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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지겨운 주제 ?

Views 2246 Votes 0 2013.09.20 13: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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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지겨운 주제이면서 동시에 결코 멀리할 수 없는 주제이며 또한 영원히 아리송한 주제인...
바로  "영성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지겨움을 즐기면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영성이란 무엇인가


영성수련에
 대한 논의들은 인간에게 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시작된다.  이성과 감성이라는 비물질적 자아가 인간의 내면에서 스스로 인식되어지는  근거는 바로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행위에 대한  동기 제공에 있다.  따라서 이성과 감성의 실존은 자아가 성장한 이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일 뿐이다많은 이들이 행위와 관련된  내면적 근거에 의해 이성과 감성의 존재를 쉽게 이해하는데 반해 영에 대한 실존은 사실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 되고 있다.


 영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  '일단 정지선'  5m 전방에   운전자가 있다차가 그 '일단 정지선'  가까이 갈수록  운전자는 고민하게 된다.  정확하게 정지선 안에 정지한후 다시 출발할 것인지 아니면 서서히 속도를 줄여 완전히 정지하지는 않았지만 정지한  살살 차를 몰아 부드럽게 지나갈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의 감성은 다시 재출발해야하는 불편함이 싫어 한적한  교차로를 그냥 정지한  살짝 지나가려 한다.  하지만 그의 이성은 법을 지켜야만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호소’  호소의 실체를 파헤쳐보면  가지로 나뉘어지게된다.  하나는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준법적 이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만약 숨어있는 경찰에게 들키게   그가 지불해야 하는 벌칙금이 주는 속박적 이성이다 운전자의 감성은 답답한 '일단 정지선'  은근슬쩍 지나가고 싶어하고  동시에 그의 이성은 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절제의 소리와 만약에 걸린다면 금전적 손해가 가해지는 불편한 것이라는 강권의 소리를 내고있다.


이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목적론적 윤리설이니 의무론적 윤리설이니 하는 말들로 이미 정리를  놓았다.


그렇다면
 법을 지켜야 한다는 절제의 소리의 실체에 대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절제의 소리의  가지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초월적 이성  윤리적 이성이 금전적 손해를 비켜가려는 그의 일반적 이성과 편하게 운전하고자 하는 그의 감성을 통제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또다른 한가지는  사람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의 영성이 금전적 손해를 비켜가려는 그의 일반적 이성과 편하게 운전하고자 하는 그의 감성을 통제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언급한
 초월적 이성윤리적 이성을 동기가 순수한 이성인류 공동 존재가치에 부합한 보편 타당한 이성으로 간주한다면 비기독교인들은 어쩌면 이러한 이성을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지 않는 이타적 동기의 발로로서 정의할 것이다.  영성과는 아무상관없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인류의 공동 가치이니 초월적이니 이타적이니 라는 말속에 숨겨 있는 놀라운 증거가 하나있다.  그것은 그것이 어떠한 바람직한 가치로서 숭고한 철학적 이념이나 정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추구속에는 어떤 절대적 가치를 찾고 이해하고 정의하고 싶은 인류의 오래된 숙원과도 같은 어떤 처절함이 숨어있다.  비기독교인들조차도 일반적 이성과는개별된 보다 상위적 개념의 무언가가 있다는 기대를 품고있는...  이것이 바로 영성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이성이 영성을 증거한다는 의미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된 예가 시사하는 바는, '일단 정지선' 에서 확실하게 정지하는 것이 윤리적 관점에서 선하고 옳바르다는 것이다.  벌칙금이 무서워 정지한다면 그것은 단지 일반적 이성의 행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일단 정지선' 에서 정지한다는 한가지 결과론적 행위에 대해  행위의 근원은 다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지하철안에서 서있는 노약자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의행위가 그가 노약자이기 때문에 양보를 했는지 아니면 주변의 시선때문에   없이 양보를 했는지의 차이라고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사실이 있다면 청년이  노약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마음때문에 실천한 것인지 아니면 비록 그런 인류애적인 사랑은 없었지만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실천한 것인지에 대한 차이이다.  물론 전자가 후자보다 나은 것이라 말할  있겠지만 여기에 바로 영성과 초월적 이성과의 관련성이 숨어있다.  이것은 “사랑하고 있다” 라는 사실과 “사랑해야 한다” 라는 사실의 차이라   있다.


