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5일(수)
삶(10)
숲을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잘 알려면
가까이 가서 나무를 살펴야한다는 말이 있다.
멀리서 보면 나무를 구분할 수 없지만
가까이 가면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멀리 숲도 보고 가까이 나무도 보라고 한다.
삶을 이해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형이상학적으로 보는 게 숲을 보는 거라 한다면
일상적인 현실을 보는 게 나무를 보는 거다.
양쪽의 관점이 조화를 이뤄야
인간 삶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너무 일상적인 현실에 치우치면 현실주의자가 되고
너무 형이상학적인 관점에 치우치면 이상주의자가 된다.
조화를 이룬다는 것도 간단한 게 아니다.
50대 50이라는 숫자로 계량화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철저하게 이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각각의 경우를 정확하게 포착하기도 힘들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만큼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일상적 현실에 치우쳐 있어서 문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에서만 삶을 찾다보니
서로 간에 비교하고 경쟁하고,
그래서 (초)긴장하고 살아간다.
그런 삶을 치열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의 삶에 길들여지면
겉으로는 현실적인 것 같아도
실제로는 추상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실제로는 가장 관념적인 것일지 모른다.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했다고 하자.
그들이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은 상상에 맡기자.
그들의 눈에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은 어떻게 보일까?
남북분단은 어떻게 보일까?
빈부격차는?
우리의 인생을 다 걸다시피 하는 문제들이
외계인들에게는 하잘 것 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시각이 있어야 우리 삶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밖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보는 것이 바로 신앙의 본질이다.
그 밖의 눈은 하나님의 눈이다.
그게 뭔지 대충 알고 있지만
별로 실감이 가지 않거나
그걸 선택해서 살만한 용기가 없다.
한꺼번에는 안 되겠지만 신앙학습을 통해서
자기를 밖에서, 멀리서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는가.
속담으로 글을 마치자.
이 지구에서 우리의 삶은 모두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하다.
너무 비교하지 마시라.
모두 지칩니다.
자기를 밖에서, 멀리서 바라본다면
참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주님을 봤다. 됐다, 가자'
고 최인호 작가님이 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라고 하네요.
죽는 순간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