하여, 부추김 당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면 이 책이 여러분의 첫 멘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질문들 “화폐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가” “도시는 왜 즐거운 지옥인가” “유행은 어째서 돌고 돌나” “로또의 행운은 왜 포기하기 힘들까” “가난한 이웃들이 왜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까” “ 절제와 사치 사이, 만족은 어디 있을까” “무엇이 서로를 구별 짓는가” “호혜 평등한 교환은 불가능한가” “바로 이 책의 긴 여정을 떠나는 출발점이다. 또한 자본주의를 단지 경제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그리고 문화와 관련하여 파고들었던, 그대 이후 철학과 사회학의 주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1부: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서
산업자본주의의 발달로 인간의 주요한 삶의 조건이 된 ‘화폐’라는 경제적 수단과 ‘대도시’라는 공간적 조건을 되돌아본다. 이들은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배하며 자본주의의 원초적 트라우마라 할 만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두 키워드로 압축되는 현대의 삶을 탁월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모던보이 이상의 작품을 살펴보고, 여기에 사회 철학적 전망을 부여하는 게오르그 짐멜의 도움을 받는다. 이상의 작품 <날개><권태><동경> 및 그이 서신들, 짐멜의 논문 <현대 문화에서의 돈> <대도시와 정신적 삶>등을, 오사와 마사치나 라캉의 ‘욕망론’ 그리고 칸트와 니체의 ‘자유론’과 더불어 살펴본다.
2.화려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 질문을 자본주의의 화려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 질문을 자본주의의 19세기 파리에, 그리고 자본주의로부터 상처받은 삶이 19세기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에게 함축되어 있다고 확신한 벤야민에게 던져본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과 조르조 아감벤의 노력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벤야민의 미완의 작품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어쩐지 불쾌하지만 지겹도록 우리를 떠나지 않는 테마인 도박,매춘,유행의 문제를 성찰한다. 이 세 테마를 관통하는 에로티시즘 논의에 에두아르트 푹스, 구키 슈조, 사르트르 등의 흥미로운 시선이 보태진다.
3부 매트릭스는 우리 내면에 있다,
이는 주체 중심적인 다니엘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타자 중심적인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으로 바꾸면서 투르니에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가 아닐까. 주체에게는 행위와 사유를 규정하는 내적인 무의식 구조가 존재한다는 이 문제의식은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와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를 통해 부르디외가 해명한 아비투스의 내적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아비투스의 변화 없이 혁명을 기대할 수 있겠는지 뼈아픈 통찰을 바탕으로 잠재성을 넘어선 가능성을 내다보며, 이 아비투스가 사회에서 드러나는 가장 강렬한 방식인 ‘취향’에 대한 논의 또한 매우 신랄하다.
4부 건강한 노동을 선물하기,
자본주의가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포획하는 데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는지 해부하며 그로부터 자유를 되찾기를 노래한 시인 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천일馬화』등에 나타난 소비문화에의 양가감정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할 사람이 바로 보드리야르이다. 그는 『소비의 사회』『생산의 거울』『불가능한 교환』『암호』 등을 통해 ‘기호’라는 소비사회의 내적 동인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였다. 베버와 좀바르트의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논쟁, 바타유의 ‘일반경제론’, 가라타니 고진의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지역 교환 거래제도)’와 ‘생산-소비 협동조합’ 제안까지 시선을 확장하여 소비사회로부터 벗어날 전망을 모색해본다.
저는 저자의 에필로그을 읽으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 비유를 들면서 현재 우리는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로 비유하면서 사슴과 나무꾼이라는 자본주의 체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날개를 잃어버린 선녀는 나무꾼의 그동안 숨겨진 비밀의 고백을 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들과 사라져 버렸습니다. 즉, 자유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삶은 어떠한 가치도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왔던 삶과 사랑은 기만에 불과 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을 가진 자의 자유, 소비의 자유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비의 자유란 돈에 대한 복종의 이면이라고 보면서 우리는 소비의 자유를 위해서 돈의 노예가 된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던 모르던 자본주의에 의해 많은 상처받은 삶을 적날하게 묘사하는 저자의 통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삶의 대안의 사례가지 말하면서 먼저 독자들에게 현재 우리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가에 중점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는 처서의 절기이네요. 아직 더위가 물러가지 않았으나 우리 마음은 벌써 푸른 하늘과 황금빛 들판에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많은 유익과 나눔을 기대해 봅니다.
2013년 8월23 처서
그렇군요..
저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 강신주가 왜 김수영의 계보를 이어가겠다고 했는지 에필로그를 통해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 할 수 있었습니다.
선녀와 나무꾼의 동화에서도 그는 "자유"에 대한 강한 의식을 드러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발견했을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날 수 있는 참된 용기...
.....
이왕이면
강신주의 책 "김수영을 위하여' 책과 더불어 제가 소개한 책도 같이 읽으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네요.
시간을 내어서 꼭 읽어 볼 가치가 있는책이라 생각됩니다.
이젠 가을의 문턱이 곧 다가오네요.
좋은 시간들로 채워지길 바람니다.
감사합니다.^^
라라님.
무더운 여름 잘 이겨냈는지요?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변해 간다더니 현실로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산청도 많이 더웠습니다.
왠 사람들이 다 이리로 몰려 오는지?
지금은 썰물이 다 빠져나가 다시 평온의 산청이 되어네요.
참, 다음달 5일 부터 산청 한방약초엑스포가 다음달 5일부터 시작되어 45일간 행사가 진행되면
전국의 시선이 산청으로 향하겠네요..