실제로
 측은지심의 뜨거운 마음이 없을지라도  도리를 알고 있기때문에 행하는 “사랑해야 한다” 라는 것과 노약자를 바라보는 불쌍하고 동정심어린 “사랑하고 있다” 라는 것은 사실 동일하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해야 한다” 라는 의무감은 “남이 쳐다보니까  수없이” 보다는 적어도   “사랑하고 있다”  근접하고 있다.  의무론적인 초월적 이성은 일반적 이성이 영성으로 가는  과도기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이성은 영성과 일반적 이성의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우리가 이해할  있는 내면적 동기를 포함하면서 영성으로 가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영역들에 대한 특성과 위치를 알려줌과 동시에 영성훈련으로 가는  답을 제공하기에 이르른다.


그렇다면
 영성훈련의 답이 나왔다.  바로 육신을 따르는 감성적 행위를 일반적인 이성으로 통제하는 훈련에서 시작하여 단순 통제 기능을 갖는 일반적 이성을 “사랑해야 한다” 라는 초월적 이성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랑하고 있다” 라는 영성의 동기를 갖는 과정이 바로 영성 훈련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
 이성의 단순 통제 기능은 사회적 규약으로 표현될 뿐이지만 “해야 한다” 라는 초월적 이성은 사람의 됨됨이를 표현하는 보다 고차원적 개념으로 사회적 규약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이타적 사랑의 원천적 힘을 가지고 있는 “하고 있다” 라는 영성의 순수함은  무엇과도 비교될  없는 고귀한 것이 된다.


영성과
 일반적 이성과의 과도기적 상황 다시말해 영성과 일반적 이성이라는  집합의 교집합으로서 초월적 이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영성만이 가장 풍부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일반적이성만이 가장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고  가지가 교차되는 초월적 이성이 가장 지배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어느  개인을 두고 이야기할 때에는 상황과 특수한 배경에 따라 역시 달라질  있는 아주 가변적인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 이성에서 영성으로의 평균적 점유율이 이동하는 것을 영적성장영성개발 이라는 말로 대변할  있다절대자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이웃의 대한  사랑의마음을 우리 내면에 실존화시키고  점유율을 높이는 작업을 하는 것이 영성을 개발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런
 영성개발을 위해 기독교인이 하는 훈련의 하나가 그러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절대자를 묵상하는 것이다.  묵상의 행위는 바로 닮아가는 것이다.  절대자를 묵상하면 할수록 절대자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는 폭만큼 그를 닮아갈  있는 것이다.  그의 사랑의 내용을 조금씩 자기것으로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정지선' 
에서 정지함으로 벌칙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일반적 이성이 주는 부차적인 결과를 선봉장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하위개념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하위개념에 미련을 두는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영성의 느낌을 갖는 것을 포기해야만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훈련으로서의 묵상은 절대자와의 어떠한 거래가 무시되는 그냥 그를 바라보고 닮고 싶어하는 앙망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육체적인
 능력향상을 위해선 요구되는 체력을 배양하고 운동기술을 익히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어떤 논리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미  현상에 대해 밝혀진 원리들을 반복학습하고 재관찰로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그리고 독특한 감정의 발로를 이해하고 내면화 시키기 위해서 삶이 주는 역동적 상황속에서 가슴앓이가 필요한 것처럼 영성개발을 위해선 영성의 주체인 절대자를 향한그의 속성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영성은
 삶의 근원적 출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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