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3일(월)
정의란 무엇인가?
요 18:28-19:16에는 빌라도 법정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의 운명이 달린 재판이니
세기적 사건이라 할 만하나
그것에 대한 자료는 성경 외에 없다.
당시 이 사건이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었던 예수 사건이
세계 역사를 바꾸는 사건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역사의 신비를 절감한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석방시키려고 했다.
이게 얼마나 역사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른다.
예수가 빌라도에게 고난당했다는 사도신경의 진술에 따르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책임을 빌라도에게 묻지 않을 수 없으나
복음서의 진술에 따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이 역사의 실체적 진실인지 우리는 모른다.
복음서 기자들의 시각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빌라도는 유대교 집권자들과 민중들이 모두
예수에 대해서 적대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직접 석방하기는 어렵다 보고 우회로를 찾는다.
그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피의자 예수를 신체적으로 가혹하게 대했다.
채찍질을 하고 머리에 가시나무 관을 씌우고 때렸고
자색 옷을 입혀 조롱받게 했다.
청중들이 그 모습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어
예수에 대한 살의만은 거두지 않을까 기대했다.
기대가 허물어졌다.
청중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 질렀다.
고함치는 유대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름 이성적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예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예수를 제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정의였다.
오늘날 그것은 인류 역사 이래 최대의 불의였다.
하나님을 심판한 것이니 말이다.
무엇이 정의인지를 판단한다는 게
피조물의 인식능력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해서 판단 자체를 포기한 채 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매 순간마다 판단할 건 판단하고
유보할 건 유보하고 살아야 한다.
성령께 온전히 의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