우쨌든 산청이 유명해 지네요.ㅎ
아직 눈이 침침할 나이는 아닐듯 한데..ㅎ
산청의 시원한 가을나들이 한 번 하면 싹 나을듯 한대..
아침 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네요
살맛 나는군요.
코스모스 가득한 아름다운 날들을 상상하며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지길 바람니다..
달팽이님 강신주 박사에 매료되신 것 같습니다 ㅎ ㅎ장자,나르가주나, 비트겐슈타인, 알튀세르 그리고
들뢰즈를 읽으며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자극을 받았다는 강신주 박사
저는 장자를 좋아하다보니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라는 책으로 부터 강박사의 저서를 접하고
그의 전작을 모두 읽게 되었지요. 장자를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해 냈는데(이렇게 해석한 사람이 최초라고 하더라구요)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이라는 부제가 붙은 <철학vs철학>900페이지나 되는 철학책이 제 철학공부의 나침판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지요.철학은 누구누구의 철학이라는 고유명사가 붙는 학문이니만치 그 많은 철학자들을 다 어떻게 공부하나 남감해 할 즈음 동서양의 중요한 철학자들을 대립의 쌍으로 묶어 일목요연하지만 심도 있게 설명해 놓은 책인데 참 좋습니다. 철학에 관심이 있는 초보자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벌써 자정을 지나 새벽 두시네요 언제 한번 시간을 내어 지리산이 있는 달팽이님이 사시는 곳을 가보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공하시고 행복하시길 . .
반갑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보내셨는지요?
매년 여름나기가 만만치 않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을이 되었네요.
저녁에 부는 시원한 바람은 천금보다 더 귀하게 다가옵니다.
네, 요즘 강신주 박사의 책들이 모조리 사서 보고 있습니다.
아내가 먼저 접하고 저도 등달이 흥이 나서 보고 있습니다.
아내는 요즘 고전읽기에 새로운 흥미를 느껴 밤잠을 잊고 책을 읽더구요.
저는 그 정도는 안되고요...
강신주 박사 정말 내공이 대단하더군요.
중년의 나이에 삶에 대한 깊이와 이해가 도를 통한 사람 같습니다.
거기에는 강신주의 삶이 밀착되어 있는 삶에 대한 통찰 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한 권 , 한 권 얼마나 정성드려 써는지 그 향이 느낄정도 이네요.
저희 보다 먼저 강신주를 접해서 더 잘 알겠네요..
네. 여유가 되면 맛있는 동동주 한 잔 합시다.ㅎㅎ
참고 발언입니다.
강신주 선생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제가 직접 들었고,
그분의 글과 강연을 많이 접한 분들에게서 전해 들었으니
아마 확실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신주 선생의 글과 강연은
깊이와 재미라는 점에서 아주 뛰어난데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어딘가 경솔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구체적인 예를 들면,
그분은 기독교의 창조론을 가리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교리라고 폄하하네요.
신을 창조주의 자리에 인간을 피조물의 자리에 놓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창조론이 뭔지를 모르고 하는 주장이랍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비롯해서 세상을 창조했다는 성서의 가르침은
주술적인 차원에서 자연을 섬기던 고대인들의 세계관으로부터의 탈주입니다.
이 창조론에 따르면 인간이 신의 차원으로 올림을 받는 겁니다.
더 나가서 왕과 귀족과 서민과 노예의 차이도 없어지는,
그야말로 혁명적 세계관입니다.
그걸 놓고 노예사관 비슷한 것으로 보다니,
좀 그렇군요.
그렇게 볼만한 현상이 기독교 안에 있는 건 분명하지만
철학자라고 한다면 그런 현상에 머물지 말고
기독교 신학의 세계와 대결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강신주 선생이 기독교에 대한 비판서를 쓰겠다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으니
좀 기다려 봅시다.
혹시 '안티 기독교' 수준의 글을 쓰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최근에 나온 여타 학자들의 기독교 비판도
이와 비슷하더군요.
여러분들은 기독교에 대한 자부심을 느껴도 됩니다.
신앙적으로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으로도 여러분의 영혼을 맡길만 합니다.
수천년 동안 수많은 사상과의 대결을 통해서 단련되었으니
웬만한 사상에는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앞으로 강신주 선생이 기독교와 관련 해서 쓰신 책이 눈에 뜨이면
즉시 저에게 알려주세요.
후사하겠습니다.
매미 소리가 꿈결처럼 들리는 원당 언덕에서...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마지막으로 종교비판서를 써서 기독교를 꼼짝도 못하게 하다고 장담하니
두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하네.. 조금은 자만심이 도가 넘친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아내가 읽으면서
성서와 신학에 흐르는 진리의 핵심보다는 종교가 권력과 기득권이 되어 종교의 본질이 왜곡되어 버린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하듯이 강신주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종교비판을 위해 주석과 다양한 성서를 구입했다고 하는데.
그가 그토록 붙잡고 있는 "자유" "사랑"이 장자와 김수영, 그리고 여려 철학자들의 삶과 논리보다
성서에서 복음의 진리에 눈이 뜨인다면 제2의 사도바울이 되지 않을까? 아내와 농담삼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발 그가 기독교 비판서를 쓰면서 진정한 자유의 행방의 복음에 사롭잡히길 기대해 봅니다.
너무 지나친 욕심인가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강신주 만큼 치열하게 온몸을 다해 인문학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보기 드문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삼분의 일 겨우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좋은 책 소개하셨네요. 이렇게 되면 막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이것도 봐야햐고 저것도 봐야하고.. ㅎ
4부 건강한 노동을 선물하기 이 챕터의 제목이 맘에 드네요.
읽을 기회를 꼭 만들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