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9일(토)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신학 논제를
일종의 대자보 형식으로 내다 걸은 때가
1517년 10월31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훗날 멜랑히톤이 그렇게 말한 걸
교회사학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개연성이 없는 건 아니다.
루터가 일단 95개조 신학 논제를 작성한 건 분명하고
그걸 몇 사람에게 보낸 것도 분명하다.
95개조 신학 논제가 종교개혁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인 사건으로서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1517년은 루터의 나이가 34세 되는 때다.
1512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의 사상이 성숙해졌다 하지만
34세라는 건 예상 외로 젊은 나이다.
원래 뛰어난 사람들은 젊어서 일가를 이룬다.
시인, 화가, 음악가들은
훨씬 어릴 때 그 재능을 보이지만
신학자들 중에서도 그런 이들이 많다.
현대 생존해 있는 개신교 조직신학자 중에서
신학적 업적이 가능 큰 사람은 몰트만과 판넨베르크다.
그들도 30대 나이에 현대신학 역사에 남는 책을 썼다.
이들이 이렇게 어리거나 젊을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래 그런 능력을 타고 나기도 했지만
교육의 뒷받침이 크다.
다른 분야는 접어두고 신학만 보자.
독일에서 신학대학에 가려면
일단 인문계 고등학교(김나지움)에 가서
대학입학 자격시험(아비투어)에 합격해야 한다.
신학대학 과정은 5년이다.
졸업하면 마기스터 학위를 받는다.
우리 식으로 하면 신학석사다.
거기에는 학사와 석사가 따로 없고,
대학을 졸업하면 모두 석사다.
그것으로 전문 공부 과정은 끝이다.
우리나 미국처럼 박사 과정을 따로 밟지 않는다.
마기스터 학위를 받은 사람이 박사 학위를 받으려면
지도교수(독터 파터)를 정하고
그의 지도로 논문을 쓰면 된다.
학위 과정이 없으니 실력만 있으면
20대 중반에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박사 학위를 받는 건 사실 대단하다기보다
학문을 계속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것뿐이다.
루터도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
가르치면서 꾸준하게 공부했다.
그런 노력이 95개조 신학 논제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것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그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논쟁하고 가르쳤다.
그런 전반적인 과정을 통해서
1517년 10월31일의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의 흐름을 바꾼 단초로 승화된 것이 아니겠는가.
신학과 신앙의 연관성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군요.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신학의 역할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기독교가 헬라화되어서 신학이 발달하게 된 것이며
신학 자체가 헬레문화의 산물이라는 말씀들도 하시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은
대부분 신학적으로 깊이가 있는
신학자들이었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