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9일(주일)
행복한 신앙생활
적지 않는 수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일단 부담이 크다.
성수주일과 헌금에 대한 부담은 일상적이다.
교회 안에서 모임도 너무 많다.
자기가 알아서 적당하게 하면 된다고 할지 모르나
전체 분위기가 그걸 용납하지 않으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가야만 한다.
신자들끼리 불편하게 여기거나
심지어는 원수처럼 싸우기도 한다.
제자교육으로 이름을 떨친 ‘사랑의 교회’마저
담임 목사 파와 반대 파가 볼썽사납게 싸우는 마당이니
다른 교회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신앙행태가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행복하지 못한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인이다.
비교적 합리적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맹목적인 신앙행태는 견디기 힘들다.
이런 상태에서는 행복한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은 하기 쉬우나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그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
그 방법론을 거론하지도 않겠다.
이건 개인과 각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서 다르기에
일반적인 대답은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냥 당위론적으로만 말하겠다.
신앙생활은 행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그만 두는 게 낫다.
왜냐하면 신앙자체가 행복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마 5장의 팔복에서 말하는 그 복(헬- 마카리오스)이
바로 신앙생활의 기초다.
위에서 설명하지 않겠다거나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특별하게 열악한 조건이 아닌 한에서,
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기쁨을 모르니
어찌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겠는가.
하나님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의 깊이를 모르니
작은 차이가 크게 보일 수밖에 없고,
그러니 어찌 기쁨을 누릴 수 있겠는가.
내가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의 교우들은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주일 밤, 목사의 단상)
물론 세상적 조건이 충족된 가운데
뿌리깊은 죄된 본성을 만족시킴으로 오는
행복은 아니겠지요?
매일 죽노라
바울의 고백대로 매일 우리의 욕과 정을
십자가에 못박야 하는 치열한 영적전쟁
가운데서
세상에선 얻을수 없는
내적 평안 자유 안식 소망...
을 의미하시거라고 해석하면 맞는지요?
그 복을 향한 애통함과
여전히 곁눈질하며 기대하는 세상에서 얻을수
있는 행복추구 본성의 애통함(?),
그 경계선을 넘나들며
갈등 가운데 사는게
신자된 정체성이요 심령의 적나라한 상태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