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나는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예배 식으로 진행되지만 예배는 아니다.
결혼 예식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때 할 설교, 또는 주례사의 요약은 아래와 같다.
설교, 엡 4:13-16, 어른이 된다는 것
1) 결혼을 독일어로 Hochzeit라고 한다. 절정의 순간이라는 뜻이다.
왜 절정인가? 젊음, 어른, 짝, 사랑과 성, 전혀 다른 삶의 시작...
2) 결혼 이후는 현실이 기다린다. 결혼 자체보다도 이 현실이 더 중요하다.
이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내고 투쟁이다.
3) 어떻게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하는지는 본인들이 더 잘 안다.
성품이 온화하고, 신앙적으로 교육 받았고, 인격적이고, 서로 사랑하기에...
4) 목사로서 나는 신앙의 관점만 말하겠다.
신앙 관점이라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건 아니다.
신앙은 존재의 변화를 가리킨다. 좋은 나무가 되면 당연히 좋은 열매를...
5) 엡 14절과 15절은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특별한 단어로 설명한다. 14절에서는 ‘어린아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본문의 설명에 따르면 어린아이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함과 유혹에 빠져 온갖 세상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부자가 되고 권력과 명예를 쥐어도 요동치면 사는 사람은 어린아이다.
어떻게 이런 어린아이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15절은 이렇게 대답한다. “오직 사랑 아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만 어린아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에게까지 자란다는 말은 안간힘을 써서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를 통해서 사랑과 생명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했다. 신자들은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지체다. 머리에 연결되어 있으면 몸은 자라게 되어 있다.
6) 두 사람이 이루 가정은 작은 단위의 교회다. 건강한 가정 교회가 되려면 머리가 누군지를 알고 거기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게 추상적인 말이 아니기를.
7) 구체적으로, 결혼은 인생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soul mate)을 얻는 것이다. 혼자 걸을 때보다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서로만 바라보면 방향을 잃을 수 있다. ‘2인3각’처럼 서로의 발을 묶어 놓으면 넘어질 수도 있다.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간다면 서로 영혼의 친구처럼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한 인생의 길을 행복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