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2일(금)
최근에 벌어진 에피소드 두 가지.
1) 두 주일 전 수요일이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기름 계기판을 보니 집에 가까스로 갈 정도였다.
다음날 집사람이 운전할 걸 감안해서
내가 미리 주유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마침 집사람은 바쁜 일이 겹쳐서 공부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구 시내를 약간 빠져 나가
지하철 2호선 연호역 근처의 주유소에 차를 끌고 들어갔다.
‘5만원어치 넣어주세요.’
야간 근무를 하시는 나이 든 분이 주유기를 걸고
앞차로 가서 계산을 하셨다.
나도 계산을 준비하려고 지갑을 찾았다.
지갑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웃 주머니에도, 바지 뒷주머니에도.
순간, 아차 싶었다.
또 지갑을 두고 나왔구나.
주유를 멈춰달라고 했지만
이미 들어가고 있어서 별 소용이 없었다.
사정을 말했다.
‘뭐라도 맡기시고 내일 찾아가시면 됩니다.’
‘핸드폰을 맡기면 되겠지요?’
‘그러면 됩니다.’
핸드폰을 맡기려고 하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다음날 집에서 거기까지 나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우리집에서 지금 송금해드릴 테니 통장번호 알려주세요.’
집에 연락하자 공교롭게 인증서 문제가 걸렸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결국 전도사님에게 연락해서 해결했다.
그러느라 다른 때보다 40분이나 늦게 집에 도착했다.
요즘 지갑을 깜빡깜빡한다.
2) 이 사건이 있기 5일 전 금요일 오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열심히 설교준비를 했다.
본문 해석이 좀 어려워서 일주일 동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교수님, 어디 계십니까?’
듣던 목소리라고 느끼면서
왜 나에게 전화를 했지, 했다.
거의 동시에 감을 잡았다.
강의 시간을 깜빡한 거다.
이럴 수가 있나.
‘너무 급한 일이 생겨서 연락도 못했어요.
다음에 보강할 테니 오늘 휴강으로 합시다.’
전화를 끊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동안 멍했다.
앞으로 예배 시간도 깜빡할지 모르겠다.
이게 치매 증상이 아니겠는가.
죽는 순간에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다른 모든 것을 완전히 까맣게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두루두루 염려해주셨군요.
재미 있으라고 쓴 글입니다.
그러나 뭐 제가 치매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구요.
다른 사람이 당한 재앙들은
나만 피해 가는 게 아니니 늘 준비해야겠지요.
저의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주신 판넨베르크 박사님이
수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로 요양하고 계시다네요.
개신교 신학의 20세기는 칼 바르트로부터 시작해서
판넨베르크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판 선생이
말년에 저런 몹쓸 병에 걸릴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요즘도 리코더는 조금씩 연습합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뭔가 속도가 붙는 거 같더니
지금은 너무 느려졌어요.
그래도 진도는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차르트의 곡을 불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내일은 주일이니 까먹지 말고 교회에 가야겠습니다.
목사님, 글을 읽다 보니 걱정이 절로 됩니다.
요즘 바쁘셔서 리코더 연습을 소홀히 하신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악기 연주가 치매예방에 어느정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에 기대어 말씀드려봅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