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월)
즐거운 예배
나는 평소에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식이기에
은혜 받으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청중들의 종교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소위 ‘열린예배’ 유도
바람직한 예배 형태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 말을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예배가 엄숙주의에 빠져도 된다거나
밋밋해서 아무런 감동이 없어도 된다거나
준비가 허술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영광을 돌려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알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것이며,
그런 마음은 곧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시편기자들도 반복해서 짚은 것이다.
예배의 특징은 거룩한 즐거움이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의 영혼이 즐거워서
함께 노래하고 싶어지고
기도하고 싶어지고
말씀을 듣고 싶어져야 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행위로도 따라올 수 없는 즐거움이
예배에서 솟아나야 한다.
이게 말이 그렇지 쉬운 게 아니다.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지루해하고
기도를 들으면서 속이 불편해진다.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 시간 예배를 드렸지만 맹숭맹숭해서
다시는 교회에 오지 않겠다는 다짐도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예배에 오긴 한다.
이렇게 건성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천박한 감수성에 떨어지지 않고
예전예배의 깊이를 담아내면서도
영혼의 즐거움을 견인해내는 예배는 어떤 걸까?
이건 예배학자들이 대답해야 할 질문이고,
나로서는 음악회를 비유로 해서
그 방향에 대해서만 한 마디 하겠다.
내 생각에 예배는 합창 연주와 같다.
파트별로 각자의 역할이 있다.
솔리스트도 있고, 합창 단원도 있다.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생각해보라.
관객들도 여기에 한몫 한다.
곡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관객이 있는 것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이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실력에 따라서 연주의 수준이 다르긴 하겠으나
중요한 것은 모든 단원들이 음악에 집중해야한다는 것이다.
음악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훌륭하고 즐거운 연주가 될 수 있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이나 참여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만을 생각해야 한다.
이게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만을 생각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기도 하고,
알아도 그걸 실제로 느끼기가 어렵다.
다른 방법은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잡아 그런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한눈팔던 사람들도
같은 길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모두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