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안되겠다면 도리 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 감상- 이 시는 이성선(1941-2001) 시인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 부분을 빌려서 지었다고 감사인 시인이 직접 각주를 달았다. 이성선 시인은 내가 모르는 이다. 60세에 세상을 떴으니 죽음이 너무 이르다. 별과 하늘을 너무 쳐다보다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하는 소심증과 결벽증이 그의 몸을 지치게 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순수한 영혼이라 세상에서 더렵혀지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일찍 부르신 걸까? ‘덜덜 떨며’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시인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덜덜 떨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영적 감수성 없이 목사로 산다는 건 무지이며 불행이며, 더 나가서 죄다.


질그릇

2014.02.03 08:00:19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덜덜 떨어야 하는 사람!!

정말 가슴 속까지 떨립니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 보니 외로운 다리가 남아 있는 듯 보입니다.

조금 덜 무지하고, 덜 불행하고, 죄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오늘도 영적인 수고를 하려 합니다.^*^

주님의 평화!!!

profile

정용섭

2014.02.03 12:23:59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이 구차해보이기까지 합니다.

뭔가를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듯이 살았으니까요.

하나님의 현존이 아득하여 입을 다물 수밖에 없으나

그 밑바닥에서 환희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보석같은 하루를 보내며...

profile

새하늘

2014.05.13 22:21:37

아무 인기척 없는 산 속을 그냥 걷고 싶어집니다.

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Views
3286 김사인 시(5)- 탈상 [5] Feb 05, 2014 3701
3285 김사인 시(4)- 아무도 모른다 [5] Feb 04, 2014 4391
3284 김사인 시(3)- 유필(遺筆) [3] Feb 03, 2014 3172
» 김사인 시(2) -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3] Feb 02, 2014 2964
3282 김사인 시(1), 풍경의 깊이 [5] Feb 01, 2014 3653
3281 예배의 기술(10) [1] Jan 31, 2014 2193
3280 예배의 기술(9) [1] Jan 30, 2014 2054
3279 예배의 기술(8) [1] Jan 29, 2014 2220
3278 예배의 기술(7) [1] Jan 28, 2014 2372
3277 예배의 기술(6) [1] Jan 27, 2014 2069
3276 예배의 기술(5) [1] Jan 25, 2014 5124
3275 예배의 기술(4) [3] Jan 24, 2014 2706
3274 예배의 기술(3) [6] Jan 23, 2014 2911
3273 예배의 기술(2) [1] Jan 22, 2014 3166
3272 예배의 기술(1) [1] Jan 21, 2014 2790
3271 즐거운 예배 [7] Jan 20, 2014 3178
3270 행복한 신앙생활 [4] Jan 19, 2014 4292
3269 예수 부활의 증언자들 Jan 18, 2014 3412
3268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경험 Jan 17, 2014 3129
3267 달이 밝다 Jan 16, 2014 2971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