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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2일(토)
내일 설교 본문은 눅 17:11-19절이다.
치료받은 나병(한센병)환자 열 명 중에
한 사람만 돌아와서 예수께 감사의 예를 갖추었다.
예수님은 몇 가지 말씀을 하신 뒤에
결론적으로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런 말씀이 간단해보여도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은 무엇일까?
나병이 치료받았으면 이미 구원받은 것인데
굳이 구원을 또 말할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닌가.
여기서는 구원이 다른 뜻이라는 게 분명하다.
믿음만 해도 그렇다.
이 사람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을까?
그것에 대해서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서 어떤 신앙고백적인 발언을 들을 수 없다.
그는 단지 감사의 말씀만 예수께 드렸을 뿐이다.
그게 어떻게 믿음이란 말인지.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다음의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성서텍스트는 모든 걸 다 드러내는 게 아니라
많은 걸 전제하거나 숨기고 있다.
텍스트를 무조건 열심히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다.
전이해가 필요하다.
성서기자의 신학적 관점에 대한 전이해 말이다.
성서기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자신의 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게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이 질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기독교 영성이다.
가장 기본적인 대답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 대답과 일치해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