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3일(일)
오늘 설교는 사마리아 사람의 믿음이 주제였다.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병을 치료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예수님께 와서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이르기를
당신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소, 하셨다.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 발아래 엎드렸다는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굳이 엎드릴 것까지 있냐,
머리를 숙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되지,
나병이 나았으니 그 정도는 해야지 ... 등등,
이런저런 생각이 가능하다.
이런 생각들은 본문의 중심과는 별로 상관없다.
사람이 엎드린다는 것은
그 대상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한다는 뜻이다.
그 사람에게 대상은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본문의 핵심이다.
로마가톨릭교회 사제들의 서품식에서 절정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바친다는 뜻으로
모든 사제 후보들이 땅에 완전히 엎드린 채
여기에 해당되는 성경 구절을 듣고 기도를 하는 순간이다.
그것이 서품식의 한 형식이지만
절대순종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 발아래 엎드렸다는 것도
바로 이 절대 순종을 가리킨다.
절대 순종이라는 말도 흔히 들어서
별로 실감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노예근성에 불과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 말은 순종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다거나
순종하는 체 하는 게 아니다.
순종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자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순종하게 된다.
그 예를 나는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죽음이라고 말했다.
죽음은 우리에게 오는 절대적 사건이다.
이걸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대개는 어느 단계까지는 거부하다가
어쩔 수 없을 단계에 가면 받아들인다.
우리의 한 평생은
이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사건 앞에서
순종할 수 있는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 아닐는지.
기독교인은 그걸 예수님에게서 배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절대 순종한 분이며,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절대 순종을 배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향해서도 절대 순종을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예수님을 절대 생명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출산, 또는 죽음처럼) 절대적인 힘을,
또는 거룩한 힘을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람은
삶 자체를 절대 순종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너무나 친절한 주인 왈
" 아이고 연세도 있으신데 이렇게 큰 차를 운전하시니 대단하십니다. "
라고 하시며 깍듯이 인사하시네요.
그리 큰 차도 아닌데....
참 거시기한 인사를 듣고 가을 바람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ㅎ
주름하나 시간하나 어찌할 줄 모르는 피조물인 우리가 어찌 절대순종을 안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순간순간 잊고 잘난척하는 건 또 뭘까요?
몇천년 살 것 처럼 아둥바둥거리면서요.
목사님, 이젠 정말 감사와 순종을 몸의 일부인양 달고 살아야 할 나이인데 부끄럽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삶 자체를 절대순종으로 받아들일 때 쓰는 말
그렇다면
"너는 아직도 가짜배기 ! "
삶 자체, 공부를 하는 그 자체
오직 절대순종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