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1일(금)
지난 주일 설교는 ‘소명’이 주제였다.
너무 흔하게 들었던 단어이기에
별로 실감 있게 전달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소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목사로의 소명, 선교사로의 소명 등등,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우선 다음의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소명 운운해도
우리의 생각과 행위는 늘 옳은 게 아니다.
올바른 일을 하기에는 우리에게 부족한 게 너무 많다.
우선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분간한다고 해도 그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소명을 앞세운 체
자기의 욕망을 합리화할 때가 많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는 찬송을
눈물 흘리며 열광적으로 부른다고 해서
그에게 옳은 소명의식이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
사이비 이단 교주들도 소명을 말하지 않는가.
소명을 말하려면 우선
우리를 부른 이와의 관계로 들어가야 한다.
소명은 기본적으로 하나님 경험,
또는 하나님과의 일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일치를 경험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방향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의 경험이나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일치가 어느 정도의 깊이에서 일어나느냐에 따라서
소명의식도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 경험이나 하나님과의 일치라는 표현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쉽게 말하면 다음이다.
자기를 비롯해서 자기와 관계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게 하나님 경험이다.
내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빚진 자다.
더 많은 것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불평할 일도 없다.
그것이 나에게 족한 줄로 알기에.
늘 은혜를 깨닫고 있을 때만
범사에 감사하며 족한 줄로 알고
범사에 감사하며 족한 줄로 알고 있을 때만
기쁨으로 자신의 소명을 깨달아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저희로 늘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게 하소서 !
옆사람이 늘 잔소리를 할지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